[고미숙의 行설水설]‘해품달’에 대한 농담 > 스크랩

스크랩

홈 > 자유게시판 > 스크랩

[고미숙의 行설水설]‘해품달’에 대한 농담

페이지 정보

작성자 박장금 작성일12-02-17 08:03 조회4,004회 댓글1건

본문

지난해엔 <시크릿가든>이더니, 올해는 <해를 품은 달>(이하 해품달)이다. 해가 바뀌어도, 시절이 아무리 하수상해도 멜로의 열풍은 식을 줄을 모른다.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 감칠맛 나는 대사, 궁정 판타지가 주는 묘한 긴장감 등. 다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 용납되는 건 아니다. 주지하듯, 멜로는 생을 잠식한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아침 프로그램에서 기묘한 장면을 하나 목격했다. 앞의 뉴스는 <해품달>의 인기를 분석하는 코너였다. 10대, 20대는 물론 중년여성들까지 <해품달>에 열광하고 있음을 보여주면서 그걸 증명하기 위해 뇌파촬영까지 시도하고 있었다. 좀 심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바로 이어지는 뉴스는 재혼 뒤 불화 끝에 아내를 죽인 남편의 이야기였다. 참으로 기묘한 배치 아닌가. 청춘남녀의 낭만적 사랑과 중년부부 간의 끔찍한 참극이라니.

사람들은 아마도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전자는 이상이며 후자는 현실이라고. 현실이 그렇듯 암울하니 판타지를 통해서나마 잠시 위안을 받는 것이라고. 과연 그럴까? 인문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둘은 다른 것이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전자와 후자는 ‘나란히, 함께’ 간다.





20120217.01200130000003.01S.jpg
매년 새롭게 변주되지만, 멜로의 문법은 사실 뻔하다. 선남선녀의 운명적인 만남, 그걸 가로막는 ‘악의 축’들, 끔찍한 고난, 그럴수록 깊어가는 사랑의 불꽃. 그 불꽃은 아름답고 순수하다. 어찌나 순수한지 성욕 같은 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손목 한번 잡은 것이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고 키스는 ‘일생일대의 대사’가 된다. 그럼 뭘 하는가? 멀리서 그리워하고 만나면 운다. 울면서 ‘시적인 고백’을 주고받는다. 마침내 둘 중 하나는 죽거나 기억을 상실한다. (이 대목에서 농담 한마디. 운명론적으로 보자면, 멜로의 주인공들은 ‘전생의 원수들’이다. 서로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는데 헤어질 수도 없으니 말이다. 이거야말로 ‘복수혈전’의 최고 경지가 아닌가.)

이번에도 역시 여주인공이 죽었다 깨어났다. 그 사이에 8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 흘렀다. 주인공들의 신분도 엄청나게 달라졌다. 세자는 왕이 됐고, 세자빈은 무녀가 됐다. 그런데 똑같다! 동일한 공간을 배회하고, 동일한 동작을 반복하면서 서로를 애타게 찾고 또 찾는다. 대사마저 동일하다. 그래서 아름답다고? 그럼 이런 가정은 어떤가? 전생에 내 돈을 떼먹은 사람을 이생에 다시 만나 또 당한다면? 20년 전에 짝사랑하던 이를 중년에 다시 만나 또 죽어라고 쫓아다녀야 한다면? 사랑이 반복된다면 삶도 반복된다. 삶이 동일한 궤도를 되풀이하는 것을 윤회라고 한다.

인류의 스승들은 이 윤회의 수레바퀴를 벗어나는 것을 ‘진리’요, ‘대자유’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멜로적 사랑이야말로 가장 ‘자유와 진리에 반하는’ 행위가 아닐까? 아마 앞으로 두 주인공은 서로를 죽도록 힘들게 할 것이다. 그래야 서로의 사랑을 증명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사람들은 생각할 것이다. 비극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원천이라고. 이것이 멜로가 생을 잠식하는 원리다.

<시크릿가든>의 주인공은 재벌2세였는데, 이번엔 한술 더 떠 군주다. 군주는 재벌 회장이나 대통령과도 다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지만 대신 천하를 가슴에 품어야 한다. 첫사랑에 사무치고 내시나 호위무사 등과 은밀한 정을 나누고 대신들과는 건건사사 각을 세운다. 이건 무슨 뜻인가? 폭군의 징후다. 하긴, ‘해’를 품은 ‘달’이면 가는 곳마다 환하게 길을 밝혀줘야 할 텐데,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의 인생까지 온통 어둠침침하게 만들다니, 무슨 ‘해’와 ‘달’이 이런가. 요컨대, 사랑의 화신은 성군이 될 수 없다. 성군에겐 ‘첫사랑’은커녕 한순간의 잡념도 허용되지 않는다. 한편으론 명분과 이념을 구축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론 백성들의 생업을 돌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뿌리깊은 나무>의 세종이 그랬듯이.

하지만 멜로는 현실을 움직이는 이 모든 원리를 간단히 잠재워 버린다. 그래서 자가당착에 빠진다. 사랑의 화신이 되려면 삶을 외면해야 한다. 그런데 삶을 외면하는 이는 결코 사랑의 화신이 될 수 없다. 그럼, 그가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열병이자 중독일 뿐이다. 겉보기엔 서로를 위해 아낌없이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서로를 결코 놓아주지 않는다. 하여, 이런 판타지를 사랑의 척도로 삼으면 삶은 말할 수 없이 황폐해진다. 그래서 결국 서로를 파국으로 인도한다. 멜로의 판타지와 가족의 참극이 ‘나란히, 함께’ 가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그냥 재미삼아 보는데 뭐 그렇게 까칠하게 구느냐고? 딴은 그렇다. 그래서 농담이다. 하지만 멜로는 전 국민의 연애 교과서다. 사람들은 멜로를 통해 사랑에 대한 감정과 신념을 훈련받는다. 그래서 그 어떤 정치적 개혁도 이 멜로적 감성을 바꾸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걸 바꾸지 않는 한 삶의 근본적 변화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만은 결코! 농담이 아니다.

(경향신문, 2012. 2. 16)
댓글목록

공감이님의 댓글

공감이 작성일

<p>아! 정말 공감합니다. 전국민의 맹목화 멜로화...&nbsp;가뜩이나 냄비인데, &nbsp;이상한 불에 끓으면 ....&nbsp;&nbsp;&nbsp;&nbsp;&nbsp;&nbsp;</p>

양력 2024.4.19 금요일
(음력 2024.3.11)

유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