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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평론가 고미숙 ‘몸과 삶의 소외를 극복하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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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장금 작성일12-02-25 14:29 조회4,03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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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여성의 몸 아닌 몸매에만 관심… 사회가 재단하는 미적 기준은 폭력”

여성의 몸은 우주와 같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은 하나의 우주가 열리고 닫히는 것이다. 고전 <동의보감>에서는 출산의 통증을 아예 병으로 다루지 않았다. 여성이 아이를 낳는 것을 자연과 교감하는 신성한 체험으로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현대의학은 출산을 고통스러운 질병처럼 취급한다. 갖은 약물과 수술로 대응하고, 고통을 줄이거나 없애버리기 위해 자본과 기술을 총동원한다. 그 과정에서 여성은 이미 몸의 주체가 아니다. 몸은 자신에게 고통만을 주는 객체로 전락한다.

지난 21일 경향신문사 2층 갤러리 ‘효재처럼’에서 열린 2012년 두 번째 알파레이디 북토크에서는 고전평론가 고미숙씨가 ‘몸과 삶의 소외를 극복하는 지혜’를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저서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에서 이처럼 소외된 현대인의 몸과 삶에 대해 조언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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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평론가 고미숙씨가 지난 21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갤러리 ‘효재처럼’에서 열린 알파레이디 북토크에서 ‘몸과 삶의 소외를 극복하는 지혜’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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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예뻐진다해도 결핍은 끝없이 생겨…
돈 많고 잘생긴 순정남? 그릇된 꿈에서 깨어나라”


“<동의보감>이 이야기하는 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몸이 곧 우주라는 것이죠. 우주를 구성하는 힘이 오장육부를 구성하고, 별을 만드는 모든 요소가 몸을 만듭니다. 우리가 몸을 사유하는 순간, 우주를 사유하는 것도 동시에 시작됩니다.”

그러나 현대의학은 <동의보감>이 이야기하는 진리와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현대철학과 한국의 고전을 섭렵해온 고씨가 ‘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산부인과에서의 체험 때문이었다. 그는 “몸이 안 좋아져서 산부인과에 갔다가 그곳에서 여성의 몸이 다뤄지는 방식을 보고 분노를 느꼈다”고 말했다. 여성을 상대로 하는 산부인과는 오히려 여성의 몸을 폭압적으로 대한다. 의료자본은 끊임없이 새로운 질병을 찾아내고, 사람들에게 ‘예방’이란 이름으로 소비하길 권유한다. 병원의 정기검진은 몸을 보호하는 시스템의 하나일 뿐인데, 현대인은 이로써 건강을 위한 완전한 방어 체계를 갖춘다고 착각한다. 고씨는 “옛날에 무당을 찾아가는 것과 오늘날 정기검진을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다르지 않다”면서 의학에 대한 현대인의 맹목적 신뢰를 비판했다.

성형다이어트를 권유하는 사회는 여성의 몸을 더욱 객체로 만들어버린다. ‘알파걸’ ‘골드미스’ 등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 여성들이 많아졌지만,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몸은 가장 소외되고 차별받는 존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대 여성들은 자기 몸이 가진 잠재력이나 생명력을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어른이 됩니다. 학교에서나 엄마로부터 듣는 것은 오로지 ‘몸매’일 뿐이죠. 운동도 살을 빼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이 돼버렸습니다. 누구도 ‘너의 삶을 위해 몸의 순환을 건강히 하라’고 말해주지 않습니다. 아름다움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의 미(美)는 철저하게 자연과 괴리돼 있습니다.”

고씨는 사회가 강요하는 미적 기준을 ‘폭력’이라 규정했다. 그는 “미적 기준이 이렇게 한 가지로 통일돼 있었던 시기는 없었다”며 “하나의 기준을 토대로 전신을 깎고 조이기를 요구하는 현대사회는 인간의 몸에 대해 폭력을 저지르는 격”이라고 말했다. 능동적이든 수동적이든, 사회가 요구하는 미적 기준을 수용하는 것 역시 위험한 일이다.

“이런 (아름다운) 몸을 갖고 싶어한다는 것은 그런 몸을 갖지 못한 사람을 차별하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게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이렇게 하나의 척도로만 재단하게 되면 위계와 서열이 생깁니다. 아무리 예뻐진다고 해도 끝없이 결핍이 생기는 겁니다. 그러면서 사회가 민주화되기 바라는 것은 여성의 무지이자 자가당착이죠.”

자본주의에 의해 강요된 잣대에 따라, 여성들은 스스로의 몸을 사랑하고 움직이는 법을 잊어버렸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볼륨을 낮춰라’ 말만 하면 볼륨이 낮아지는 전자기기가 나오고 있죠. 뇌과학이 더 발달하면, 뇌파를 전자기기에 연결해서 ‘청소해라’ 생각하는 것만으로 로봇에 청소를 시키는 시대가 온다고 합니다. 저는 그걸 왜 개발하는지 모르겠어요. 생각만 하면 운전도 해주고, 검색도 해주고…. 그럼 이제 몸은 어디에 쓰나요? 몸은 정기검진만 합니다. 매일 혈당체크만 하는 거예요. 이럴 거라면 몸이 필요 없죠.”

정보의 시대가 온다고 해서 삶이 저절로 좋아지지는 않는다. 고씨의 지적에 참석자들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기술이 발달하는데도 갈수록 ‘난장판’이 돼가는 현실을 다들 알기 때문이었다. “뇌도 쓸 일 없고 하체는 쓸 일 없어진 지 오래이고, 손가락마저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뭔가요. 이런 질문 없이 기술을 너무 빨리 발전시켜, 초스피드로 여기까지 온 겁니다. 여성이 사회활동에 엄청 많이 참여하는데 여성의 마음은 외롭고 쓸쓸하고 상처투성이에요.”

고씨는 여성이 가진 욕망과 인식 사이의 모순을 꼬집었다. 그는 “여성들이 사회적, 지적으로는 엄청나게 무장했으면서 정서적으로는 여전히 누군가의 열렬한 사랑을 받는 것만을 삶의 경쟁력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또 “사랑받는 것, 누군가로부터 위안받는 것, 배려받는 것만을 갈구하는 것은 곧 지옥으로 가는 급행열차”라며 “이것을 모른다면 여성은 절대 해방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상적인 사랑이라는 것을 설정하고, 현실적 성욕은 배제한 채 멜로만 추구하는 것이 오늘날 현대 여성의 로망이 돼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얼굴이 예쁘고 몸매가 좋아지길 바라고, 남자가 자신을 사랑해줄 뿐만 아니라 경제력까지 갖추길 바라죠. 여성이 스스로를 가둬버리는 일입니다.”

마음은 민주주의를 열망하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을 고민하면서, 몸은 자본과 쾌락을 좇는 세태도 우리를 오염시킨다. 한 강연 참석자는 “남자들은 여성들이 명품에 열광한다고 비판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고씨는 “자본은 상품을 욕망하게 해서 기쁨과 쾌락을 중독시킨다”며 “명품을 통해 사람들이 자신을 별 볼일 없게 여기고, 인생을 권태롭게 느끼게 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좋은 물건을 소유하고 잘살게 된다는 것은 웬만한 물건으로는 만족을 하지 못하고 어떤 물건과도 교감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라며 “자본주의에 잠식된 심리 구조로는 중독을 넘어 죽음을 향한 충동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행복은 ‘개념’이 아니라 ‘몸의 능력’이다. 몸에서 세포들이 행복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내겐 이러저러한 물건이나 재산이 있어’라고 위안해본들 내 몸은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고씨는 “일반적으로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 중산층에 편입되는 것을 행복의 기준이라 믿지만, 이런 기준에 도달한다고 해도 많은 여성들이 40대쯤 되면 우울증을 앓는다”고 지적했다. 사회적 ‘조건’을 잘 갖춘 많은 중·상류층 여성들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 이유는 “한의학적으로 봤을 때 소통의 부재 때문”이다. 외부와 소통하지 못하고 홀로 단절되면 몸과 마음에서 ‘우주적 순환’이 이뤄지지 못한다.

병은 몸뿐만 아니라 마음에까지 번진다. 당당하고 씩씩한 여성들도 많아졌지만, 언제부턴가 우울한 여성들이 자꾸 늘고 있다. “몸은 병원 리스트 안에 갇히고 마음은 심리상담이라는 패러다임에 갇혀서 꼼짝 못하는 형국”이다. TV에는 의료·건강프로그램이 넘쳐나지만 대부분 ‘신종 질병’을 소개하며 병원행을 권할 뿐이다. 더욱이, 아름답고 젊은 여성의 몸만을 소비하는 사회에서 폐경기가 지난 여성의 몸은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지기 일쑤다. 현대사회에서 폐경기는 여성이 자기 몸을 폐기처분하는 시기처럼 돼버렸다. 고씨는 “80세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인생에서 수십년 동안 자신을 ‘퇴물’ 취급하며 고통스럽게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라며 “이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여성들이 자신의 몸으로부터 ‘지혜’를 얻으라고 조언했다.

“지혜는 여성의 몸을 생성시킨 자연으로부터 옵니다. 자연은 아름다운 경치를 보거나 오지를 탐험하는 것이 아니고, 문명의 표상들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돈 많고 잘생기고 순정을 바치는 남자를 바라거나, 이를 위해 나를 자본주의 사회의 상품으로 내놓는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몸이 원하는 존재의 심연을 보는 거예요. 그러면 내 안에서 모든 소통이 이뤄지고, 폐경기가 온다고 해도 몸이 자연과 결합할 수 있는 지혜의 산실이 될 것입니다.”

(경향신문, 2012.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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