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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이 말하는 몸과 우주]<3>성형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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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장금 작성일12-03-10 08:47 조회3,58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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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 깎고 이마-뒤통수까지 성형…몸이 장식용인가?



정말 순식간이다. 성형이라면 쌍꺼풀이나 콧대를 세우는 정도를 의미하던 시대가 불과 얼마 전이었다. 그러다 문득 턱을 깎고 뺨을 부풀리고, 그렇게 야금야금 영토를 넓히더니 이젠 이마 성형, 뒤통수 성형까지 점입가경이다. 그야말로 ‘절차탁마’의 시대다. 죽을 병이 든 것도 아니고, 일상이 불가능한 것도 아닌데 자신의 몸을 이렇게 학대할 수 있다니, 대체 이런 용기(혹은 광기)는 어디로부터 유래한 것일까?

스마트폰의 진군 앞에서 우리는 이렇게 물은 바 있다. 그럼 몸은 대체 어디에 쓰란 말인가? 그 답이 여기 있다. 몸은 오직 장식용이었던 것이다. 몸을 어떻게 장식하느냐가 경쟁이고 스펙이다. 하여, 성형은 아름다움에 대한 원초적 발로가 아니다. 이 욕망에는 명백하게 목표가 있다. 얼굴은 작고 8등신에 S라인, 식스팩은 기본이고 허벅지는 일자로 쭉 뻗어야 한다. 쉽게 말하면 쇼윈도에 걸린 마네킹이 기준이다. 모두가 이 몸을 향해 달려간다. 연예인도, 보통 사람도, 중년 여성도, 어린아이도. 그러다 보니 점점 비슷해진다. 그래서 또다시 깎고 조이고 다듬고…. 단일한 척도하에 모든 것을 포획하는 것, 이것은 자본주의가 탄생 초기부터 구사한 전략이다. 자본주의는 사물들과 사람들의 울퉁불퉁한 측면들을 제거하면서 출발했다. 궁극적으로 자연의 불가사의하고 생기발랄한 지층들을 말끔하게 밀어내고자 한 것이다. 산을 헐고 바다를 메우는 무모함을 연상하면 된다. 성형 또한 그 연속이자 정점이다.

“이마는 천정으로 심(心)에 속하고, 턱은 지각으로 신(腎)에 속한다. 코는 얼굴 중앙에 있어 비(脾)에 속하고, 왼쪽 뺨은 간(肝)에 속하며, 오른쪽 뺨은 폐(肺)에 속한다”(동의보감 외형편). 말하자면, 얼굴은 오장육부의 발로이자 몸이 우주와 만나는 창이다. 그래서 눈코귀입을 합쳐 ‘칠규’(七竅·일곱 개의 구멍)라고 한다. 성형은 이 창문 혹은 구멍들이 연출하는 다양성과 이질성을 제거해 버리는 작업이다. 그래서 폭력적 동일성이다. 이 세계에선 오직 위계와 서열만이 작동한다. “거울아, 거울아 누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니?”라고 외쳤던 백설공주의 계모가 그러했듯이.

TV 프로에 나와 전신성형을 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못생겨서 무시당했다고, 그래서 자신감을 얻고 싶다고. 새빨간 거짓말이다. 자신을 무시한 건 바로 자신이다. 자신이 이미 자신을 하찮게 여기고 있는데 남들이 그러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실제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가족 친지들의 이목구비도 잘 모른다. 이목구비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이목구비 위의 표정과 생기를 보기 때문이다. 표정과 생기는 포착 불가능하다. 그래서 진정으로 타인과의 소통을 원한다면 기운의 배치를 바꾸어야 한다. 그래서 성형은 미친 짓이다. 보톡스만 맞아도 표정이 사라지는데 전신을 다 헤집어 놓으면 대체 무엇으로 소통을 한단 말인가? 결국 성형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자신감이 아니라 우월감이다. 타인과의 교감이 아니라 인정 욕망이다. 전자는 충만감을 생산하지만, 후자는 결핍을 생산한다. 그리고 그 공간에선 상처와 번뇌만이 숙성된다. 성형천국, 마음지옥!

덧붙이면, 마네킹이 하는 일이 뭘까? 예쁘게 장식한 채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구걸하는 일이다. 밥을 비는 것보다 더 더럽고 치사하지 않은가.

고미숙 고전평론가
(동아일보, 2012.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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