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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이 말하는 몸과 우주]<9>공부하니까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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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2-03-28 08:52 조회3,806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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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공부의 연속…의욕만 앞서면 집중력 떨어져



 

“열심히 하겠습니다!” 우리 시대의 대표적 구호요 만병통치약이다. 하지만 ‘열심’이란 무엇인가? 뜨거울 열(熱)에 마음 심(心). 마음은 곧 심장이다. 한마디로 심장이 ‘열 받도록’ 애를 쓴다는 말이다. 심장은 ‘군주지관’(君主之官)이자 ‘신명(神明)의 집’이다. 이런 심장이 열 받으면 어떻게 될까? “기는 안에서 흩어지고 혈은 기를 따라 흘러 영위가 혼란하므로 온갖 병이 공격한다.”(‘동의보감’) 두통에 어지럼증, 갑상샘항진증 등이 찾아온다. 시험이나 오디션을 앞두고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는 증상을 떠올리면 된다. 그럴 때 먹는 약이 청심환이다. 청심(淸心), 열을 식혀서 심장을 맑게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열심’은 일종의 병증인 셈. 여기에 걸리면 의욕만 앞설 뿐 정작 집중력은 떨어진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현대인에게 절대 부족한 것이 ‘수면과 집중력’이라고 한다. 생리적으로 보면 둘 다 ‘열심’증과 맞물려 있다.

잠을 잘 자기 위해서도 그렇지만, 특히 집중력이 생기려면 ‘청심’을 유지해야 한다. 부질없는 욕심을 덜어내야 한다는 뜻이다. “심이 고요하면 신명과 통하여 문 밖을 나가지 않아도 천하를 알고 창밖을 보지 않아도 하늘의 도를 알게 된다.”(‘동의보감’) 그때 비로소 존재의 무게중심을 오롯이 걸게 된다. 마음을 비운 채 온몸으로 터득하는 것, 그것이 집중력이자 곧 궁푸(工夫의 중국어 원음. 지식을 몸으로 깨치는 행위)다. 하지만 공부를 한낱 지식과 정보에 묶어둔 다음, 그걸 ‘더 많이, 더 빨리’ 습득하라고 부추기는 게 우리 시대 교육의 현주소다. ‘열심히’라는 구호는 그런 편향의 산물이다. 몸과 마음을 분리하고, 지식과 존재를 분리하고, 나아가 앎과 삶을 분리하고, 그러면서 소통과 연대를 외치다니 얼마나 공염불인가.

봄의 묘목은 매순간 배움의 관문을 통과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생사를 오간다. 그래서 인류의 모든 종족은 청년들한테 통과의례를 부여했다. 영화 ‘아바타’에서 주인공이 익룡을 타는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 그건 유희도, 오디션도 아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존재를 ‘통째로’ 거는 일이다. 익룡에 올라타려면 익룡과 교감을 해야 한다. 자신을 죽이려 드는 존재와의 교감이라? 그건 열심히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완벽하게 비워야 한다. 비워야 산다는 이 오묘한 역설! 이 역설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 곧 궁푸다.
 


따지고 보면 삶은 궁푸의 연속이다. 처음 뒤집기(또는 걸음마)에 성공했을 때, 길을 잃었다가 고생 끝에 돌아왔을 때, 그때 몸의 세포들은 죽음과 부활을 동시적으로 체험한다. 그때의 충격과 경이로움이란! 어디 그뿐인가. 한글과 구구단을 뗐을 때, 긴 장편소설을 완독했을 때, 미적분이나 상대성원리를 깨쳤을 때. 그 감동은 ‘첫 키스’보다도 더 강렬하다. 그래서 어떤 보상도 자격증도 필요치 않다. 하지만 지금 학교의 공부에선 그 기쁨과 감동이 모두 증발됐다. 생명의 떨림, 청춘의 통과의례 따위와는 아무런 연관성도 없다. 지식과 몸의 완벽한 소외! 그럴수록 심장은 뜨거워지고 집중력은 약화된다.

봄은 바람과 함께 온다. 그 바람 속에서 나무는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는다. 그 모든 과정이 다 궁푸다. 청춘 또한 그러하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청승은 이제 그만! 이제 이렇게 말하자. 공부(궁푸)하니까 청춘이다!

고미숙 고전평론가
(12. 3. 27)
댓글목록

알아차림님의 댓글

알아차림 작성일

<p>이 글 개인 블로그에 출처 명확히 밝히고 퍼가도 될까요?</p>

박장금님의 댓글

박장금 작성일

<p>출처만 정확히 밝히신다면 가능합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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