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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이 말하는 몸과 우주]<12>청소와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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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2-04-05 08:27 조회3,4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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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는 공간에 대한 배려…약속은 시간을 조율하는 능력


 

입춘(음력 정월)이 되면 하늘에 봄이 온다. 경칩(음력 2월)에는 땅에 봄이 오고, 청명(음력 3월)이 돼야 비로소 사람에게 봄이 온다. 계절의 변화란 이렇듯 천지인(天地人) 삼박자가 만들어내는 리듬이다. 때론 어우러지고, 때론 어긋난다. 그래서 봄이 와도 춥다. 더구나 올해는 운기상 목(木)기가 강한 해다. 목은 바람이다. 그래선지 올봄엔 유난히 바람이 많다. 오행의 원리상 목은 토를 극한다(목극토·木剋土). 우리 몸에선 ‘비위’가 토에 속한다. 해서 요즘 감기는 구토와 배탈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듯 봄은 결코 만만치 않다. 바람은 땅을 흔들어 만물을 깨우고 그 다음엔 꽃샘추위로 뚝심을 다지게 한다. 공부의 원리 또한 마찬가지다.

“아는 게 별로 없는데 괜찮을까요?” 공동체(남산강학원&감이당)를 하면서 수도 없이 들어온 말이다. 아무리 상관없다고 해도 믿지를 않는다. 공부란 뭔가 특별한 지식을 주고받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야말로 학교가 만들어낸 지독한 편견이다. 하지만 공동체에선 스펙을 위한 공부를 하지 않는다. 아니, 그런 건 공부라고 쳐주지도 않는다. 중요한 건 지식의 양이나 질이 아니라 ‘지식과 삶의 소통’이다. ‘앎과 몸의 일치!’ 이것이 공동체적 공부의 비전이다. 따라서 어떤 조건도 필요 없다. 그 대신 반드시 기본기를 익혀야 한다. 청소와 약속이 바로 그것이다.

청소란 공간에 대한 배려다. 약속은 시간을 청정하게 조율하는 능력이다. 한마디로 청소와 약속은 ‘시공간과의 교감’을 의미한다. 시공간은 일상의 주요한 무대다. 무대와 교감하지 않고서 좋은 배우가 될 수는 없다.







인생 또한 그러하다. 큰 집을 가지고 있는데 빚더미에 올라앉은 사람들을 ‘하우스 푸어’라고 한다. 참 딱한 노릇이지만 이보다 더 딱한 건 화려한 저택에 살면서 집안을 온통 쓰레기통으로 만드는 경우다. 밖에서 보면 전원주택이지만 들어가면 난지도인 집이 적지 않다. 이건 공간에 상흔을 남기는 행위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건 시간에 잉여를 남기는 걸 뜻한다. 한 TV 프로그램에서 이경규 씨에게 들은 말이다. 한국 연극계의 거장 이해랑 선생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연극계가 왜 망했는지 아나? 약속을 안 지켜서야.” 그렇다. 어떤 위대한 일도 약속을 지키는 것에서 시작한다.

시공간에 흔적을 남긴다면 몸속에도 담음(痰飮)이 쌓이는 건 뻔한 이치다. 시공간의 어그러짐은 감정의 잉여로, 그것은 다시 관계의 불화로, 또 생리적 불통으로 이어질 테니 말이다. 그래서 훈련이 필요하다. 이 기본기를 익히는 곳이 바로 학교다. 하지만 불행히도 학교에선 이런 원리를 가르쳐주지 않는다. 공간을 사랑하는 법도, 시간을 조율하는 기술도. 스펙이 아무리 빵빵하다 한들 기본기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현장과의 소통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거꾸로 기본기만 제대로 익히면 어디서건 거뜬히 살아낼 수 있다. 요컨대, 몸과 시공간, 그리고 삶은 나란히, 함께 간다. 계절의 변화가 ‘천지인’ 삼박자의 리듬을 타는 것처럼.

그래서 알게 됐다. 왜 ‘논어’에서 문자보다 ‘쇄소응대(灑掃應對·청소와 응대)’를 더 강조했는지, 출가하면 왜 설거지와 청소부터 시키는 건지. 화창한 봄날 왜 이리 꽃샘추위가 지독한지도.

고미숙 고전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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