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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이 말하는 몸과 우주]<15>사랑이 어떻게 ‘안’ 변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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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장금 작성일12-04-12 09:04 조회3,3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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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주체가 되려면 자신의 삶부터 사랑하라


 

 


“세상의 모든 일이란 좋은 일이면 끝나는 거고, 끝나면 좋은 거란 말이오.” 중국 최고의 장편소설 ‘홍루몽’에 나오는 대사다. 남녀 간의 지극한 사랑을 통해 인생의 깨달음을 구한다는 작품의 주제를 압축하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 사랑도, 에로스도, 그리고 삶도. 우주에 춘하추동이 있듯이 사랑에도 생로병사가 있다. 꽃피는 봄이 있으면 뜨거운 열정의 여름이 있고, 가을의 서늘한 쇄락과 겨울의 기나긴 적막이 있다. 이 모든 과정이 다 사랑이요 삶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굳이 삶과 사랑을 분리하고, 그중에서도 봄과 여름만을 사랑이라고 간주한다. 첫사랑 혹은 운명적 사랑에 대한 집착도 거기에서 비롯한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도 그렇고, ‘해를 품은 달’도 그렇고, 멜로는 늘 해피엔딩이다. 수많은 난관을 거친 다음 남녀의 행복한 결혼 생활(대저택에 올망졸망한 아이들)을 보여주면서 끝이 난다. 마치 그것이 사랑의 최종 목표라도 되는 양. 하지만 그건 속임수에 불과하다. 현실에선 그때부터가 시작이다. 속된 말로 그 ‘운명의 커플’ 앞에는 두 개의 여정이 놓여 있다. 권태 아니면 변태. 전자는 우울증과 각종 신경질환으로, 후자는 불륜과 막장 드라마로 이어진다. 우리 시대 가족의 현주소다. 황혼이혼이 늘어나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각자 바쁘게 활동할 때는 그럭저럭 견디다가 중년을 지나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 서로를 견디지 못하게 된다. 이것도 참 역설이다. 가족 간의 대화가 소중하다면 그야말로 대화의 시간이 왔는데, 왜 서로를 견딜 수 없는 것일까? 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도 황혼이혼이 점차 늘어난다고 한다. 예전에는 주로 배우자의 부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부부가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시간이 되었으므로.” 헤어질 때가 되었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사랑의 무상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흔히 사랑을 통해 삶이 구원됐다고들 말한다. 자기가 살아가는 이유는 오직 가족과 사랑뿐이라고. 과연 정말일까? 사실은 그 반대다. 사랑이 삶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열정과 의지가 사랑을 구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의 주체가 되고 싶다면, 무엇보다 자기 삶을 사랑하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생각해보라. 연애 감정은 너무 변덕스럽다. 에로스적 충동 역시 2년을 버티기가 어렵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이건 다 고도의 생존전략에 속한다. 동의보감식으로 말하면 연애는 ‘허열을 망동’하게 하고, 성욕은 ‘정기신을 고갈’시킨다. 만약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인류의 수명은 현저하게 줄어들고 말 것이다. 

또 아무리 아름다운 추억도 시간 앞에선 무력할 따름이다. 나이가 든다는 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신체가 된다는 의미다. 신체 구조가 달라졌는데 어떻게 동일한 정서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는 어불성설이다. 사실은 이렇게 말해야 한다. “사랑이 어떻게 ‘안’ 변하니?”

청소년기에 배워야 할 성교육의 핵심도 여기에 있다. 첫사랑도 하기 전에 사랑의 ‘생로병사’부터 배우라니, 너무 심하지 않느냐고? 천만에. 니체는 말했다. 생은 길섶마다 행운을 숨겨두었다고. 그러니 기억하라. 첫사랑의 판타지는 생이 마련한 수많은 행운 가운데 가장 소박한 항목에 불과하다는 것을.

고미숙 고전평론가


(12. 4.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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