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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이 말하는 몸과 우주]<16>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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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장금 작성일12-04-12 09:08 조회3,4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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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이 곧 즐거움”… 대중이 ‘지성의 향연’에 참여하는 것


 
1. 민교: 17세. 문경 출신으로 중학교 1학년 때 학교를 나왔다. 2. 해완: 20세. 서울 근교에서 대안학교를 다니다 고1 때 자퇴했다. 3. 현준: 23세. 지방대 1학년을 마친 뒤 자퇴했다. 보다시피 학교 바깥의 청년들이다. 이 밖에도 많은 청년이 ‘조용히’ 학교를 떠나고 있다. 놀라운 건 이들은 학벌, 특히 대학에 대한 콤플렉스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참으로 평범하다. 성격이 유별난 것도, 특별한 예술적 취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학교에 대한 저항이나 거부감도 별로 없다. 쉽게 말하면 이들에게 학교는 ‘그저 그런’ 존재다. 대학생 친구들이 이들에게 “불안하지 않냐”고 묻는단다. 그러면 이렇게 답한다. “니들이 더 불안해 보이는데?” ‘개그콘서트’에서도 풍자했듯 대학이 배출하는 건 ‘인재’가 아니라 ‘신용불량자’다. 이들에겐 스펙도 없지만 빚도 없다. 적어도 이들에겐 ‘맨손의 자유’가 있다. 게다가 누가 10년 뒤, 20년 뒤를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하는가?

그렇다고 공부를 싫어하는 족속도 아니다. 다만 입시 공부가 싫을 뿐이다. 학교가 아니어도 배움의 길은 수두룩하다. 이들은 지금 ‘남산강학원’에서 푸코와 논어, 니체와 한의학 등을 배우고 있다. 초졸에 중졸, 기껏해야 고졸이지만 거뜬히 해낸다. 입시 교육이 아닌 한 모든 공부에는 진도가 필요 없다. 그냥 자기가 선 자리, 자기가 던지는 질문이 곧 출발점이다. 거기서 시작하면 된다. 해완이는 여기서 한 공부로 ‘다른 십대의 탄생’이라는 인문학 저서까지 냈다. 대학에 관심이 없지만 대학보다 더 ‘빡센’ 공부를 기꺼이 선택하는 청년들. 스펙에는 무관심하지만 지적 호기심은 결코 멈추지 않는 청년들. 그야말로 ‘다른 십대’, ‘다른 청년’들이 탄생한 것이다.





그러니 이제 분명히 말할 때가 된 것 같다. 대학이 지닌 ‘지적 구심력’은 끝났다는 사실을. 1990년대 후반 ‘대학의 위기’라는 담론이 횡행한 지 15년쯤 지났다. 이젠 위기라는 말도 무색할 지경이다. 대학이란 무엇인가? 주류적 가치, 즉 부와 권력에서 벗어나 존재와 세계를 탐구하는 곳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덮쳐오자 대학은 가장 먼저 이 가치부터 내팽개쳤다. 리모델링에 올인하고 시설 투자에 여념이 없었지만 그 사이에 대학은 한낱‘취업전선’이 돼버렸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듯이 이제 대학에는 지성이 없다.

역설적이게도 대학이 지성을 포기하자 거리에 지성의 광장이 활짝 열렸다. 바야흐로 ‘대중지성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대중지성이란 대중이 능동적으로 지성의 향연에 참여하는 것을 뜻한다. 여기에선 세대와 학벌, 지역과 계층 같은 장벽들이 무색하다. 나아가 대중과 지성인 사이의 경계조차 간단히 해체된다. 위의 청년들이 증명하듯 그 동력은 앎의 즐거움이다.

“배우는 것은 강렬한 쾌락이다. 몇 살을 먹었든 간에 배우는 자의 육체는 그때 일종의 확장을 체험한다. 즉 문이 없던 곳에서 갑자기 문이 열리고, 문 자체와 함께 육체가 열린다.”(파스칼 키냐르의 ‘은밀한 생’) 그렇다. 말하자면, 지성을 향한 ‘육체의 문’이 열린 것이다. 대체 누가 이 거침없는 질주를 막을 수 있으랴.

고미숙 고전평론가


 


(12.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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