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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이 말하는 몸과 우주]<17>앎은 순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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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장금 작성일12-04-17 20:39 조회3,392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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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필요한건 지식의 양 아닌 용법…앎과 삶의 일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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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모든 것을 걸고 기필코 막아낼 것이다.” “결코 막지 못할 것이다.”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정기준과 세종이 한판승부를 펼치는 장면이다. 논쟁의 핵심은 단연 한글이다. 정기준의 논지는 간단하다. 조선은 사대부의 나라고, 사대부는 문자를 향유하는 집단이다. 문자가 곧 권력이고 욕망이다. 그러니 백성이 글자를 알게 되면 백성 역시 권력을 향한 욕망으로 들끓게 될 것이고, 그러면 세상은 지옥이 될 것이다. 세종은 말한다. 그것이 왜 지옥인가? 문자를 알면 백성도 삶의 주인이 될 것이고 나아가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논쟁에는 승자가 없다. 둘 다 맞고 둘 다 틀렸기 때문이다. 정기준의 예언대로 한글이 나랏말이 되면서 사대부의 나라 조선은 망했다. 이후 ‘더 많은 앎’을 향한 군중의 욕망은 멈추지 않았다. 지난 100여 년간의 교육은 문자의 해방과 앎의 평등이라는 측면에서 ‘세종 프로젝트’라고 해도 무방하다. 정기준의 예언처럼 지옥으로 가는 입구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세종의 말대로 구원의 길도 아니었다. 오히려 대중은 범람하는 정보와 지식 속에서 정처 없이 표류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 필요한 건 지식의 양이 아니라 지식의 용법이다. 지식과 삶은 어떻게 결합되는가? 앎과 삶의 일치는 어떻게 가능한가?

그러므로 학교에선 바로 이 용법을 익혀야 한다. 윤리적 덕목으로 말하면, 우정과 연대가 그것이다. 문명의 동력은 네트워크다. 생명의 기본 원리이기도 하다. 네트워크란 타자와의 마주침이다. 학교란 무엇인가? 처음으로 혈연을 떠나 타자들의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곳이다. 타자를 통해 세계와 우주라는 매트릭스로 들어가는 것, 그것이 곧 배움이다. 따라서 우정과 배움은 분리될 수 없다.





우정이란 ‘사람을 좋아하는 능력’이기도 하다. 모든 능력이 그렇듯이, 여기에도 치열한 훈련이 필요하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스승과 친구는 원래 하나다. 친구라지만 사배(四拜)하고 수업을 배울 수 없다면 그런 자와는 절대 친구하면 안 되고, 스승이라지만 마음속의 비밀을 털어놓을 수 없다면 그를 스승으로 섬겨서도 안 된다.”(이탁오 ‘분서’)

지식과 삶의 능동적 교감을 우리는 지혜라고 부른다. 우정이 타자와의 접속이라면 지혜는 자기에 대한 탐구다. 니체는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가장 먼 존재”라 말했다. 왜냐하면 단 한 번도 자기에 대한 탐구를 시도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기에 대한 앎이란 인식론, 존재론 같은 특정 과목의 이름이 아니다. 어떤 공부를 하든 그것이 온전히 자기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생물의 진화는 곧 내 몸의 역사이고, 천문학과 물리학은 곧 내가 사는 시공간의 이야기다. 아니, 내 몸이 곧 별이다. 오장육부는 음양오행이 펼치는 상생상극의 파노라마다. 자기에 대한 탐구가 우주적 비전으로 ‘통하는’ 것, 그것이 곧 지혜다.

앎은 공기나 물과 같다. 공기에는 경계가 없고 물은 오직 흐를 뿐이다. 앎 또한 그러하다. 앎은 순환해야 하고, 순환하지 않으면 앎이 아니다! 우정과 지혜는 그 순환의 최고 기술이다. 정기준이 지옥이라 불렀고, 세종은 구원이라고 말했던 그 ‘새로운 세상’은 바로 거기에 있다.

고미숙 고전평론가


(12. 4. 13)

댓글목록

helen01cn님의 댓글

helen01cn 작성일

<p>좋은 봄날 선생님의 주옥같은 글을 읽은 것은 이 화창하고 활력이 넘치는 봄의공기와 양분을 한몸에 흡수 하는 것과 같습니다. 매번 선생님말씀을 여기서 볼 수 있는 것 또한 저의&nbsp;삶에 양분을 주는 공기와 물인것 같습입니다... 제가 어떻게 선생님을 알게되었는지 또한 선생님의 글, 선생님께서 추천하신 좋은 책들을 접 할 수 있었을 까요?&nbsp; 생각해보면, 너무 신기하고 이것도 우주의 원리에서 찾을 수 있을 까요?&nbsp; 선생님 글 잘 읽었습니다.. 또한 이 글을 올려주신 장금쌤도 감사합니다!!!</p>

양력 2024.3.29 금요일
(음력 2024.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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