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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이 말하는 몸과 우주 ]<18>몸을 탐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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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장금 작성일12-04-17 20:42 조회3,1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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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좌우하는 집중력의 원천은 ‘튼튼한 육체’


 
내 고향은 강원도 정선군에 속한 오지다. 중학교도 황무지에 건물 하나만 덩그러니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3년 동안 하루 한두 시간씩 소위 ‘작업’을 해야 했다. 삽질을 하고 곡괭이로 돌을 캐서 리어카로 실어 나르는, 상당 수준의 ‘중노동’이었다. 그래서 괴로웠냐고? 천만에! 솔직히 교실에 앉아있는 것보다 몇 배 좋았다. 그러고도 방과 후면 축구에 배드민턴, 자전거 타기 등에 골몰했다. 나는 아주 내성적인 편에 속했다. 좀 더 활달한 친구들은 숫제 산으로 들로 쏘다녔다. 그러고도 나와 친구들은 거의 다 자기가 원하는 고등학교에 합격을 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자 마침내 소문으로만 듣던 도시의 입시 교육을 받게 됐다. 3년 내내 꼭두새벽부터 한밤중까지 교실에 앉아있어야 했다. 이것이 문명의 혜택이라니, 정말 끔찍했다. 물론 정규 수업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황무지 개간을 했던 교육이 좋았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 있었던 도시의 최상급 교육은 훨씬 더 나빴다. 그건 ‘창살 없는 감옥’이었다. 청춘이 속절없이 시들고 부질없는 원망만 키우는 감옥. 그렇게 했으니 그나마 대학에 간 거 아니냐고? 한때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만약 그렇다면 나는 아예 고등학교 진학부터 불가능했으리라. 공부는 양이 아니라 질이다. 그 질을 결정짓는 건 집중력이고, 집중력의 원천은 어디까지나 몸이다.

그로부터 30여 년, 강산이 세 번 바뀔 만큼의 시간이 흘렀지만 학생들의 처지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더 심해졌다. 그때는 도시에서나 가능했던 ‘최상급 교육’이 지금은 시골 구석구석까지 시행되고 있다. 그래서 참, 궁금하다. 그럼 10대들의 그 넘치는 에너지는 과연 어디에서, 어떻게, 떠돌고 있을까?





지난해 말 학교 폭력 문제로 사회가 한참 시끄러웠다. 각종 가족적, 사회적 원인과 처방들이 쏟아졌다. 그때 문득 나의 중학 시절이 생각났다. 중학생은 양기가 뻗치는 시기다. 나처럼 소심한 여중생도 가만히 앉아있기가 어려웠는데, 혈기 방장한 남학생들이야 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그 힘을 발산시킬 공간은 어디에도 없다. 골목도 마당도 광장도 다 사라졌다. 예전엔 그나마 쉬는 시간엔 뛰어다닐 수 있었건만 지금은 놀 때도 몸을 쓰지 않는다. “밖으로 발산되지 않는 모든 본능은 안으로 향해진다.”(니체) 적대감과 원한이 싹트는 토양이다. 그 힘이 나아갈 방향은 두 가지뿐이다. 자기를 학대하거나 아니면 타자를 짓밟거나. 전자가 우울증 혹은 자살 충동으로 이어진다면, 후자는 맹목적 분노 혹은 폭력 중독으로 나아간다. 이것이 생명의 물리적 법칙이다.

요컨대 집중력 향상이건 폭력 방지건 정말로 대책을 마련하고 싶다면 무엇보다 ‘몸의 원리’를 탐구해야 한다. 우주에 사계절이 있듯이 인생에도 춘하추동이 있다. 몸의 생리 역시 이 리듬을 탄다. 절기를 모르고서 농사를 지을 수 없듯이, 몸의 리듬을 모르고서야 어찌 교육이 가능할 것인가. ‘자연과 생명은 오직 순환과 운동이 있을 뿐이다.’(‘동의보감’) ‘통즉불통(通則不痛·통하면 아프지 않다, 혹은 痛則不通·아프면 통하지 않는다).’ 피상적인 차원의 소통이 아니라 생명의 차원에서 벌어지는 순환에 눈을 돌릴 때다.

고미숙 고전평론가


(12. 4. .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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