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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이 말하는 몸과 우주]<19>교육과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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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장금 작성일12-04-20 14:08 조회2,9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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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적 교감’ 있어야 ‘교실’이 살아난다


 

 
“우리 학교엔 남자 선생님이 한 분뿐이에요. 교장 선생님요!” 교장 선생님을 제외하곤 모두가 여선생님인 것이다. 이런 학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교대나 사범대에는 여학생의 수가 압도적이다. 임용고사에서도 여성의 합격률이 더 높다. 요컨대 이제 ‘교육 현장의 여성화’는 돌이킬 수 없는 대세가 됐다. 이쯤 되면 ‘교육과 여성’이라는 테마를 본격적으로 탐구할 때가 된 듯하다.

먼저 한 여성이 교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되짚어 보자. 임용고사의 경쟁률은 아주 높다. 오죽하면 ‘고시’라 하겠는가. 그러니 거기에 합격하려면 대학 4년을 거의 시험 체제로 보내야 한다. 그 이전에 교대나 사범대에 들어가기 위해서도 험난한 코스를 거쳐야 한다. 10대에는 입시를 위해 청춘을 불태우고 대학에 들어간 다음엔 임용고사를 위해 또 청춘을 바치는 것이다. 보다시피 이 사이클엔 출구가 없다. ‘체력 단련’의 과정은 물론이고 삶을 다양하게 체험할 만한 기회가 거의 없다는 의미다.

“남자는 양이니 기를 얻으면 흩어지기 쉽고, 여자는 음이니 기를 만나면 울체가 된다.”(‘동의보감’) 여성들의 병은 대부분 이 ‘기의 울체’에서 비롯한다. ‘기울(氣鬱)’이 담음으로, 또 어혈과 종양으로 이어진다. 이런 양상은 여교사들에겐 특히 치명적이다. ‘교실’이 살아 있으려면 무엇보다 ‘신체적 교감’이 중요하다. 하지만 만성적 ‘기울’ 상태로는 교감 능력에 한계가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코스에는 ‘왜 교사가 되고 싶은가?’를 깊이 탐구하는 과정이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모든 학생이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상당수 학생이 임용고사에 매진하는 건 교사가 안정된 정규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참 곤란하다. ‘배움’에 대한 열정이 없다는 뜻이 아닌가. 교육은 지식과 소양 이전에 ‘앎의 열정’을 전수하는 것이다. 만약 교사에게 이 열정이 없다면 교직은 스트레스 덩어리다. 현장과 욕망 사이에 아주 큰 간극이 생기는 탓이다. 동의보감에선 이것을 ‘칠정상(七情傷)’이라 부른다. 칠정은 ‘희노우사비경공(喜怒憂思悲驚恐)’을 뜻하는데, 이 감정들이 균형을 잃으면 오장육부 곳곳에 병이 생긴다. 요컨대 지금 여교사들은 기본적으로 ‘기울’과 ‘칠정상’에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

예전엔 반대로 남자 교사가 주류였다. 학교가 권위와 규율의 대명사였던 것도 양기와 근육을 주로 쓰는 ‘남성성’과 무관하지 않다. 그에 반해 지금 학교는 일종의 서비스 기관이다. 여교사가 늘어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 덕분에 권위와 억압은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교실의 자율성이 고양된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교권과 학생 인권 모두 다 무너졌다는 아우성이 그치질 않는다. 대체 왜? 수많은 진단과 분석이 가능할 테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게 뭐든 이제 그 매듭을 푸는 건 전적으로 여교사들의 몫이라는 점이다.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한 건 이 때문이다. 하여 나는 참, 궁금하다. 그 숱한 힐링캠프와 상담 프로젝트 가운데 왜 동의보감을 탐구하는 과정은 없는지.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이 매끄럽게 이어지는 동의보감의 비전이 교육 현장에서 활발하게 순환될 수 있다면…. 실로 기쁘지 아니한가!

고미숙 고전평론가


 


(12.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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