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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이 말하는 몸과 우주]<22>‘스펙터클’에서 ‘서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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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장금 작성일12-04-29 00:16 조회3,1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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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최초”“세계 최대”…최첨단 건물엔 겉치레 가득



 

 

 
 나는 고전평론가 겸 프리랜서이다. 강연이 주업이다 보니 도서관, 시청, 평생학습센터 등 전국 곳곳을 직접 답사할 기회가 많다. 지역과 단체, 분야를 불문하고 공통점이 하나 있다. 놀라울 정도로 시설이 좋다는 것. 콘셉트도 거의 동일하다. 친환경적 조형과 첨단의 디지털 장비들. 처음엔 ‘와∼’ 하고 감탄하다가 어느 순간 문득 궁금해졌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과연 이만큼 행복할까? 혹은 이 화려한 공간들은 대체 무엇으로 채워지고 있을까? 혹시 대부분 비어있는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겉보기엔 ‘유토피아’인데, 사람들의 숨결이 없다면 거기는 천국일까, 지옥일까? 지당한 말이지만 친환경이건 디지털이건 모든 공간은 사람과 접속해야 한다. 접속이 곧 공간의 생명력이다. 우주가 ‘천지인(天地人)’의 삼박자로 돌아가듯이 말이다.

그래서 든 생각 하나. 그동안 우리는 정치를 이렇게 크고 멋진 건물을 짓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이름 하여 ‘스펙터클’의 정치! 스펙터클의 정치에선 수량과 속도가 척도다. 화려한 시설을 갖춘 곳엘 가면 흔히 듣는 말이 있다. 지역 최고 아니면 동양 최초, 혹은 세계 최대 등. 무슨 활동을 하느냐고 하면 역시 아주 크고 럭셔리한 축제나 이벤트를 나열한다. 그럼 평소에는? 그냥 건물 관리만 한다. 이런! 삶은 이벤트나 오디션이 아니다. 숫자나 사이즈는 더더욱 아니다. 삶은 네트워크요, 길이다. 그러므로 이 화려한 공간으로 인해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가? 사람과 사람, 일상과 일상이 어떻게 연결됐는가? 그것이 알고 싶다! 하지만 그에 대한 이야기는 지극히 빈곤해 보인다. 아니, 그 이전에 거기에 대한 욕망 자체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과 공간이 마주치면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들의 퍼레이드가 서사다. 이야기 혹은 스토리라 해도 무방하다. 정치란 바로 이 ‘서사’를 창안하는 활동이다. 따라서 최첨단의 공간과 시설을 갖췄다면 당연히 그에 걸맞은 서사가 탄생돼야 한다. “형(形)과 기(氣)가 서로 맞으면 장수하고 서로 맞지 않으면 요절한다. 피부와 살이 서로 잘 맞물리면 장수하고 잘 맞물리지 않으면 요절한다. 혈기와 경락이 형을 감당하면 장수하고 감당하지 못하면 요절한다.”(‘동의보감’) 즉, 장수하려면 무조건 크고 튼튼한 것이 아니라 몸의 형태와 기운이 서로 어울려야 한다. 언행일치, 지행합일이 불멸의 윤리인 것도 같은 이치다. 그런 점에서 스펙터클의 과잉과 서사의 부재는 치명적이다. 스펙터클의 정치는 삶의 구체적 현장이 아니라 이미지를 생산하는 데 주력하기 때문이다. 이미지는 이미지일 뿐 리얼리티가 아니다. 이미지가 현장을 압도하면 거기에는 엄청난 간극과 균열이 발생한다.


서사는 그와 반대다. 서사는 공간을 살아 움직이게 한다. 공간이 일상의 현장으로 탈바꿈하는 순간, 서사가 탄생한다. 서사의 파노라마 속에서는 누구나 주인공이 된다. 주동자건 관찰자건 주연이건 조연이건 모두 자기의 능력과 욕망을 있는 그대로 발휘할 수 있는 까닭이다. 스펙터클은 수량과 속도를 경쟁하지만 서사는 그런 경쟁과 위계 자체를 해체한다. 화려한 시설의 구경꾼이 될 것인가? 아니면 생동하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것인가? 이보다 더 정치적인 질문은 없다!

고미숙 고전평론가

 

(2012.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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