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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이 말하는 몸과 우주]<23>서사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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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장금 작성일12-05-01 14:44 조회3,2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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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의 사람들은 왜 ‘무한도전’에 열광할까



 

 


스펙터클의 정치는 수량과 속도를 척도화한다. 다다익선(多多益善) 혹은 더 크게, 더 빨리! 헌데 그렇게 경쟁을 하다 보면 결국 모든 차이가 증발한다. 성형미인들이 다 엇비슷하게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실제로 서울과 지방, 도시와 시골의 특성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다시 원점이다. 이 첨단의 시대에 끊임없이 혁신과 창의성을 외쳐대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참으로 서글픈 현실이다.

더 큰 비극은 이제 스펙터클이 사람들로부터 경탄을 끌어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디지털 혁명은 천기누설에 가까운 광경들을 전방위적으로 쏘아댄다. 사람들은 이제 아마존 정글과 세렝게티 대초원, 심지어 별들의 탄생과 소멸까지 ‘손 안에서’ 감상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사람들은 자꾸만 어디론가 떠난다. 인도로, 다람살라로, 혹은 부탄으로. 하나같이 가난하고 척박한 곳들이다. 이 화려한 도시의 불꽃을 두고 왜 그토록 삭막한 곳으로 떠나는 것일까. 그건 지극히 당연하다. 빛이 화려하면 내부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몸에서도 ‘화(火)’ 기운을 많이 쓰면 허화(虛火)가 망동한다.”(동의보감) 불면증, 우울증, 공황장애 등이 다 거기서 비롯한다. 더 결정적으로 내가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게 된다. ‘자기로부터의 소외’가 바로 그것이다. 하여 이 빛의 폭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외부를 향해 쏘아댔던 빛을 자기 내부로 향하기 위해서.

이상한 현상은 또 있다. 이 현란한 디지털의 시대에 사람들은 왜 ‘무한도전’과 ‘1박 2일’ 같은 프로그램에 열광하는가. 이들의 공통점은 오직 맨몸으로 상황을 돌파하는 것. 말하자면, 사람들은 몸과 몸이 마주치면서 만들어지는 이야기에 열광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수많은 토크쇼는 또 뭔가. 볼거리와 이미지는 다 포기하고 다양한 인물군상이 뒤섞여 오직 웃고 떠든다. 스펙터클의 정치는 언제나 쇼로, 쇼는 또 노래와 춤 같은 공연예술로 이어진다. 하지만 그것만이 원초적 본능이라고 착각하지 마시라. 그 못지않게, 아니 더 강렬한 것이 ‘서사 본능’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언어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호모 로퀜스’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말하는 것을 언(言)이라고 하고 다른 사람에게 대답하는 것을 어(語)라고 한다.”(동의보감) 다시 말해서 언어는 자신과의 소통이자 타자와의 능동적 교감행위이다. 이 소통과 교감의 욕망이 서사를 구성한다.

그러므로 서사는 그 자체로 집합적이다. 여기서는 ‘다다익선’의 법칙이 아니라 각자의 개성과 차이가 더 핵심이다. 타자들의 시끌벅적한 향연, 그것이 곧 서사적 네트워크요, 길이다. 따라서 이 길 위에선 늘 유머가 생성된다. 유머는 단순한 웃음이 아니라 기존의 통념과 질서에 균열을 일으키는 역설 혹은 아이러니다. 이 전복적 여정 위에서 또다시 삶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고로, 서사와 유머야말로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최고의 다리다. “울어라, 너 혼자 울 것이다!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영화 ‘올드보이’에 나오는 인디언의 경구) 정치적 비전이 스펙터클에서 서사로 이동해야 하는 가장 단순하고도 명쾌한 이유다.

고미숙 고전평론가


 


(12.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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