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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이 말하는 몸과 우주]<24>자기배려와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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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장금 작성일12-05-08 14:03 조회3,05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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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귀히 여겨야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


 

 
“한 사람의 몸은 한 국가의 모습과 같다. 심장은 군주지관으로 신명(神明)이 나온다. 폐는 재상지관으로 치절(治節)이 나온다. 간은 장군지관으로 모려(謨慮)가 나온다.”(‘동의보감’)

오장육부는 음양오행의 배치다. 간·담은 목(木), 심·소장은 화(火), 비·위는 토(土), 폐·대장은 금(金), 신·방광은 수(水) 등이다. 한편 그것은 군주와 재상, 장군 등 사회 정치적 관계로 변주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지위나 서열이 아니라 특이성에 가깝다. 중요한 건 이들 사이의 ‘파워게임’이 아니라 매끄러운 순환이기 때문이다. 순환은 상생상극의 파노라마다. 상생과 상극에는 특권과 위계가 통하지 않는다. 지위가 뭐든 때론 어울리고 때론 맞선다. 이 어울림과 맞섬이 순환이다.

조직의 생리 또한 다르지 않다. 제도권이든 아니든 조직은 일종의 ‘집합적 신체’다. 따라서 조직의 생명력 역시 각 기관의 교류와 연동에 있다. 순환의 리듬과 강밀도(强密度)가 그 조직의 내공이다. 서열과 위계가 강화되는 순간 순환의 동력은 사그라진다. 수승화강(水昇火降)이 안 되면 몸 곳곳에 담음이 쌓이듯 조직 역시 ‘만성적 피로’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면 힘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동시에 각 기관의 이음매는 끊어지고 만다.





이 경우 대안은 주로 시스템을 강화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권력을 공평하게 나누고 분산하는 식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그걸 움직이는 건 사람이기 때문이다. 시스템은 권력을 분배할 수는 있어도 순환의 동력은 되지 못한다. 마치 수치는 다 정상인데 한없이 무기력한 신체처럼.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시각과 전제를 바꾸어야 한다. 제도에서 사람으로. 분배에서 순환으로.

따라서 리더십을 닦고 싶다면 무엇보다 자기에 대한 탐구를 먼저 해야 한다. 정치가들의 시선은 늘 밖을 향해 있다. 국가를 위하여, 사회를 위하여, 국민을 위하여. 그 내용도 주로 제도와 시스템, 건물과 도로 등 ‘외형적인’ 것들이다. 그런데 나는 늘 궁금하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런 식의 활동과 업적이 자신의 삶과는 어떻게 연동되는지. 요컨대 ‘자기배려’의 윤리에 대해서 말이다.

고대 그리스는 민주주의 정치가 꽃핀 시대였다. 이때 정치가는 철학자였고, 가장 중요한 덕목은 자기배려였다. 타인을 통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배려가 필요하다고 여긴 것이다. 사실 그렇다. 자기를 배려할 수 없다면 다수의 국민 혹은 익명의 군중을 위해 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또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어떻게 다수에게 행복을 선사할 수 있단 말인가. 결국 리더십과 자기배려는 함께 간다. 그 자기배려의 현장이 바로 몸이다. 몸과 우주의 이치를 알아야 한다는 건 바로 이런 맥락이다. 몸이 순환하는 이치를 모르고서 어떻게 조직을 움직이며 천지만물의 변화하는 원리를 모르고서야 어찌 미래적 비전을 설파할 수 있으랴.

공자가 ‘위기지학(爲己之學·자신을 위한 학문)’을 설파한 것도 이런 맥락이리라. 노자는 한술 더 떠 이렇게 말한다. “내게 몸이 없다면 무슨 걱정거리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자기 몸을 귀히 여기는 것처럼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에게는 정녕 천하를 맡길 수 있으며, 자기 몸을 사랑하듯 천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천하를 넘겨줄 수 있다.”

고미숙 고전평론가


 


(동아일보, 12..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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