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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이 말하는 몸과 우주]<27>가족, 비밀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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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장금 작성일12-05-15 08:26 조회3,593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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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줄의 장막’을 벗어나 세계와 직접 대면하라



놀라운 사실은 사람들이 자신의 가족만을 챙김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해체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정적 증거가 우리 삶을 반영한다는 드라마다. 요즘 드라마의 테마는 거의 다 가족의 사랑이다. 멜로의 대단원도 늘 엄마, 아빠, 아이의 삼각형을 이루면서 끝난다. 그런데 정작 그 삼각형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거짓말은 기본이고 음모에다 배신이 판을 친다. 속고 속이고, 훔치고 튀고. 가히 ‘납량특집’에 버금갈 지경이다.

게다가 거의 모든 주인공이 출생의 비밀을 안고 있다. 이것도 참 역설이다. 전쟁이나 분단처럼 역사적 수난을 당한 것도 아니고, 가족이래야 달랑 셋 아니면 넷인데, 어째서 이렇게 핏줄이 수시로 뒤바뀐단 말인가? 혹시 이런 모티브 자체가 가족의 ‘심리적 거리’를 반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즉, 가장 가까운 듯하면서 가장 멀리 있고, 가장 애틋해하지만 결정적인 국면에선 서로를 외면하는 관계들, 핵가족이라는 말이 보여주듯 더 쪼개질 수 없이 작아졌는데도 가볍고 경쾌해진 것이 아니라 대가족 시절보다 더 복잡하고 수상해진 관계들. 이를테면 가족은 ‘비밀의 정원’이 되어버린 것이다.

‘비밀의 정원’은 음지에 있다. 음기는 수렴하고 저장하는 기운이다. 따라서 신비로울지는 몰라도 생명이 약동하지는 않는다. 그래서인가. 우리 시대 여성들은 대개 아프다. 청춘은 청춘대로, 중년에는 중년대로, 갱년기가 되면 또 갱년기라서. 세대와 무관하게 거의 모든 여성이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계층의 차이도 별 의미가 없다. 부유하면 부유한 대로, 가난하면 또 가난해서. 하나같이 상처받은 존재들이다.





더 놀라운 건 상처의 내용이 엇비슷하다는 사실이다. 희한하게도 상처의 원천은 유년기에 가족에게서 받은 것이다. ‘엄마가 나를 버렸어’, ‘아빠가 우리를 버렸어’, ‘언니 혹은 오빠 때문에 내가 방치됐어’ 등. 결국 문제는 가족이다. 당연하지 않느냐고? 절대 그렇지 않다. 성인이 된다는 건 핏줄의 장막을 벗어나 세계를 직접 대면하고 그 과정에서 가족 삼각형과는 전혀 다른 관계 속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친구와 선배, 스승은 물론이고 라이벌과 원수를 만난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어린 시절의 상처가 삶을 지배한다면 새로운 관계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보통의 심리치료는 어린 시절의 해결되지 않은 감정들을 다시 확인하고 치유하며 통합하는 작업을 통해서 이뤄진다. 이 경우 자신은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확신을 얻기도 하지만, 반면 부정적 감정이나 고통을 유발한 책임을 부모나 주위 사람에게서 찾았기에 자신은 희생자라는 감정에 사로잡히기 쉽다.”(허훈, ‘마음은 몸으로 말한다’) 그렇다! 결국은 모두가 희생자다. 하여, 그 결핍을 메우기 위해 다시금 사랑을,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랑받기’를 갈구한다.

이 또한 기이한 노릇이다. 여성이 이토록 해방된 시대가 없는데, 왜 여성은 끊임없이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는 걸까? 이젠 여성이 사랑을 ‘하는’ 주체가 되면 안 되는가? 생존을 기대지 않아도 되고, 얼마든지 지성에 접속할 수 있고, 삶을 변용할 수 있는 다양한 통로가 열렸는데, 왜 여전히 누군가가 자신을 ‘욕망해 주기’를 욕망하는가? 대체 사랑이 뭐기에?

고미숙 고전평론가


 


(동아일보, 12. 05. 10)

댓글목록

안되니까님의 댓글

안되니까 작성일

<p>선생님의 존재비판과 쌍을 이루는듯 보이는 당위들은 무엇을 근거로해서 나오나요?</p>
<p>왠지 찌질하면 안될거 같아서...</p>

양력 2024.3.29 금요일
(음력 2024.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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