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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이 말하는 몸과 우주]<29>솔로와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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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장금 작성일12-05-15 08:36 조회3,2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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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족은 그 자체로 위험…‘관계’를 맺어줘야


 

 

“교감단(交感丹): 여러 가지 기의 울체를 치료한다. 칠정에 상하여 음식 생각이 없고 가슴이 막히고 답답한 증상에 큰 효과가 있다.”(‘동의보감’) ‘기가 꽉 막혀서’ 생긴 병에 대한 처방인데, 이름이 참 흥미롭다. 교감이 얼마나 중요하면 이런 이름을 붙였겠는가. 사실 그렇다. 양생의 원리는 ‘교감’이 전부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예컨대, 우리 몸에는 온갖 이질적인 존재들이 득시글거린다. 기생충에 박테리아, 각종 세균. 살기 위해선 이 낯선 존재들과 공생을 도모해야 한다. 이 공생의 핵심이자 동력이 바로 교감이다.

삶의 원리 또한 마찬가지다. 사람에겐 사람만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돈을 버는 것도, 권력을 쟁취하는 것도 다 사람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던가. 외로움과 고립감만큼 사람을 두렵게 만드는 일도 없다. 그래서 그토록 가족에 집착하는 것이리라. 헌데, 가족에 대한 집착이 심화될수록 점점 더 솔로가 늘어난다. 미혼에 비혼, 이혼에 홀몸노인 등 일인 가족의 유형도 점점 다양화되고 있다.

일인 가족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하지만 일인 가족은 그 자체로 위험하다. 경제나 신변의 문제를 떠나 생명력 차원에서 그렇다는 뜻이다. 특히 혼자서 먹는 밥은 생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치명적이다. 그리고 의식주의 윤택함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거의 다 잉여가 된다. 즉 더는 삶을 풍요롭게 해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더 중요한 건 ‘관계’다. 주고받는 말, 함께 하는 행동, 어제와 다른 사고방식, 이 삼박자의 리듬이 있어야 ‘정기신’이 살아 움직인다. 예전에는 먹고살기가 힘들어 어떻게든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살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혼자서도 어느 정도 생계유지가 가능하다. 그래서 점점 더 고립의 길을 자초하게 된다. 이것도 참 시대적 역설이다.

정치가들은 주로 솔로들의 복지와 안전에만 주안점을 둔다. 관계와 교감 같은 건 사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안이라고 간주한다. 하지만 그건 일종의 방임주의다. 삶의 가장 핵심적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란 단지 물질을 분배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관계의 능동적 흐름을 창안하는 활동이다. 솔로들이 처한 가장 핵심적 문제는 실존적 고립감이다. 그 고립감에서 탈피할 수 있는 네트워크는 어떻게 가능한가? 정치적 창의성이 발휘되어야 할 지점이 바로 여기다. 단서는 아주 가까운 데 있다.

멜로와 시트콤의 차이는? 멜로는 순수한 가족삼각형을 지향하고, 시트콤은 ‘콩가루 집안’에서 시작한다. 헌데 전자에선 그것이 비극의 원천이고, 후자에선 유쾌발랄한 서사의 원동력이 된다. 그 원조격인 만화 ‘아기공룡 둘리’를 떠올리면 된다. 둘리네 집은 외계인에 동물까지 그야말로 타자들의 아수라장이다. 그래서 늘 활력이 넘친다. 솔로들에게 다시 핵가족의 동일성을 강조하는 건 무의미하다. 오히려 그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서로 간의 다양한 ‘이합집산’이 가능하도록 해줘야 한다. 이를테면 공동주택의 활성화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요컨대 혈연을 넘어 다양한 세대와 계층이 뒤섞일 수 있는 ‘일상적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는 것. 가족이면서도 가족이 아닌, 그래서 아주 새로운 ‘타자들의 공동체’가 될 것이다. 우리 몸이 본디 그러한 것처럼.

고미숙 고전평론가


(12.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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