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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이 말하는 몸과 우주]<33>너희가 ‘돈’을 믿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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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장금 작성일12-05-25 05:20 조회3,02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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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돈’은 변덕스럽고 예측 불가능…경계해야



돈을 부정적으로 그린 중세 기독교 미술. 말글빛냄 제공


 


 


“옛날 옛적에 도적 세 명이 함께 무덤 하나를 파서 금을 도굴하고는 자축도 할 겸 술을 한잔 마시기로 했다. 한 명이 선뜻 일어나 술을 사러 가면서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하늘이 내린 좋은 기회로구나. 금을 셋이 나누는 것보다는 내가 독차지하는 것이 좋지 않은가?’ 그는 술에 독약을 타 가지고 돌아왔다. 그런데 오자마자 남아 있던 두 도적이 갑자기 달려들어 그를 때려죽였다. 그런 다음 둘은 술과 음식을 배불리 먹고 금을 반분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온몸에 독이 퍼져 함께 무덤 곁에서 죽고 말았다. 그 후 도굴된 금은 길 옆에서 굴러다니다가 누군가의 손에 들어갔다. 그걸 얻는 자는 하늘에 감사를 드리면서도 이 금이 무덤 속에서 파낸 것이고, 독약을 먹은 자들의 유물이며, 또 앞사람 뒷사람을 거쳐 몇천, 몇백 명을 독살했는지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속 이야기다. 열하로 가는 여정 중에 ‘황금대’라는 곳을 지나면서 그곳의 유래를 적은 것이다. 엽기적이지만 아주 ‘리얼한’ 스토리다. 예나 지금이나 황금은 탐욕을 부추긴다. 그 탐욕이 도굴이나 살인도 불사하게 만든다. 그렇게 해서 돈에는 이런 참혹한 서사들이 따라붙게 된다. 고로, 돈은 결코 무성(無性)의 매개수단이 아니다. 연암의 말처럼 무덤에서 나왔고, 독약을 먹은 자들의 유물이며, 수많은 사람의 목숨과 맞바꾼, 하여 엄청난 ‘사건들의 총합’이다. 대체 누가 이 인연의 그물망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인가? 그래서 부를 일구려면 그 잠재적 파괴력을 다스릴 만한 내공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위의 글에 나오는 도적들의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

솔직히 요즘의 사건들을 보면 위의 이야기는 소박한 수준이다. 부모 자식 간에, 부부 사이에, 친구 혹은 연인 간에 참으로 입에 담기 어려운 일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가. 그 사연들은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돈과 함께 떠돌아다니기 마련이다. 그래서 돈처럼 변덕스럽고 예측 불가능한 것도 없다. 그런데 돈이 생기면 나의 삶이 안정될 거라고? 어불성설이다. 더구나 현대인들은 돈이 갑자기 뚝 떨어지기를 바란다.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바라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즉 우리 시대에 있어 성공은 곧 대박을 의미한다. 대박이란 무엇인가? 어디선가 ‘눈먼’ 돈이 뭉치로 들어온다는 뜻이 아닌가. 그만큼 ‘눈먼’ 돈들이 떠돌아다닌다는 뜻이기도 한데, 그게 얼마나 내 삶을 뒤흔들어 놓을지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버블경제가 남긴 영혼의 버블이다. 여기에 휩쓸리면 존재 자체가 버블이 되어 언제 훅 꺼져버릴지 모른다. 실제로 그런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연암은 그 다음 대목에서 이렇게 덧붙인다. “그러니 천하의 인사들은 돈이 있다 하여 꼭 기뻐할 것도 아니요, 없다고 하여 슬퍼할 것도 아니라네. 아무런 까닭 없이 갑자기 돈이 굴러올 때는 천둥처럼 두려워하고, 귀신처럼 무서워하며, 풀숲에서 뱀을 만난 듯이 머리끝이 오싹하여 뒤로 물러서야 마땅할 것이네.” 말하자면 돈이 불러들이는 운명의 인과를 깊이 통찰하라는 것. 하여 “안정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해, 돈돈돈!”이라고 외쳐대는 현대인들에게 연암이라면 이렇게 되물을 것이다. “너희가 진정, ‘돈’을 믿느냐?”

고미숙 고전평론가

 

(동아일보 12.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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