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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이 말하는 몸와 우주]<38>“돈을 물 쓰듯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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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장금 작성일12-06-09 09:36 조회3,19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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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돈이라도 극빈층엔 ‘생명의 물’과 같다




2006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무함마드 유누스 방글라데시 그라민 은행 총재. 동아일보DB


 

‘장자’에 나오는 일화 한 토막. 장주(莊周)가 한 관리에게 곡식을 빌리러 갔다. 그가 “곧 세금을 거둘 테니 그때 거금 300금을 빌려주겠노라”고 말했다. 발끈한 장주, 즉각 붕어에 대한 우화로 대거리를 한다. 조그만 웅덩이에 물이 말라 붕어가 장자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그러자 장자가 크게 선심을 쓴다. “남쪽에 가서 촉강의 물을 보내주겠노라”고. 그러자 붕어는 “한 양동이의 물만 있으면 되는데 저 멀리 있는 강물을 끌어다 주겠다고? 차라리 그냥 죽으라고 해라!”라고 말했다. 그렇다. 목마른 이에겐 지금 당장 한 표주박의 물이면 족하다. 마찬가지로 지금 당장 곡식 한 말이면 될 것을 그건 제쳐두고 훗날 거금을 주겠다니. 이 터무니없는 계산법은 대체 뭐란 말인가.

곰곰이 따져보면 우리 시대가 돈 쓰는 방법이 딱 이렇다. 사람들은 생각한다. 돈은 모름지기 ‘뭉치’로 들어와야 한다고. 그렇지 않은 돈들은 별 가치도 없고, 그래서 허투루 써도 상관없다고. 남을 도울 때도 마찬가지다. 거금을 통해 기부를 하는 것이 아니면 아예 마음을 쓸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 결과 조직이든 개인이든 화려한 외양과 이벤트에는 돈을 펑펑 쏟아 붓지만 당장의 목마름을 해소하고 일상을 매끄럽게 해주는 일에는 대체로 무심하다.

이런 통념을 한방에 날려버린 이가 하나 있다. 방글라데시의 은행가 무함마드 유누스다. 방글라데시에선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는다. 그런데 이 나라는 매년 수백억 달러에 달하는 국제원조를 받는다. 하지만 대부분은 원조를 하는 나라에서 쓰고 4분의 1 정도가 방글라데시로 오는데, 그것도 대부분은 관료와 기업, 감독관의 손으로 들어간다. 한마디로 돈을 관리하는 데 거의 모든 돈을 쓰는 셈. 게다가 원조 사업이란 것도 도로를 닦거나 다리를 놓는 등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장기적으로나’ 도움이 될 만한 인프라 구축이 대부분이다. 사람들은 기다리다가 그 사이에 대개 굶어 죽는다. (‘가난한 사람들의 은행가’)


그야말로 웅덩이에 갇힌 붕어의 처지와 같은 꼴이다. 그가 ‘그라민 은행’이라는 새로운 실험을 시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은행에선 극빈층 여성에게 돈을 빌려준다. 액수도 5달러에서 50달러까지다. 딱 생활의 자립에 필요한 만큼만 제공해 주는 것. 물론 자립한 다음엔 당연히 갚아야 한다. 이 은행을 통해 ‘인생역전’을 하게 된 한 여인의 말이다. “그라민 은행은 제게 어머니 같은 존재예요. 새로운 생명을 주었거든요.” 그렇다. 이것이 돈의 ‘본래면목’이다. 물이자 생명이자 창조의 무기로서의 돈. “돈을 물 쓰듯 하라”는 건 바로 이런 것이다.

덧붙여 물에 대해서도 한마디. 상식적인 말이지만 지구촌 전체가 사막화되고 있다. 물론 자업자득이다. 언제부턴가 물이 ‘화폐화’됐고 사람들은 앞다퉈 지하 광천수를 끌어다 쓰기 시작했다. 동시에 ‘아파트 열풍’으로 집집마다, 심지어 방마다 샤워실이 들어서면서 도시인들의 물 소비량은 천문학적 단위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럴수록 맑고 깨끗한 물에 대한 갈증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청정함에 대한 탐욕’이라니, 참 지독한 역설이다. 이 악순환의 사슬을 벗어나는 방법은 오직 하나, 돈은 ‘물’ 쓰듯 물은 ‘돈’ 쓰듯 하는 것이다.

고미숙 고전평론가

 


(동아일보, 12.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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