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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이 말하는 몸과 우주]<44>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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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장금 작성일12-06-20 20:15 조회3,45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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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낳는 자체가 우주생성의 과정에 참여하는 것






인류학자 나카자와 신이치에 따르면 역사상 모든 부족은 남성에게 통과의례를 부여했다. 성인식 때는 물론이고 성인이 된 다음에도 남성은 주기적으로 혹독한 정화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다름 아닌 자연의 ‘비밀지(秘密知)’를 체득하기 위해서다. 인간은 근원적으로 자연의 산물이다. 따라서 삶을 제대로 영위하기 위해선 자연과의 깊은 교감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건 죽음을 불사할 정도의 치열한 수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아주 멀리까지 도보여행을 하거나 숲에서 명상을 하거나 혹은 장기간 단식을 하거나.

그럼 여성은? 여성은 그럴 필요가 없다. 먼 길을 떠날 필요도, 고행을 자처할 필요도 없다. 그는 말한다. “여성은 이미 무의식적으로 교감 능력을 지니고 있다. 또 그것은 일상생활을 원만하게 해나감으로써 얼마든지 구현될 수 있다. 특히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 자체가 훌륭한 통과의례와 다름없다.”(‘대칭성 인류학’) 사실 그렇지 않은가. 아이를 낳는 건 그 자체로 우주적 생성의 과정에 참여하는 일이다. 아이를 기르는 행위 역시 마찬가지다. 즉 여성에겐 일상 자체가 자연이고, 곧 자연의 비밀지를 터득하는 과정이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는 미래의 문명을 구할 두 여성이 나온다. 하나는 바람계곡의 공주님 나우시카, 또 다른 하나는 나우시카의 미래를 예언하는 눈먼 할머니다. 그들의 저력과 내공은 간단하다. 동식물 혹은 바람 등과의 깊은 감응력, 그리고 어떤 억압에도 굴하지 않는 담대함. 이것이 바로 여성성 혹은 자연지의 구체적 표상이 아닐지.

하지만 불행히도 여성과 자연 사이의 ‘복된’ 결합은 이젠 불가능하다. 현대 여성은 더이상 자기 몸과 삶의 주체가 아니다. 몸은 병원과 제도에 맡기고, 마음은 가족과 사유재산 안에 가뒀다. 일단 임신부터 병원의 인증이 필요하다. 왜 여성들은 스스로 생명의 잉태를 감지할 수 없는 것일까. 출산 역시 비슷하다. 병원과 기계가 정밀해질수록 여성들의 신체적 감응력은 침묵 봉쇄되고 있는 것이다. 육아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분유부터 학습지, 예방접종 등등의 모든 과정에 엄마가 창안하는 일은 거의 없다. 엄마는 그저 병원과 상품의 대리인에 불과하다. 남는 건 아이에 대한 지독한 집착뿐이다. “내 아이만은!” “내 아이니까!” 이것은 결코 생명과 창조의 과정이 아니다. 아이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증식하려는 행위일 뿐이다. 임신과 육아가 이럴진대 다른 분야야 말해 무엇하랴. 그 결과 많은 여성이 아프다. 몸도, 마음도.

그도 그럴 것이 자연지가 침묵할수록 생명의 원천과는 더욱 멀어지기 때문이다. 즉 지금 여성들은 자기 자신과 소통하는 법을 잃어버렸다. 불통즉통(不通則痛·통하지 못하면 아프다)! 이건 그저 문화심리학적 분석의 대상이 아니다. 매우 시급하고도 절박한 정치적 사안이다. “당신이 어머니라면 어머니로서의 행위도 정치적이다. 질병을 치유하거나 과거를 기억하는 것 역시 정치적인 행위다.”(크리스티안 노스럽의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 하나.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뿐이라는 것. “우리가 기다렸던 사람은 바로 우리다.”

고미숙 고전평론가


 


(2012.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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