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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이 말하는 몸과 우주]<47>‘개콘’에 열광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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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장금 작성일12-06-28 08:43 조회3,54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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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는 소통-공감 이끌어내는 최고의 전략이다



개그콘서트 중 ‘용감한 녀석들’.


 

나는 KBS2 ‘개그콘서트’의 열렬한 팬이다. 당연히 개그맨들을 좋아한다. 아니 그 이상이다. 나는 연예인들 가운데 개그맨을 가장 존경한다. 무엇보다 각양각색의 ‘울퉁불퉁한’ 얼굴 때문이다. 몸매 역시 다양하기 그지없다. 드라마에선 참 보기 어려운 캐릭터들이다. 드라마에 나오는 인물들, 특히 주인공들은 대체로 다 매끈하다. 깎아놓은 듯한 이목구비에 늘씬한 키, 세련된 매너 등. 솔직히 구별이 잘 안 될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드라마의 단골 소재인 삼각관계의 경우 굳이 왜 저 사람이고 이 사람은 안 되는지가 납득이 잘 안 된다. 인간성이 좋아서? 인간성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왜 그렇게 ‘매끈한’ 외모가 필요한 거지? 얼굴과 몸매가 분리될 수 없듯 성격 또한 몸과 함께 간다. 비슷하게 생겼는데, 인간성이 다르기는 참 어렵다. 드라마의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건 그 때문이다. 하지만 ‘개콘’은 다르다. 다 ‘제각각’일 뿐더러 그래서 변신 또한 자유롭다. 그 차이와 변용에서 ‘유머와 역설’이 탄생한다.

그런 점에서 성형은 ‘미친 짓’이다. 모든 차이와 개성을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성형은 어느덧 ‘미시 정치’의 핵심이 됐다. 모든 세대와 계층을 지배하는 욕망의 배치라는 점에서 그렇다. 더이상 ‘이목구비’가 아니라 턱과 이마, 뒤통수, 아니 몸 전체가 성형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전쟁 때도 아닌데 이렇게 온몸을 ‘깎고 조이고 째고’ 할 수 있다니, 참으로 기막힌 일이다. 차이가 사라지면 남는 건 서열과 차등뿐이다. 작은 얼굴, 큰 눈, 두툼한 입술, 긴 다리, 식스팩 등. 이제 사람들은 이 기준을 통해 인생의 희로애락과 길흉화복을 점친다. 그렇다면 참 이상하다. 마이클 잭슨과 휘트니 휴스턴 등 세계적인 대스타들은 대체 왜 그토록 외로운 삶을 살아야 했을까? 그렇게 아름답고 인기가 많았는데도.

이 대목에서 반드시 환기해야 할 사항이 하나 있다. 성형만이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믿는 건 외모를 특권화하는 권력을 기꺼이 감내하겠다는, 그리고 그런 차별에 기꺼이 동참하겠다는 정치적 선언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무엇이 좌절한 사람들을 괴롭히는가? 바로 자신이 돌이킬 수 없이 망가졌다는 자각이다. 그들의 가장 큰 욕망은 그런 자신에게서 달아나는 것이다.”(에릭 호퍼의 ‘맹신자들’) 도피는 맹목을 낳고 맹목적 질주가 곧 파시즘의 원천이다. 성형이 ‘미시 정치적’ 키워드가 됐다는 건 이런 맥락이다. 이 지독한 레이스의 끝은 대체 무엇일까? 모든 이가 길고 가늘고 예뻐지면 세상은 대체 어떻게 될까? 



다른 건 몰라도 유머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솔직히 성형 미인들이 ‘유머러스’하기는 쉽지 않다. 자신 안에 있는 차이와 개성을 다 침묵시킨 탓이다. 유머 없는 세상은 오아시스 없는 사막이다. 유머야말로 소통과 공감을 끌어내는 최고의 전략 아닌가. 유머가 없다면 역설 또한 불가능하다. 통념의 엄숙주의, 상식의 매너리즘을 벗어나 삶과 세계를 전혀 다르게 볼 수 있는 힘, 그것이 곧 역설이다. 범람하는 유머, 역설의 향연. 내가 ‘개콘’에 열광하고 개그맨을 존경하는 이유다. 해서 개그맨들이 성형을 했다는 말을 들을 때면 더한층 서글퍼진다.

고미숙 고전평론가


 


(동아일보. 12.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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