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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이 말하는 몸과 우주]<50>추억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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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장금 작성일12-07-11 15:18 조회3,4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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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성 추억’은 상품에 불과…
불멸에 대한 집착 버려야


 
상처와 인정욕망은 함께 간다. 타인이라는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 그것은 늘 결핍이거나 미달이다. 그래서 상처투성이다. 하지만 어떤 결핍이 ‘상처’로 인지되려면 시간적 지속성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상처는 일종의 ‘기억’이다. 거울이 공간적 형상이라면 기억은 시간의 형식이다. 공간이 일그러지면 시간 또한 왜곡된다.

하여 현대인은 늘 두 개의 감성 사이에서 ‘왕복 달리기’를 한다. 과거에 대한 미련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그것이다. 예컨대 모든 멜로는 유년기의 기억에서 시작한다. 그것들이 환기되는 사건이나 사람을 만나면 어김없이 그 인연의 그물망에 걸려든다. 그것이 생의 가장 순수한 순간이었다는 착각 속에서. 그리고 끝없이 그 기억들을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과거의 중력이 현재를 끌어당기고 있는 형국이다.

그래서 또 하나의 전도가 발생한다. 지금 이 순간을 추억으로 만들려는 기획이 바로 그것이다. 이름 하여 ‘추억 만들기’. 놀이동산에 가는 이유는?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다. 빚을 내서라도 이벤트를 하는 이유는?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다. 달빛 아래 키스를 하는 이유는? 역시 추억을 위해서다. 보다시피 이때의 추억은 상품에 불과하다. 화보나 뮤직비디오처럼 시간에 대한 멋진 상품 하나를 갖고 싶은 것이다. 어쩌면 미래 사회에는 “추억을 뇌세포에 주입해 드립니다!”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현재를 추억으로 밀어 넣는 이 기괴한 현상이라니. 거기에는 이 사랑이 언제 소멸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그래서 그것을 영원히 보장받고 싶은 욕망이 자리하고 있다. 불멸에 대한 불안한 집착이라고나 할까. 천년의 사랑, 300년의 연인 등. 정말 그것을 원하는가? 좋은 방법이 하나 있다. 플루토늄이나 우라늄이 되면 된다. 우라늄의 사랑, 플루토늄의 사랑은 아주 길다. 반감기(半減期·질량이 반으로 감소하는 데 걸리는 시간)만 해도 1만 년은 족히 넘는다. 허걱! 무섭다고? 그렇다. 불멸이란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의미한다. 모든 변화를 집어삼키고 그 어떤 것과도 소통하기를 거부하는 시공간적 집착, 그것이 불멸의 정체성이다.

다행히 사랑은 플루토늄도, 우라늄도 아니다. 그래서 지나간다. 불같은 열정 또한 한순간에 허공으로 흩어지고 만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는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야서 한숨의 미풍에”(한용운의 ‘님의 침묵’) 날아가 버린다. 그것이 우주의 이치이자 원리다. 사라지고 흩어져야 또 새로운 것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허무하다고? 아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 ‘여기’를 오롯이 향유할 수 있는 것이다.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오지 않는다. 인간은 어차피 ‘현재’를 살 수밖에 없다.

공자, 부처, 노자 등 인류의 위대한 멘토들이 하나같이 지금, 여기를 주시하라고 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지금, 여기라는 시간에는 과거도 미래도 없다. 오직 삶의 현존성만이 있을 뿐이다. 이 현존성 안에는 과거와 미래가 동시적으로 녹아있다. 찰나 안에 무량겁이 동시적으로 존재한다(一念卽是無量劫·‘법성게’).

따라서 진정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과거와 미래 사이의 불안한 왕복 달리기가 아닌, 또 ‘추억 만들기’라는 전도망상이 아닌, 전혀 다른 속도와 리듬이 필요하다.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고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고미숙 고전평론가

(12. 7.3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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