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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이 말하는 몸과 우주]<51>꽃보다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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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장금 작성일12-07-11 15:24 조회3,6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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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스팩에 잘록한 허리…쭉뻗은 각선미… 남성이 예뻐진다


 

 


야단났다. 남성이 자꾸 예뻐지고 있다. 연예인은 말할 것도 없고, 보통 사람도 남성의 미모가 여성을 압도하고 있다. 식스팩에 잘록한 허리, 쭉 뻗은 각선미 등 몸매도 장난이 아니다. 여성의 전매특허였던 ‘볼륨 있는 가슴’과 ‘개미허리’도 남성의 보디라인에 비하면 평범해 보일 정도다. 거기다 요즘 여성들은 ‘하의실종’ 패션에 올인하느라 하나같이 비쩍 마른 ‘기아 몸매’가 되어 간다. 이젠 곡선미도 남성에게 양보해야 할 듯하다. 그야말로 ‘꽃보다 예쁜’ 남자들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한데 여기에 놀라운 비밀이 하나 있다. 이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 즉 원래 남성이 여성보다 더 예뻤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남자는 양이고 여자는 음이다. 음과 양은 적대적 이항대립이 아니다. 양 속에 음이 있고 음 속에 양이 있다. 따라서 남자 안에 여자가 있고 여자 안에 남자가 있다. 나이가 들수록 남성은 ‘여성화’되고 여성은 ‘남성화’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양은 발산하는 기운이고 음은 수렴하는 기운이다. 따라서 모든 생물체는 수컷이 더 화려하고 아름답다. 수사자의 갈기, 공작새의 깃털 등을 떠올리면 된다. 암컷은 기본적으로 임신과 출산, 양육을 담당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외양을 멋들어지게 꾸밀 수가 없는 법이다.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영화 속 중세의 귀족 남성을 떠올려보라. 곱슬머리에 레이스 달린 상의, 치마에 가까운 하의 등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조선은 유교적 금욕주의가 지배했지만, 그럼에도 왕과 관료의 패션은 가히 눈부실 지경이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이런 풍토에 쐐기를 박았다. 공장이 생산력의 토대였던 터라 남성에게 금욕을 강요했고 그 대신 여성의 미를 상품화했다. 덕분에 노동자들의 복장은 군복과, 사무직의 패션은 성직자와 흡사해졌다. 하지만 디지털 문명과 금융자본은 더이상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이미지가 곧 자본의 원천인 세상이다. 하여 그동안 억눌려왔던 ‘남성의 미’를 다시 불러내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의 이런 풍토는 한편으론 남성성의 ‘본래면목’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금융자본이 신체를 상품화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셈이기도 하다.



 

그럼 남녀 모두 공평해진 셈인가? 한데 여기 불편한 진실이 하나 있다. 페미니즘은 여성들의 몸이 상품화하는 것에 상당히 민감하다. 하지만 여성들이 남성의 신체를 탐닉하는 것에는 비교적 관대한 편이다. 이런 ‘비대칭성’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깊이 천착해볼 문제다.

어쨌든 ‘대세’는 돌이킬 수 없다. 이런 흐름이 꼭 여성에게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여성이 ‘미의 감옥’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제 여성은 더이상 아름다움을 통해 남성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가 없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그 대신 지적 영역과 직업의 영역에선 여성이 훨씬 더 유리해지고 있다. 요컨대 우리 시대는 여성의 사회적 진출과 남성의 미적 잠재력의 폭발로 요약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남성과 여성 모두 ‘짝짓기’ 전략을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사랑과 성, 아니 더 나아가 삶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재조정해야 할 때다.
 
고미숙 고전평론가

 

(12. 7. 4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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