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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이 말하는 몸과 우주]<52>성조숙증과 조기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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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장금 작성일12-07-11 15:30 조회3,56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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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기 부조화로 생긴 병증…‘자연의 리듬’ 회복해야


 
과잉행동장애와 공황장애. 요즘 유행하는 병증이다. 전자는 어린아이한테 후자는 중년에게. 대개 남성이 많다. 양기와 관련된 증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엔 성조숙증이란다. 8세 정도의 아이한테 성적 징후들이 나타나는 증상이다. 대부분 여자아이들이란다. 다른 한편 40대 이전 여성들이 폐경을 겪는 이른바 ‘조기폐경’ 또한 늘어나고 있다. 성조숙증과 조기폐경은 음기의 부조화로 인해 생긴 병증이다. 말하자면 양기도 음기도 자기 리듬을 잃고 제멋대로 망동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무릇 음양의 요체는 양을 치밀히 하고 음을 견고하게 지키는 것이니, 두 가지가 조화롭지 못하면 봄은 있으나 가을이 없고, 겨울은 있으나 여름이 없는 것과 같다.”(‘황제내경’) 이런 시대적 왜곡을 개인이 병증으로 겪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질병과 환자는 그 시대의 모순과 갈등의 지점을 알려주는 전령사 같은 존재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여성의 성장주기는 7이다. 곧 7세, 14세, 21세… 49세, 56세 등으로 변주된다(남성은 8이다. 8세, 16세, 24세 등으로 이어진다). 14세 전후에 초경이 시작되고 49세 전후가 되면 폐경이 된다. 초경은 봄, 폐경은 가을이다. 봄은 봄답게, 가을은 가을답게. 그것이 곧 여성성의 자연스러운 리듬이다. 하지만 그게 결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태과/불급’을 짊어지고 나오기 때문이다. 이 ‘태과/불급’이 질병과 번뇌의 원천이다. 그런 점에서 병을 치유한다는 건 선천적인 ‘태과/불급’을 극복해 자연스러운 생체리듬을 회복하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우리 시대는 어떤가. ‘태과/불급’을 한층 심화하는 구조를 양산하고 있다. 성조숙증의 원인은 주로 비만과 음란물에 대한 노출이라고 한다. 결국 과잉이 문제다. 여자아이들을 어떻게 키우는지 한번 살펴보라. 영양은 넘치는데 활동은 거의 없다. 아니 맘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 자체가 없다. 거기다 미디어는 성적 이미지들을 무차별적으로 쏘아댄다. 남아도는 에너지가 성욕으로 집중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러면 호르몬 체계에 이상이 오지 않겠는가.





그런가 하면 조기폐경은 불급이 문제다. 성인 여성의 몸은 과도한 다이어트와 성형강박으로 늘 스트레스에 노출돼 있다. 결혼적령기가 늦춰지는 바람에 에로스를 활짝 꽃피울 수 있는 기회도 박탈됐다. 임신과 출산 역시 병원과 제도에 맡겨버렸다. 더 심각한 건 여성들이 사랑과 성에 대해 터놓고 말할 수 있는 ‘담론적 공간’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결국 봄은 너무 일찍 와서 시들어버리고, 가을 또한 너무 지지부진해서 거둘 것이 없다. 이런 ‘반생명적’ 배치를 조장하는 배후는 당연히 상품과 서비스다. 상품은 생명의 리듬을 소외시킨다. 서비스는 여성들의 몸을 철저히 의존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따라서 상품과 서비스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여성성 혹은 생명의 주권을 회복하기는 불가능하다. 남성들이 주로 앓는다는 과잉행동장애와 공황장애 또한 마찬가지다. 어떻게 하면 음양이 모두 ‘태과/불급’을 넘어 생동감 넘치는 자연의 리듬을 회복할 수 있을까? 고심하고 또 고심해야 할 과제다. 남성과 여성 모두.

고미숙 고전평론가


 


(12. 7. 5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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