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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이 말하는 몸과 우주]<53>‘스위트 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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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장금 작성일12-07-11 15:38 조회3,49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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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상한 부모, 예쁘고 똑똑한 아이…현대인들의 오래된 꿈




드라마 ‘추적자’. SBS 제공


 

SBS 월화 드라마 ‘추적자’는 참 재미있다. 소시민과 권력자 사이의 파워게임이 반전에 반전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근데 그 가운데 께름칙한 대사가 하나 있었다. 극 초반 주인공인 백 형사가 딸을 잃고 오열하는 장면에서 나온 것이다. “놀이동산 가자는 약속도 못 지켰는데.” 좀 뜨악했다. 강력계 형사라는 직업은 상상 이상으로 바쁠 것이다. 그런 아빠가 고등학생 딸과 놀이동산을 가야 하나? 그게 그렇게 미안하고 아쉬워할 일인가? 고등학생이면 친구나 선생님, 기타 다른 관계에 더 열중할 나이다. 엄마, 아빠랑 놀이동산 가서 깔깔거릴 시기는 아니다. 그런데 왜 저런 ‘회한’이 솟구치는 것일까? 바로 ‘스위트 홈’에 대한 망상 때문이다. 자상한 엄마, 엄마보다 더 자상한 아빠, 그리고 예쁘고 똑똑한 아이. ‘가족삼각형’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하모니!

사실 이 구도는 오래전에 탄생됐다. 정확히는 1919년 3·1운동 이후부터다. 그때 나온 소설 속 주인공들은 대개 ‘언덕 위의 하얀 집’에 살았다. 엄마는 앞치마를 두르고 양식을 요리한다. 아버지는 변호사나 의사 같은 전문직이고. 명문학교를 다니는 아이는 집에서 늘 바이올린이나 피아노를 연주한다. 이것이 20세기 이래 현대인을 지배한 꿈이요 비전이었다. 그것을 위해 공부를 하고, 그것을 위해 직업을 구하고, 그것을 위해 산다고 할 정도로.

그런데 참 이상하다. 오랫동안 애를 썼는데도 사랑과 결혼은 늘 전쟁을 연출하고, 부모와 자식 사이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추적자’를 보면 권력과 자본의 결탁이 그 원흉인 것 같다. 하지만 과연 그게 전부일까? 권력과 자본에 동의하는 ‘대중의 욕망’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백 형사의 복수를 가로 막는 건 권력층만이 아니다. 그의 친구와 동료들이기도 하다. 헌데 그들이 배신을 하는 이유 역시 ‘가족애’ 때문이다. 그것은 오직 돈으로만 표현된다. 그런 논리라면 재벌 총수의 집안이 최고로 ‘스위트’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기는커녕 더 ‘아수라장’이다. 그래서 정말 궁금하다. 과연 세상에 ‘스위트 홈’이라는 게 있긴 할까?





문득 영화 ‘괴물’이 생각난다. 괴물도 가족영화다. 하지만 이 집안은 소위 ‘결손가정’이다. 아빠는 무식하고, 할아버지는 푼수다. 삼촌은 운동권 잔당이고 고모는 거북이 궁수다. 결정적으로 엄마가 없다. 이런 ‘콩가루’ 집안이 중학생 딸을 살리기 위해 괴생물체와 맞서 싸우는 게 기본 줄거리다. 그들에게 가족이란 함께 밥을 먹는 ‘식구’이자 서로를 지켜주는 생명의 공동체다. 따라서 화폐와 권력, 나아가 ‘스위트 홈’에 대한 망상 따위가 끼어들 틈이 없다. 괴물과 당당히 맞서 싸울 수 있었던 저력 또한 거기에 있으리라.

바야흐로 ‘집의 시대’가 가고 ‘길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아파트로 상징됐던 부동산 신화도 붕괴되고 있다. 이제 돌아갈 거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이 꼭 나쁜 소식인 것만은 아니다. ‘스위트 홈’에 대한 ‘추억과 회한’만 버릴 수 있다면 모든 ‘길’은 집이 된다. 아니 집과 길의 경계가 사라진다. 그때 비로소 자유의 새로운 공간이 열릴 것이다.

고미숙 고전평론가


 


(12. 7. 10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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