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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이 말하는 몸과 우주] <54>실연은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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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장금 작성일12-07-11 15:42 조회3,6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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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은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




남산타워 사랑의 자물쇠.


 


 


남산타워를 가면 서울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전망대가 있다. 그런데 전망대 주변에 아주 민망한 ‘진풍경’이 하나 있다. 난간 주변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자물쇠 더미들이 그것이다. 쇠사슬처럼 생긴 것도 있고 사이즈가 매우 큰 것도 있다. 연인들이 사랑을 맹세하는 의례라 한다. 하지만 쇠뭉치가 주는 촉감 때문일까. 열렬한 맹세라기보다는 서로를 얽어매는 족쇄처럼 보인다. “날 떠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 혹은 “제발 나를 떠나지 말아 달라”는 애원이라고나 할까.

이 진풍경이 말해주듯 사람들은 실연을 몹시 두려워한다. 실연이 두려워서 연애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 실연이란 헤어짐 자체가 아니라 거절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내가 이별을 통보하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이별을 통보당하는 건 참지 못한다. 사실 이건 좀 모순이다. 사랑이란 ‘나를 버리고 타자를 향해 나아가는 특별한’ 사건이다. 헌데 나는 상대를 거절할 수 있어도 상대는 나를 거절해서는 안 된다? 참 희한한 규칙 아닌가. 그러다보니 사랑 자체보다 ‘밀당’에 더 힘을 기울이고 결국엔 누가 찼는지(혹은 차였는지)가 관건이 된다. 본말전도!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적어도 진정한 사랑이라면 실연은 없다! ‘차고 차인다’는 설정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처음 사랑에 빠질 때 사람들은 자신이 누군가를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사랑이 나를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사랑에 빠진다고 말한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느닷없이 누군가가 내 삶 속으로 들어오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알 수 없는 힘은 아마도 자연(혹은 무의식)일 것이다. 니체 식으로 말하면 ‘네 안에 너를 멸망시킬 태풍’이다. 태풍과 멸망을 내가 의식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가. 만약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건 게임이거나 거래다. 게임과 거래의 세계에선 실패가 있을 수 있다. 누가 먼저 뒤통수를 치느냐가 관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연과 운명의 영역에선 그런 규칙이 통하지 않는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나를 선택하고 나를 버린다는 건 불가능하다. 나도 상대방도 어떤 힘에 이끌렸을 뿐이다. 그것은 느닷없이 왔다가 느닷없이 가버린다. 봄날 꽃이 피었다 지는 것처럼, 여름의 정점에서 문득 가을이 오는 것처럼. 따라서 “감히 나를 차?” 혹은 “어떻게 그가 그렇게 할 수가 있어?” 같은 한탄은 그야말로 무용지물이다. 그런 행위를 의식적으로 주도하는 주체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연을 했을 때 할 일은 원한과 좌절이 아니라 사랑과 삶, 사랑과 몸, 사랑과 존재가 맺는 관계에 대한 탐구다. 이런 탐구의 과정을 건너뛸 경우 선택지는 둘뿐이다. 거절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사랑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더욱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거나. 좌절 아니면 도피. 둘 다 부질없는 노릇이다. 루쉰(魯迅)의 유명한 말처럼 “희망은 허망하다. 절망이 그러한 것처럼.” 왜냐하면 희망과 절망, 좌절과 도피는 모두 망상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 이분법적 회로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사랑도, 삶도 있는 그대로 누릴 수 있다. 실연이란 이런 삶의 지침을 터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고로, 실연은 행운이다!

고미숙 고전평론가

 

(12. 7. 11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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