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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이 말하는 몸과 우주]<67>팔자타령에서 ‘운명愛’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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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장금 작성일12-10-12 13:47 조회3,822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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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관심은 돈과 정규직뿐… 운명의 주인이 되라



고미숙 고전평론가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귀족과 자유인, 그리고 노예가 존재했다. 귀족은 그렇다 치고 자유인과 노예의 차이는? 자유인은 백수고 노예는 정규직이다. 전자는 프리랜서로 살았고, 후자는 평생 한 가지 노동에 종사했다. 전자는 광장에서 철학을 했고, 후자는 철학에 대한 권리를 박탈당했다. 인도 카스트 제도에서 브라만과 수드라의 차이, 조선 시대 사농공상의 신분적 차별 역시 마찬가지다. 브라만과 선비(士)는 일평생 책을 읽고 인생과 우주의 이치를 터득해야 하는 반면, 수드라와 농공상은 대를 이어 하나의 직업에 묶여 있어야 했다. 계급적 모순도 모순이지만, 무엇보다 책 자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는 이 모순과 차별을 극복하기 위한 지난한 여정이었다. 자유인과 브라만, 귀족과 선비 등이 독점했던 앎과 지성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당연한 말이지만 삶의 주권이란 법적, 경제적 권리만이 아니라 철학과 사상의 자유까지 포함한다. 왜 그런가? 철학을 하고 사유를 해야만 비로소 삶의 주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자신의 삶을,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허하라! 이 명제를 부인할 이는 아무도 없으리라.

그리고 마침내 디지털 혁명은 이 불가능하리라 여겨졌던 일을 수행해냈다. 이제 모든 정보는 스마트폰 안에 다 있다. 계급과 신분, 인종과 민족의 장벽을 넘어 누구나 이 정보의 바다를 유영할 수 있게 됐다. 인생의 진리, 위대한 현자들의 가르침, 무의식에 대한 탐구, 별들의 탄생과 죽음 등 이른바 ‘앎의 대향연’이 펼쳐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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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놀랍게도 사람들은 이 권리와 자유를 향유하려 하지 않는다. 지금 사람들이 추구하는 건 돈과 정규직이다. 생각할 권리가 아니라 평생 하나의 직업에 묶여 있고자 하는 노예의 권리, 쇼핑과 게임 등을 탐할 수 있는 중독자의 권리만을 확보하고자 한다. 아울러 존재의 무게중심은 오직 연애와 가족뿐이다. ‘사랑밖엔 난 몰라’, ‘가족은 나의 전부’ 등을 쉬지 않고 외쳐댄다. 그래서 정말 묻고 싶다. 평생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을 하고 섹스와 번식 이외에 어떤 삶의 기쁨도 누릴 수 없었던 노예의 삶이 그토록 그립단 말인가? 또 사랑과 연애만 잘되면 생로병사의 근원적 문제가 풀릴 수 있다고 믿는가? 그렇지 않다,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삶을 규정하는 그 같은 전제를 바꾸지 않고서 ‘좋은 팔자’란 결단코 불가능하다. 그 안에서는 모든 것을 다 가져도 결핍 아니면 공허다. 상처뿐인 영광 혹은 팔자.

이 지겨운 팔자타령에서 벗어나는 것이 인생역전이자 개운(開運)이다. 이때 가장 핵심적인 사항은 무엇을 더 얻고 무엇을 잃을 것인가가 아니다. 운명에 대한 온전한 주인이 되고 싶은가 아닌가일 뿐이다. 운명의 주인이 된다는 건 존재와 세계에 대한 해석을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타인의 권위에 의존하고, 혹은 타자의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생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를 수 있는 것. 팔자타령이 ‘운명애(運命愛)’로 변주되는 순간은 바로 이 지점이다. 그러니 보라! 자신이 밟아가는 존재와 우주의 리듬을. 보면 알게 되고, 알면 사랑하게 된다. 이는 운명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즉 봄과 앎과 사랑은 하나다.

고미숙 고전평론가

(동아일보, 12. 10. 09)
댓글목록

김현경님의 댓글

김현경 작성일

<p>마음세미나 김현경입니다.^^</p>
<p>"운명의 주인이 된다는 건&nbsp;...... 타인의 권위에 의존하고, 혹은 타자의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생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를 수 있는 것.&nbsp;...... 즉 봄과 앎과 사랑은 하나다. " </p>
<p>인용문으로 사용하고 싶습니다.</p>
<p>"타인의 권위에 의존하고" 해석 부탁드립니다.</p>

양력 2024.3.29 금요일
(음력 2024.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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