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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사 최고봉, 동의보감 400년 ① 왜 지금 동의보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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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3-04-12 09:19 조회4,13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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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입력 2013.02.15 00:50 / 수정 2013.02.15 08:17

생명과학연구 필독서…동의보감은 살아있다
한의학사 최고봉, 동의보감 400년 ① 왜 지금 동의보감인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동의보감』과 책에 실린 인체 그림. [사진 국립중앙도서관]

올해는 동아시아 과학사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동의보감』 발간 400주년이 되는 해다. 『동의보감』이 나온 이후 우리 전통의학은 한 차원 다른 세계로 업그레이드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를 계승하고 증보하는 ‘신(新)동의보감’ 프로젝트도 추진되고 있다. 400년 전 『동의보감』의 역사적 의미를 새롭게 돌아본다.

조선후기 호학(好學) 군주 정조(1752∼1800)는 자신의 저술을 모은 『홍재전서』(弘齋全書·1814)에서 이렇게 말했다. “의학도 유술(儒術)의 일단이다. 고금의 의서들 중에 우리나라에 적합한 것은 오직 양평군 허준의 『동의보감』이다.”

 2006년 흥미로운 홍콩발 외신이 전해졌다. 청나라 강희제(1654~1722)가 소장했던 『기하학 원본』(유클리드 기하학의 만주어판) 표지에 ‘東醫寶鑑(동의보감)’이란 글자가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 프랑스 국가과학연구센터 소속 과학사 전문가가 중국 네이멍구(內蒙古) 도서관에 있는 『기하학 원본』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동의보감』의 존재가 확인된 것이다.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이 1995년 방한해 국회 연설에서 “17세기 편집된 『동의보감』은 양국 문화교류사에 미담으로 전해지고 있다”던 언급이 근거 없이 튀어나온 것은 아니었다.

 올해는 그 『동의보감』이 발간된 지 400년이 되는 해다. 경희대 한의학과 김남일 교수는 “『동의보감』은 단순히 옛 책이 아니라 오늘의 임상 현장에서도 그 가치를 잃지 않고 있다”고 했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최승훈 원장은 “『동의보감』은 전통 지식과 천연자원을 소재로 한 생명과학 연구에서 반드시 참고해야 할 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했다. 400년 세월을 지속해 온 필독 스테디셀러인 셈이다.

 이런 가치를 존중해 유네스코는 2009년 『동의보감』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했다. 의학서로는 최초다. 또 2013년을 유네스코 공식 기념의 해로 지정했다.

 ◆400년 스테디셀러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 ‘동의’라는 이름으로 우리 의학의 체계를 새롭게 정립했다.
『동의보감』은 전쟁의 참상 속에서 피어났다. 임진왜란으로 전 국토가 황폐화된 가운데 제때 치료를 못해 고통받는 백성이 점점 늘어날 때였다. 1596년 선조 임금은 기존 의학서를 집대성한 책을 펴낼 것을 지시한다.

 허준(1539~1615)은 선조와 광해군 시대 어의(御醫)였고, 그가 시대를 뛰어넘는 『동의보감』 편찬에 앞장섰다. 그는 1608년 선조의 타계로 잠시 유배생활을 하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1613년 마침내 내의원 목활자본으로 25권 25책의 『동의보감』을 간행한다.

 발간 직후부터 『동의보감』은 베스트셀러였다. 중국에서만 20여 차례 간행됐다. 강희제가 보았던 『동의보감』은 그중 하나였을 것이다. 중국 사신들이 조선에 오면 으레 『동의보감』을 챙겨 갔다고 한다.

 『열하일기』의 저자 연암(燕巖) 박지원(1737~1805)이 중국에 사신으로 갔을 때 『동의보감』이 너무 비싸 사지는 못하고 서문을 베껴왔다. 1763년 중국에서 처음 간행된 중국판 『동의보감』의 서문은 “『동의보감』을 보급하는 것은 천하의 보배를 나누어 갖는 것”이란 내용이다.

 『동의보감』은 우리 전통 의학과 동아시아 의학을 집대성한 당대 최고의 ‘의학 백과사전’으로 꼽힌다. KAIST에서 과학사를 가르치는 신동원 교수는 “동아시아 의학사에서 『동의보감』의 위치는 최고봉”이라며 “최고 수준의 의학지식을 가려 뽑아 일일이 출전 근거를 밝히며 처방을 제시한 작업은 당시로선 비교 대상이 없다”고 평가했다.

 『동의보감』에는 비싼 약재 대신 누구나 일상에서 구할 수 있는 약재가 소개돼 있다. 당시 일반인도 알 수 있게 향약(鄕藥:우리나라 자생 약재) 637종을 한글로 적어 놓은 것이다. 어려운 용어가 난무하는 오늘의 의학계 현실과 비교해 보아도 획기적인 일이다. 전쟁 속에서 고통받는 가난한 백성들이 쉽게 치료할 수 있는 길을 터놓았다.

 ◆‘한(漢)’의학에서 ‘한(韓)’의학으로

『동의보감』이란 책 제목부터 남달랐다. 허준은 “우리나라는 동방에 위치해 있으나 의약의 도(道)가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다”며 우리의 의학을 ‘동의(東醫)’라고 명명했다. 중국 의학계에 존재하는 ‘북의’ ‘남의’ 등과 대등한 의학을 의미했다. ‘보감(寶鑑)’이란 보배로운 거울이라는 뜻이다.

 한의학의 한자 표기는 1986년 이전까지는 중국 의학이란 의미의 ‘漢醫學’이었으나 86년 국민의료법 8차 개정에서 우리 의학이란 의미를 담은 ‘韓醫學’으로 바뀌었다. 우리 의학이라고 할 수 있는 여건이 성숙되었기 때문이기도 했으나 400년 전

『동의보감』의 존재가 없었다면 ‘한(漢)’에서 ‘한(韓)’의로의 변화는 더 많은 세월이 걸려야 했을 것이다.

 허준이 세운 ‘동의’의 깃발은 조선 말기 동무(東武) 이제마(1838~1900)의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으로 이어진다. 김남일 교수는 “『동의보감』이 중국 의학을 비롯한 동아시아 전통의학을 섭렵하며 ‘韓醫學’의 이론 체계를 처음으로 정비했다면, 『동의수세보원』은 이를 바탕으로 ‘韓醫學’의 기반을 더욱 튼튼히 해 놓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도교 양생학 영향

『동의보감』의 구성 방식부터 눈여겨볼 만하다. 내경편(4권), 외형편(4권), 잡병편(11권), 탕액편(3권), 침구편(1권) 등 크게 다섯 편으로 나뉘었고 목록(2권)이 별책으로 포함됐다. 이전의 의서들에선 발견할 수 없는 편집이다.

 몸속 세계를 다룬 ‘내경편’은 『동의보감』의 세계관과 인체관을 보여준다. 사람의 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우주의 형성·운용과 연결 지어 설명한다. 나아가 건강을 유지하며 장수하기 위해서는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지 않고 순응해야 한다는 양생관을 제시한다. 동아시아 전통 철학의 특성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겠으나 구체적 용어를 보면 그 이상이다.

 『동의보감』에서 인체의 내부를 구성하는 생리적 요소로 정(精)·기(氣)·신(神)이 제시된다. 정(精)·기(氣)·신(神)을 우리 몸의 바탕으로 보고 있는데, 이는 도교에서 쓰이는 전문 용어다. 정(精)은 생명의 원천을 의미하고, 기(氣)는 몸의 기운이며, 신(神)은 정신활동을 가리킨다. 이들의 원활한 순환을 건강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전통 도교의 호흡법이 주요 건강법으로 소개된다. 『동의보감』 편찬에 참여한 고옥(古玉) 정작(1533~1603)이란 인물을 주목해야 한다. 그는 유학자이면서 의술을 겸비한 유의(儒醫)였고 당대 도교 계통의 저명인사였던 북창(北窓) 정렴(1506~1549)의 동생이다. 북창과 고옥의 아버지가 우의정을 지낸 최고위 양반 집안인 데다 『동의보감』 작업이 시작된 1596년 무렵 고옥의 나이가 이미 64세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동의보감』 편찬의 협력자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 도교사를 연구한 김낙필 원광대 교수는 “『동의보감』의 철학적 기초는 도교와 밀접히 연관된다. 북창 정렴과 고옥 정작으로 이어지는 한국 도교 혹은 선도(仙道)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배영대 기자 @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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