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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사 최고봉, 동의보감 400년 ② 동의보감, 삶의 총체적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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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3-04-12 09:20 조회3,9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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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의 주인은 나 … 통하면 아프지 않다

[중앙일보] 입력 2013.02.21 00:03 / 수정 2013.02.21 00:06

한의학사 최고봉, 동의보감 400년 ② 동의보감, 삶의 총체적 모델
내 안의 생명력 일깨우는 양생술
탐욕·분노·어리석음이 질병 원인

경남 산청군에 조성중인 동의보감촌 속 힐링 타운. 『동의보감』 발간 400주년에 맞춰 오는 9월 6일~10월 20일 ‘2013산청세계전통의약엑스포’가 이곳에서 열린다. 『동의보감』의 국제적 위상 정립을 목표로 하는 국제아시아전통의학대회도 예정돼 있다. 산청 지역은 허준과 그의 스승 류의태 선생이 의술을 펼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신동연 기자]

『동의보감』을 모르는 한국인은 거의 없다. 허준의 명성 또한 ‘범국민적’이다. 『동의보감』과 허준이라는 기호는 한국인의 문화적 원형에 가깝다. 하지만 정작 그에 대한 이해는 참 ‘썰렁한’ 편이다. 『동의보감』은 만병통치의 비서(秘書), 허준은 불치병을 고치는 전설적 명의, 이게 고작 아닐까. 물론 모두 틀렸다. 『동의보감』은 유교·불교·도교의 ‘삼교회통(三敎會通)’에 기반한 비전(vision) 탐구서이고, 허준 역시 명의이기 이전에 학자다. 허준이 ‘허준이 된’ 까닭은 『동의보감』이라는 저술을 남겼기 때문이다. 명의는 허준 말고도 아주 많았다. 하지만 동의보감 같은 대작을 남긴 의사는 허준뿐이다. 동아시아 의학사, 아니 세계 의학사에 비추어 보아도 분명 독보적인 작업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진면목은 거의 가려져 있다.

『동의보감』에 실려 있는 인체 그림. 신형장부도(身形藏府圖)라고 불린다.
 『동의보감』을 직접 탐구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이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 그 단적인 증거다. 그저 최고의 문화유산으로 떠받기만 할 뿐, 우리네 삶과는 무관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여기는 전통의학의 문제를 넘어서서 의학 자체에 대한 편견이 자리한다. 의학은 전문가의 몫이고, 따라서 보통 사람들은 전문가의 지시에 따르면 그뿐이라는. 현대 병리학이 유포한 대표적인 편견 가운데 하나다. 의사들은 말한다. ‘조기 검진’, ‘정기 검진’만이 살길이라고. 그 다음엔? 전문가와 상담하라. 그 다음엔 수술 아니면 투약! 마치 주문처럼 반복되는 이런 말들을 듣고 또 그런 코스를 밟다 보면 검진과 상담만이 유일한 의료라는 생각을 확고하게 믿게 된다. 그러다 보면 자기 몸의 주인이 ‘자기’라는 것, 자기 몸을 스스로 탐구한다는 건 감히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그 결과, 몸과 마음, 몸과 삶, 몸과 자연, 몸과 사회 등이 모두 어긋나 버렸다.

이 간극과 소외가 바로 질병의 원천이다. 보다시피 현대인들은 한편으론 우울증과 자살충동에, 다른 한편으론 암과 각종 면역계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따라서 지금 시급한 건 병원과 의료서비스 이전에 ‘자기 몸과의 진정한 소통’이다. 『동의보감』의 지혜를 불러내야 하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동의보감』은 동아시아 의학사의 집대성이자 분류학의 결정판이다. 이 방대하면서도 명쾌한 저서를 가로지르는 의학적 키워드는 다름아닌 양생술이다.

고미숙 고전평론가
 
양생이란 무엇인가? 선천적으로 타고난 생명의 정기를 기르는 것을 의미한다. 병을 막고 세균을 몰아내는 것을 위주로 하는 위생담론과는 아주 다른 차원이다. 헌데, 양생술을 탐구하려면 먼저 생명과 존재의 근원을 알아야 한다. 하여, 동의보감의 첫 장인 ‘내경편’은 ‘정기신(精氣神)’에서 시작한다. 우주의 근원은 ‘기(氣)’고, 기의 생리적 변환이 ‘정기신’이다. ‘정’은 물질적 원천, ‘기’는 그 원천을 흐르게 하는 에너지, ‘신’은 그 흐름에 방향을 부여하는 무형의 벡터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그리고 이것을 바탕으로 오장육부가 형성되고, 오장육부는 다시 이목구비, 뼈와 근육, 살과 힘줄 등과 연동된다. 그뿐인가. 이 네트워크는 그 자체로 우주다. ‘내경편’의 첫페이지를 장식하는 말이다.

 “천지에서 존재하는 것 가운데 사람이 가장 귀중하다. 둥근 머리는 하늘을 닮았고 네모난 발은 땅을 닮았다. 하늘에 사시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사지가 있고, 하늘에 오행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오장이 있다. (중략) 하늘에 십이시(十二時)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십이경맥이 있다. 하늘에 이십사기(二十四氣)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24개의 수혈이 있고, 하늘에 369도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365개의 골절이 있다. 하늘에 해와 달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두 눈이 있고, 하늘에 밤과 낮이 있듯이 사람은 잠이 들고 깨어난다.(중략) 이 모든 것은 사대(四大)와 오상(五常)을 바탕으로 잠시 형(形)을 빚어 놓은 것이다.”

 요컨대, 생명과 우주는 ‘대칭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양생술이란 이 대칭적 고리를 회복함으로써 우리 안에 있는 생명력을 일깨우는 기술이다.

핵심은 순환이다. 통즉불통(通則不痛/痛則不通)- 통하면 아프지 않다. 혹은 아프면 통하지 않는다! 이것이 동의보감을 대표하는 ‘사자성어’다. 순환이란 단순히 건강이나 체력의 향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반드시 삶의 지혜가 요구된다. 이를테면, 생리적 순환에 문제가 생기면 판단과 행동도 뒤엉키게 마련이다. 그러면 자신을 둘러싼 모든 관계들에 파열음이 생겨난다. 이것은 다시 몸에 엄청난 스트레스로 되돌아온다. 그러니 지혜가 없이 건강하게 잘 산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따라서 양생술의 관점에서 볼 때, 질병의 원천은 ‘탐진치(貪瞋癡)’다. 탐욕은 ‘정’을 소모시키고, 진심(분노)은 ‘기’의 흐름을 어그러뜨리고, 치심(어리석음)은 ‘신’을 어지럽힌다. 쉽게 말해 ‘몸붕’과 ‘멘붕’은 하나다! 이 악순환으로부터 탈주하는 것, 치유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생사의 이치를 탐구하는 수행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우주적 관점에서 보자면 삶과 죽음은 하나다. 그 원리를 터득하지 않고서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길은 없다. 또 죽음의 공포가 지배하는 한 자유와 행복 또한 불가능하다. 결국 양생술이란 생리와 윤리, 그리고 영성(spirituality)이 하나로 통하는 ‘삶의 총체적 기예’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반드시 환기해야할 사실 하나. 이때 주체는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이라는 것. 허준이 동의보감을 편찬한 의도도 거기에 있었다. 허준은 이렇게 말했다. “환자가 책을 펼쳐 눈으로 보면 허실, 경중, 길흉, 사생의 조짐이 거울에 비친 듯이 명확하니 함부로 치료하여 요절하는 우환이 거의 없게 한다”. 여기서 주어는 의사가 아니라 환자다. 즉, 아픈 사람이 스스로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이름하여, ‘호모 큐라스(cura는 라틴어로 care라는 뜻)’ 혹은 ‘자기배려의 달인’이 그것이다.

 바야흐로 힐링과 치유가 넘쳐나는 시대다. 하지만 그에 비례하여 상처와 폭력도 함께 증식된다. 힐링과 상처의 기묘한 공생! 이 ‘불편한’ 사슬을 끊고 자기 몸의 탐구자,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는 비전을 탐구해야 할 때다. 400년의 시공을 가로질러 동의보감의 ‘진면목’과 대면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고미숙=60년생. 고려대 국문학 박사. 지식인공동체 ‘수유+너머’를 거쳐 지금은 ‘감이당’에서 활동. 전통 고전을 소재로 몸과 삶의 관계를 인문학적으로 탐색하는 글을 써오고 있다. 저서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동의보감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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