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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사 최고봉, 동의보감 400년 ④ 한국 한의학의 새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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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3-04-12 09:26 조회4,54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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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조선의학의 판정승, 21세기에도 유효

[중앙일보] 입력 2013.03.05 00:27 / 수정 2013.03.05 00:27

한의학사 최고봉, 동의보감 400년 ④ 한국 한의학의 새 출발

『동의보감』에 실린 인체 그림. 해부학이 발달하지 않은 17세기였음에도 심장·폐장·간장·비장·신장(왼쪽부터) 등 장기 모양을 나름 정교하게 그려 놓았다. 한의학 관련 설명을 빼고 그림만 놓고 보면 언뜻 추상적 디자인을 보는 듯하다. [사진 경희대 한의대]

『동의보감』은 한국 한의학을 대표하는 고유명사다. 한국인은 어떤 음식이나 약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 그것이 『동의보감』에 있다고 하면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검증된 것으로 믿곤 한다. 그만큼 『동의보감』은 우리 민족 정서에 깊숙이 각인돼 있다. 이 같은 신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다.

 한의학을 가르치는 필자가 많이 받는 질문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왜 400년 전에 만들어진 『동의보감』에 여전히 기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질문의 배경엔 400년 전의 건강 코드가 오늘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 깔려 있을 게다. 이는 『동의보감』을 과거 유산으로만 여기고 400년 동안 진행된 한의학의 역사를 정체적(停滯的)으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동의보감』이 박물관의 유물이 아니라 현대 한의학의 임상 치유에까지 연결되는 이유는 지난 400년간의 진화 과정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다. 『동의보감』은 400년 전의 일회성 이벤트로 그친 것이 아니다.

『동의보감』이 나오기 전에 형성되어 있던 조선 의학의 저력도 간과해선 안 된다(『동의보감』은 1610년 완성돼 1613년 처음 간행됐다). 『동의보감』의 출간 이전에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인간의 질병을 통괄하게 하는 ‘종합 의서’(모든 진료과목을 총망라하는 의학서적)가 별로 없었다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다.

당시는 각종 치료술이 의학 유파에 따라 난무하는 가운데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성이 시대적으로 요청되던 상황이었다. 이때 한의학의 역사를 종합하며 미래를 전망할 능력을 세계에 과시한 것이 『동의보감』이니, 그야말로 『동의보감』의 출현은 당대 조선 의학의 판정승이라 할 만하다. 조선 초기인 세종시대에 이미 『향약집성방』과 『의방유취』 같은 방대한 의학 서적이 편찬된 바 있다. 이렇게 축적된 경험의 바탕 위에 조선의 의학 역량은 최고조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동의보감』 이후에도 수많은 논쟁과 비판이 이어졌다. 이른바 ‘동의보감 학파’라고 부를 수 있는 한의학의 거대한 산맥이 형성됐다. 구체적 인물을 꼽아보면 먼저 허준과 동시대를 살며 『동의보감』의 교정 과정에 참여한 윤지미(생몰년 미상, 명나라 왕응린과 나눈 문답집 『답조선의문(答朝鮮醫問·1717년)』편찬), 그리고 동의보감 학파의 서막을 연 인물로 평가받는 주명신(1650~?, 『의문보감(醫門寶鑑·1724년)』 편찬)을 들 수 있다. 이어 강명길(1737~1801, 『제중신편(濟衆新編·1799년)』 편찬), 이이두(1807∼73, 『의감산정요결(醫鑑刪定要訣)』 편찬) 등을 거쳤다. 20세기에 들어서도 한병연(생몰년 미상, 『의방신감(醫方新鑑·1914년)』 편찬), 이준규(1852∼1918, 『의방촬요(醫方撮要·191 8년)』 편찬), 이영춘(생몰년 미상, 『춘감록(春鑑錄·1927년)』 편찬), 김홍제(1887~?, 『일금방(一金方·1828년)』 편찬), 김정제(1916~88, 『진료요감(診療要鑑·1974년)』 편찬) 등으로 이어졌다. 정조대왕(1752~1800)이 직접 지었다는 『수민묘전(壽民妙詮)』도 기억돼야 할 것이다.

이들은 『동의보감』에 의학적 근거를 두면서도 단순히 『동의보감』을 묵수(墨守)하지 않았다. 비판도 하면서 시정에 힘썼다. 비판이란 대체로 『동의보감』의 내용이 너무 많아서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데로 모아진다. 그 대안으로 『동의보감』의 요체를 후대의 저자들 나름대로 요약 정리하면서 당시에 유행하던 질환에 맞춰 내용을 증보하는 형식으로 새로운 의서를 만들어냈다.

필자가 연구한 바로는 조선시대 역사서인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에도 의학 관련 내용이 전해지는데, 궁중 의학 처방 기록들은 대체로 『동의보감』을 근거로 한다. 또 민간에서 만들어진 각종 필사본 의서들도 대부분 『동의보감』을 발췌한 것이다.

 ‘생긴 대로 병이 온다’라는 말로 대표되는 ‘형상(形象) 의학’이란 학파가 있다. 현재 한국 한의계에서 활용되는 학문 방법론의 하나인데, 『동의보감』의 진단 방식에서 비롯됐다. 오늘의 한의계에서도 『동의보감』의 영향력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실제 치료에 활용하고 있는 한의사들만도 수천 명을 헤아린다.

『동의보감』을 부양론(扶陽論)의 관점에서 계승하는 학파도 오늘날 한의학계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이규준(1855∼1923)에 의해 계승된 부양론은 양기(陽氣)를 기르는 것이 인체의 생명활동을 영위하는 기초라는 시각에서 출발한다. 이뿐 아니다. 현재 한국에 있는 12개에 달하는 한의과대학, 한의학전문대학원 등에서 활용하는 교과서의 기초도 『동의보감』이다. 한의사들에게 임상의 바탕으로 삼는 책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동의보감』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는 이 때문이다.

2009년 7월 30일 카리브해의 섬나라 바베이도스에서 제9차 유네스코 국제자문위원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동의보감』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결정하며 다음 같은 심사평을 내놨다. “『동의보감』은 그 내용이 독특하고 귀중하며 오늘날에도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동아시아의 중요한 유산으로 세계 의학사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400년 동안 꾸준히 계승·발전시켜온 『동의보감』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동의보감』에 대한 창조적 계승은 21세기에도 이어진다. 한국한의학연구원(원장 최승훈)이 추진하는 ‘신(新)동의보감 프로젝트’다. 400년전 『동의보감』의 21세기형 업그레이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남일(경희대 한의대 교수)
◆김남일=1962년생. 경희대 한의대 졸업, 경희대 한의학 박사. 현재 경희대 한의대학장. 한국한의과대학학장협의회 회장. 저서 『한의학에 미친 조선의 지식인들』 『한 권으로 읽는 동의보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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