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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인클럽 특강 75회] 고미숙 '몸과 인문학, 삶의 비전의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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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3-09-03 09:19 조회4,89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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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 바꾸면 다 된다?... 답은 몸에 있었습니다"

[10만인클럽 특강 75회] 고미숙 '몸과 인문학, 삶의 비전의 찾아서'

휴가 잘 보내셨는지요. 오히려 휴가를 손꼽아 기다릴 때가 더 좋았을까요. 일상으로의 복귀가 쉽지 않은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휴식이 아닌 피로의 휴가. 이에 맞춰 10만인클럽 특강을 준비했는데요. '몸과 인문학, 삶의 비전을 찾아서'를 주제로 고미숙(53) 선생을 모셨습니다. 고 선생은 허준의 <동의보감>, 박지원의 <열하일기>, 홍명희의 <임꺽정> 등 고전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새로운 인문학의 지평을 열었는데요. 그 주제가 몸이여서인지 '고미숙의 대중강연'은 청소년을 비롯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반응이 뜨겁습니다.

지난 26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본사 대회의실에서 열린 이날 특강에도 많은 분들이 오셨습니다. 100여 명 청중이 빽빽하게 강연장을 메웠는데요. 고 선생은 휴가지로 중국을 다녀오셨다고 합니다. 자신을 고전평론가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열하일기>의 탄생지, 중국의 열하 지방이었다네요. 박지원의 명문장이 탄생한 당시의 여정을 되밟아 가면서 '신체란 뭔가'라는 화두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 6개월의 여정 동안 폭염과 폭우가 반복됩니다. 연변까지 가는 것만도 한 달이 걸리고 말도 토하고 하인들은 열병을 앓을 정도의 고난의 행군인데 연암은 무박 나흘 동안 꼼짝 없이 굶는 와중에도 생사의 경계를 넘는 경지를 보여요. 연암의 타고난 체질이나 체력이 월등해서가 아닙니다. 갖가지 병들을 앓았거든요. 그런데도 여행 중의 모든 것과 접속하고 관찰하고 기록할 수 있었어요. 그러면서 자신의 독창적인 이야기와 사상성을 펼쳤죠. 백척간두진일보라는 게 이런 경지 아닐까 싶어요. 이게 바로 니체가 말한 '위대한 건강'입니다. 위대한 건강은 체력이 좋은 게 아니라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매순간 깨어 있는 것입니다."

위대한 건강과 일상의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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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만인클럽 특강> 고미숙 '몸과 인문학, 삶의 비전을 찾아서'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특강 고전평론가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 삶의 비전을 찾아서'가 지난 26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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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과 몸. 고 선생이 지난 10년 동안 공부와 활동의 결과로 얻게 된 새로운 열쇳말이라고 합니다. 이 열쇳말들이 그를 전혀 다른 '앎'의 배치로 인도해줬습니다. 몸 속에 작은 종양이 생겨 병원에 갔다가 겪은 '소외'가 '내 몸'을 탐구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합니다.

"민주주의라든가, 평등·자율성이라는 게 얼마나 껍데기에 불과한 것인가 체험하게 됐어요. 지금까지 사회를 바꾸고 민주주의 혹은 혁명을 무엇으로 생각했던가. 그것부터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되었죠. 정치·경제 등 물질의 영역을 바꾸면 다 된다고 생각했던 게 아닌가, 그래서 많이 바뀌었잖아요. 근데 삶은 왜 더 내면적 억압과 구속이 심해지죠?"

지식인공동체 '수유너머'를 이끌면서 겪은 그의 공동체 경험도 컸던 것 같습니다.

"회사든, 공동체든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결정짓는 것은 몸입니다. 몸이 표현하는 동선이나 친근감 같은 게 서로의 감정을 일으키고 그 감정이 관계를 만들지 않나요? '뜻이 통했다'는 걸로 해결되지 않아요. 속으로 삐쳐 있으면 아무 소용없어요. '그래, 내가 졌어! 니가 옳아!' 그러면서 꼴도 보기 싫다 돌아서잖아요. 일상을 움직이는 건 논리가 아니라 감정인데 감정에 관한 탐구가 너무 안 돼 있는 거죠. 상대와 내가 어긋나 있을 때 해결할 수 있는 '일상의 윤리'가 없는 거예요."

정작 우리네 풍경은 어떻습니까. 유치원 아이들부터 꿈이 '정규직'인 현실. 정규직이 되고 나면? 집·땅·차! 집 사고 땅 사고 차 사고. 그런 다음에는? 여행하고 맛있는 거 사먹고? 지금이 굶고 있는 시대인가요. 단식 열풍이 한창인 지금?

"세뇌를 당한 거예요. 이 거대한 레일에서 벗어나면 죽는다고(영화 <설국열차>). 단군 이래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누리면서 어쩌면 이토록 무지한 삶을 살아 갈 수 있냐고요. 그 무지가 주는 공포에 사로잡힌 신체! 이 역설을 풀어야 합니다."

모두가 공유하는 '부의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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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만인클럽 특강> 고미숙 '몸과 인문학, 삶의 비전을 찾아서'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특강 고전평론가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 삶의 비전을 찾아서'가 지난 26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 권우성




그는 이제껏 자신이 전제했던 모든 것들을 되짚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까요.

"저는 몸이라고 생각해요. 몸을 가지고 생로병사를 밟아가야 합니다. 몸은 자기 삶의 현장입니다."

그 현장은 어떻게 구성될까요. 고 선생은 간단하게 답합니다. 몸이 서 있는 위치를 보면 된다고 합니다. 바로 하늘과 땅 사이에 나의 몸이 있지 않은가라고.

"생명과 우주는 '대칭적'으로 연결돼 있어요. 믿기지 않나요? 현대물리학에 따르면 몸을 구성하는 성분은 C(탄소) H(수소) O(산소) N(질소) 등입니다. 이 요소들은 저 하늘의 별들로부터 온 것입니다. 100억 년에 걸쳐 핵 연소 과정을 통해 별에서 생성된 원소들이 바로 우리 신체를 이루는 기본 요소가 된 거거든요. 우리 몸의 모든 장기와 조직 속에 있는 탄소, 뼈 안에 있는 칼슘, 피에 들어 있는 철분, 몸의 수분 속에 들어 있는 산소 등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원소들이 모든 별에서 만들어졌다는 건 현대물리학의 결론과도 통하는 이야기입니다."

고대로부터 인간이 별에 비유돼온 것은 이같은 집단무의식의 산물일까요? 아무튼, 고미숙 선생은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려면 자기 몸과 삶·사회·역사에 관한 연구가 하나로 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른바 우주와 몸의 정치경제학이지요.

"그런데 이러한 몸 안팎의 소통을 제도와 서비스가 차단해버렸습니다. 이반 일리치의 말에 따르면 '제도와 서비스에 의존하는 신체'가 돼버린 거죠. 버블 경제가 만들어낸 욕망을 내면화 하면서 내 몸은 화폐와 교환되고 제도가 관리해주는 영역이 돼버린 겁니다.

저는 계급이 사라졌다고 느껴요. 부자들의 부의 욕망, 그걸 모든 계급이 공유하고 있잖아요. 계급이 있다는 건 각 계층마다 윤리와 삶의 형식이 달라야 하는데 그래야 계급 혁명이 새로운 사회의 대안이 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가난한 사람들이 느끼는 박탈감이 부자가 누리는 쾌락에 동참하고 싶은 욕망의 다름 아니라면 혁명해봤자 자리바꿈밖에 더 되요? 돈 생기면 똑같이 명품 사고 성형하고 도박(주식·로또)하고. 이런 식의 공유가 분배의 정의인지 다시 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는 우리 사회의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는 '유럽식 복지국가'에 대해서도 반문합니다. 복지가 제도뿐만 아니라 일상의 윤리로 자리잡아야 한다고 말이지요.

"청년기·중년기 때 돈을 벌고 자립을 했으면 좀 쉬면서 다시 청년들에게 써야 해요. 그러한 사회적 증여가 결국 내 삶을 배려하는 방식입니다. 가령 세금이 그렇잖아요. 세금도 분명히 기부이고 증여인데 우리는 여기서 소외돼 있어요. 세금을 내는 게 전혀 기쁘지 않아요. 부자만 세금을 피하는 게 아니라 가난한 사람도, 서울역 노숙인도 세금 많아지면 이민간다고 해요. 내가 사회의 순환에 동참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가난한 내 친구의 아들에게 학비를 대주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기는데 국가가 구해주길 바란다? 그렇게 되면 내 신체가 외부와 접속하고 공명하는 능력을 잃어갑니다. 면역 체계가 깨져요. 복지가 잘 돼 있는 나라의 자살률이 높을까요? 같이 가야죠. 국가의 제도와 일상의 윤리가."

"자본주의서 멀어지는 게 대안? 그렇지 않아요"

그가 속한 공동체(감이당&남산강학원)에는 10대부터 6080까지 다양한 세대가 공존합니다. 지역도 전국 각처에서 온 분들이라고 하네요. 이들은 '선물의 경제학'과 '더부살이의 힘'을 경험하며 자립과 자치의 일상 윤리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모토는 네 가지. 도심에서 유목하기, 세속에서 출가하기, 일상에서 혁명하기, 글쓰기로 수련하기.

"보통 공동체라면 도시를 떠나고 자본주의의 중심에서 멀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저희는 그게 대안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도시는 이미 너무 비대해져 있어요. 이 안에서 대안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건 대안이 아니죠."

두 시간이 넘도록 이어진 이날 강연에 청중들의 몰입은 상당했습니다. 청중들의 박수 속에서 '앵콜 강연'을 요청하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강의를 마친 고미숙 선생의 이마에는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혀 있었고요. 이날 밤, 우리는 모두 삶의 새로운 비전을 찾아 떠나는 앎의 여행자들이었을까요? 오는 9월 11일 열리는 '대기자 김중배' 선생의 특별 강연("말 길과 살 길을 찾아서")에도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마이뉴스, 13.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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