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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강 성과 속이 마주치는 지점 고미숙 (고전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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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4-01-09 14:28 조회4,5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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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강 성과 속이 마주치는 지점 고미숙 (고전평론가)[봉은사 인문학 강좌 산책]
“팔만사천법문은 최고 은혜, 깨달음의 길은 이미 열렸다”
지루한 인문학 재밌게 풀어
직장인·학생 등 200명 경청

‘구운몽’ 성진의 부귀영화

‘홍루몽’ 가보옥의 슬픔도
성욕과 7개 감정 빈곤 탓

“돈보다 스승 찾는 노력으로
삶의 위대한 반전 일궈내야”
 
 
▲ 인문학은 딱딱하고 지루하지 않았다. 부처님 모셔진 법당에 너울거리는 성욕 등 속된 단어들이 고루함을 물렸다. 고미숙 고전평론가는 11월21일 서울 봉은사 법왕루에 모인 청중들에게 고전에서 찾은 삶의 태도를 흥미롭게 풀어냈다.
 
 
“중년 남성들 중 포르노에 중독되지 않은 사람은 내공이 정말 강한 사람입니다.”

반전이었다. 딱딱하고 지루하지 않았다. 고루하리란 인문학 강의에 대한 편견은 사라졌다. 고미숙 고전평론가는 요물(?)이었다. 직장인, 부부, 학생 등 청중 200여명을 들었다 놨다. 쾌락, 성욕, 포르노, 일부다처제 등등. 부처님 모셔진 법당에 서린 성스러움(聖) 폐부 깊숙이 속(俗)을 찔러 넣었다. 11월21일 저녁 7시30분, 서울 강남 봉은사 법왕루엔 염불 대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성과 속을 넘나드는 강의는 명불허전이었다. 고미숙 고전평론가는 봉은사가 직장인들을 위해 마련한 인문학강좌 ‘산책’ 두 번째 초청강사였다. 허준의 ‘동의보감’, 연암의 ‘열하일기’ 등 고전에서 현재 우리의 삶과 사유를 읽어낸 탁월한 통찰력은 ‘성과 속이 마주하는 지점’을 넘나들며 청중을 휘어잡았다.

고미숙은 서포 김만중의 ‘구운몽’을 예로 들었다. 주인공 성진이 누리는 온갖 부귀영화와 팔선녀의 관계에서 현대사회의 병폐를 끄집어냈다. 성진은 입신양명의 정점에 선 인물이었다. 팔선녀를 거느리며 성욕과 물욕, 권력욕을 모두 취한 이가 성진이었다. 그럼에도 성진은 허무를 느꼈다. 쾌락 뒤엔 허무만 남을 뿐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중국 청나라 때 조설근이 쓴 ‘홍루몽’은 반전이었다. ‘구운몽’과 반대였다. 주인공 페미니스트 가보옥이 모든 여성을 사랑했으나 모두 불행해졌다. 지극한 슬픔에 달한 주인공이 출가하면서 ‘홍루몽’은 끝을 맺는다.

고미숙은 두 개의 고전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남성과 여성을 읽어냈다. ‘구운몽’의 성진은 남성성의 모든 것으로 대변됐다. 여성과 깊은 공감을 이루며 교류했던 ‘홍루몽’의 페미니스트 가보옥은 여성성의 전부였다. 공통점은 허무이자 외로움이었다.

“요즘 현대 여성들은 감정이 너무 빈약합니다. 그렇기에 이를 채우려다가 더욱더 탐욕스러워지는 겁니다. 이를 남성들의 사회적 지위로 대신하려고 하는 경향을 보이지요.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은 재벌 2세로 나옵니다. 못난 여자 주인공을 사랑하는 재벌 2세를 보며 현대 여성들은 열광합니다. 해도 해도 안 되니 이제 왕이 한 여자를 사랑하는 사극도 나오더군요. 그럴수록 남성들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에게 깊은 외로움을 느낍니다.”

여성들의 빈곤한 감정은 멈추지 않는 욕망으로 자랐다고 고미숙은 말했다. 그럴수록 가슴 속 구멍이 커지면서 현실 속 남편이나 연인은 비루해진다고. 아침 9시 출근, 오후 6시 칼퇴근한 뒤 아내와 자녀를 위해 이벤트를 하는 등 남성들은 자신만의 시간이 없다고 했다. 식구들이 잠든 뒤 몰래 포르노를 보면서 자신의 ‘살아있음’을 느끼며 여기에 중독되는 게 대다수 한국 남성들이라고 했다.

이 대목에서 고미숙은 남성은 성욕, 여성은 칠정상으로 고통 받는다고 진단했다. 돈이나 권력, 명예를 쫓는 남성의 심리 바탕엔 식욕과 성욕이 깔려있다 했다. 하는 일엔 프라이드가 없고 마지못해 하면서 버는 돈은 주색잡기로 탕진한다고 했다. 여성은 기쁨, 분노, 근심, 사념, 슬픔, 두려움, 놀람 등 7개 감정의 부족으로 이를 채우려는 시도에서 절제가 잘 되지 않아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중년들은 불타는 연애로 살아있음을 느끼려 한다고 고미숙은 말했다. 고미숙은 “망상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다 진짜 그 불에 불탄다”며.

다시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미숙은 현대인이 행복에 이르는 길을 고전에서 찾았다. ‘열하일기’를 쓴 연암 박지원을 예로 들었다. 열하로 향하던 연암이 하룻밤에 9개 강을 건넜던 이야기인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에서 답을 뽑아냈다. 명심(冥心)이었다. 사방에 깔린 어둠 속에서 발 한 번 잘못 디디면 그대로 황천길로 향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연암의 정신은 깨어있었다.

‘어두울 명(冥)’은 시비분별로 새하얘진 정신을 바로 잡는다는 뜻이며 죽음의 두려움이 사라진 마음이랬다. 그래서 명심이었다. 보통 ‘밝을 명(明)’을 예상한 청중들은 또 다른 반전에 눈빛을 반짝였다.

“지성이 어느 순간보다 빛나는 순간이었습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모두 정신줄을 놓지요.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깨달음의 장을 삼은 게 연암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열어가는 길이 아니면 부처님이나 예수님이 와도 고통에서 구할 수 없습니다.”
 
 
▲ 고미숙 고전평론가가 이야기하는 고전의 지혜에 청중들은 웃음으로 답하며 인문학 강의에 빠져들었다.
 

고미숙의 저서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동의보감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의 말을 빌리자면 이렇다. “죽음에 대한 성찰과 훈련 없이 잘 산다는 건 불가능하다. 늘 두려움과 공포를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 원초적 불안으로부터의 자유, 그것이 곧 수행이다.” 또 다른 저서 ‘동의보감-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에서도 고미숙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산다는 것 자체가 아픔의 마디를 넘어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결국 죽는다. 모두가 죽는다. 죽음은 삶의 또 다른 얼굴이다. 생명의 절정이자 질병의 최고 경지이기도 하다. 결국 탄생과 성장과 질병과 죽음, 산다는 건 이 코스를 밟아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질병과 죽음을 외면하고 나면 삶은 너무 왜소해진다. 아니, 그걸 빼고 삶이라고 할 게 별반 없다. 역설적으로 병과 죽음을 끌어안아야 삶이 풍요로워진다.”

고미숙은 2500여년 전 부처님이 설한 영성의 지혜를 세속적인 길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정 성(聖)과 속(俗)이 만나는 지점이었다.

“보통 사람은 행복해지기 보다는 덜 불행하기 위해 삽니다. 그러면서도 가장 어렵다는 돈 벌기에 집착합니다. 불행을 자초하는 일입니다. 돌아보면 깨달음의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팔만사천법문은 최고의 은혜입니다. 많은 길을 열어 놓았습니다. 너무 쉬워서 그런가요? 관심이 없습니다.”

질의응답 시간에 고미숙은 훌륭한 스승을 만나라 일렀다. 자신도 연애편지만 쓰는 친구들이나 간다고 믿었던 국문학과에서 고전을 공부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고백하면서. 산을 모르면 관광코스만 간다. 산을 손바닥처럼 들여다보는 이와 동행하면 산의 다른 면모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요즘엔 돈을 쫓는 욕망과 달리 스승을 만나고자하는 욕망은 없다고 했다. 비극이었다.

마지막 반전이 일어났다. 조명 탓일까. 봉은사 법왕루 부처님의 입술이 금빛 미소를 물었다. 청중들 눈빛이 다시 빛났다.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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