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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천지와 인간의 조응을 역설한 주자의 자연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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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4-04-08 16:14 조회3,89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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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4.06 19:34수정 : 2014.04.07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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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이억배 화백

내 서재 속 고전

<주자어류선집> 미우라 구니오 역주, 이승연 옮김 예문서원 펴냄(2012년)
주자어류선집 
미우라 구니오 역주, 이승연 옮김 
예문서원 펴냄(2012년)

주자는 ‘주자주의자’일까? 아닐까? 아주 오래전 <인간주자>에 대한 서평을 쓰면서 던졌던 질문이다. 주자와 주자주의, 그게 다른 거야? 물론 대개는 동의어로 쓰인다. 또 그렇게 배웠다. 하지만 <인간주자>를 읽고 나선 그 사이에 굉장한 거리가 느껴졌다. 동시에 주자와 주자주의가 동일시되기까지 참으로 기구한 사연-역사적, 담론적-이 있었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하긴 모든 사상이 그렇지 않은가. 사람만 생로병사를 하는 것이 아니다. 사상도 ‘생장수장’의 스텝을 밟아야 한다. 어떤 시절을 만나느냐에 따라 사상의 팔자도 숱하게 꼬이는 법이다. 그때 어떤 결론에 도달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다시 이 질문 앞에 섰다. <주자어류선집>을 읽었기 때문이다. 같은 저자의 작업이긴 하지만 이번엔 직접 주자의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뜬금없이(?) 왜 주자를 읽었는가부터 설명해야겠다. 내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남산강학원&감이당)의 커리큘럼은 동서양 고전을 두루 망라한다. 동양사상은 유불도 ‘삼교회통’을 기본으로 삼는데, 그중에서도 <논어>와 <전습록>(왕양명)에 대한 선호가 뚜렷하다. 선진유학에서 시작하여 송나라의 주자를 건너뛰고 명나라의 양명학으로 직진해버린 것이다. 공자에 대해서야 말할 필요도 없고, 왕양명의 카리스마 또한 만만치 않다. 장군이면서 철학자라는 드문 이력의 소유자다. 전장터를 누비는 무사가 마음을 다스리는 지혜의 산파가 될 수 있다니. 이 사실만으로도 경이로운데, ‘심즉리’, ‘지행합일’, ‘치양지’ 등의 개념이 보여주듯, 마음과 이치, 앎과 행을 단도직입하는 사유의 역동적 구조는 더할 나위 없이 매혹적이다. 연대기적 배열이 보여주듯, 그의 사상적 전투의 대상은 주자학이다. 그러니 그에 비추어 주자를 보면 주자는 도그마의 화신일 수밖에. 하여, 주자는 늘 극복의 대상이지 배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물론 좀더 깊은 연원이 있긴 하다. 나는 18세기 고전문학 전공자다. 18세기는 이른바 ‘실학의 시대’다. 실학을 통해 자본주의의 맹아를 찾아라, 이것이 1980년대 이래 한국학 연구자들의 소명이었다. 이때 주 타깃은 주자의 성리학이다. 해서, 거의 모든 연구가 ‘탈성리학’ ‘탈주자학’이라는 명제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니 주자는 늘 비인간적인 엄격주의자의 모습으로 환기될 수밖에 없었다. 돌이켜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그를 넘어서겠다고 했으니 말이다.

‘탈주자’, ‘탈성리’라는 역사적 소임이 사라진 탓일까. 서두에서 밝힌 오래전 질문이 새삼 환기되었다. 공자와 양명 사이를 잇는 주자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여, 드디어 공동체의 세미나 커리에 등극하게 되었다. 아, 덧붙여 아주 사소하지만 실질적인 이유가 또 하나 있다. 내 책꽂이엔 <인간주자>를 비롯하여 <주서백선> <주자어류선집> 등 주자 관련 책들이 꽂혀 있다. 어떤 경로로 유입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나오자마자 사두었던 모양이다. 언젠가는 읽게 되리라는 무의식의 발로라고나 할까. 책에도 기운이 있다. 특히 고전에는 엄청난 에너지파가 내장되어 있다. 해서 일단 가까이 있으면 언젠가 그 책의 세계와 접속하게 된다. 이번에도 그랬다. 갑오년 새해가 시작되면서 문득 나는 <주자어류선집>을 꺼내들었다. 시절인연이 도래한 것이다.

<논어>와 <전습록>이 그렇듯이, <주자어류선집> 역시 주자와 제자들 사이의 대화록이다. ‘41살에서 몰년에 이르는 30년간의 언설’이라고 한다. 예나 이제나 제자들이 스승에게 하는 질문은 좀 ‘저렴하다’. 각종 핑계와 변명으로 스승을 짜증나게 하고, 스승이 평생 일군 사상적 개념에 대한 ‘생초보적’인 질문들을 퍼부어 스승을 좌절시킨다. 하지만 우리 같은 후학에겐 그런 모습이 참, 고맙다. 딱 우리가 궁금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우문현답이라고, 스승 주자의 답변은 그야말로 깊고 넓다. 공부법에서 학문적 체계, 우주론과 존재론, 최고의 라이벌이었던 선불교와 육상산의 심학에 대한 비판에 이르기까지. 놀랍게도 그는 자연철학자였다. 아주 많은 부분이 태극·이기·천지·음양오행의 개념들을 궁구하는 데 할애되어 있다. 이렇게 자연학에 몰두한 이유는 간단하다. 우주의 이치는 존재의 내재적 법칙과 조응하기 때문이다. 천(天)과 인(人), 자연과 도덕의 간극 없는 일치! ‘성즉리’(性卽理)라는 기본테제는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원대하면서 동시에 치밀한, 한치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는 개념들이지만 마치 물 흐르듯 편안하다. 구어체의 생생함이 살아있기 때문일 터이다.

말하자면, 주자도 처음부터 ‘주자주의자’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 역시 쉬지 않고 배우고 익히면서 새로운 길을 열어간 학인이었을 뿐이다. 다만 그 길에 수천명의 제자들이 몰려들었고, 그러다 보니 전국적 지명도를 확보하게 되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살아서 무슨 영광을 봤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중앙정부로부터 미운 털이 박혀 ‘위학(僞學)의 금’(주자학에 대한 탄압사건)까지 겪어야 했다. 그의 학문 또한 주류로부터 배척당한 ‘마이너 리그’에 불과했다. 적어도 살아있을 당시엔.

세미나 회원들이 최고로 꼽은 대목은 앞의 두 장이다. ‘문생들에게’와 ‘성인은 배워서 이른다’가 그것이다. 그 첫장은 특히 감동적이다. “무엇이든 자네 자신이 직접 대결하고 자네 자신이 몸소 생각하며 자네 자신이 수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책도 자네 스스로 읽고 도리도 자네 자신이 궁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다만 길을 안내하는 안내자이며 입회인에 불과하다. 의문점이 있으면 함께 생각해볼 따름이다.” 요컨대, 공부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자신일 뿐이라는 것. 이때 중요한 것은 앎의 신체성이다. 하여 그의 훈계에는 ‘스며들다’, ‘기른다’, ‘적신다’ 등과 같은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인간은 천지의 기운을 받고 태어났다. 고로 마음 안에 모든 것이 구비되어 있다. 그것이 드러나면 ‘인의예지신’이 된다. 오륜을 아우르면서 대표하는 인(仁)은 곧 천지만물과 하나되는 것이다. 그런 이치를 터득한 존재가 곧 성인(聖人)이다. 모든 인간은 성인이 될 수 있고, 또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주자의 대전제다.

가난 때문에 학문에 전념하기 어렵다는 제자에게 하는 말, “그것은 상관없다. 세상에 할 일이 없는 한가로운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루 24시간, 언제 여유가 있는지를 보고 두 시간 여유가 있으면 두 시간을 공부하고 15분 여유가 있으면 15분을 공부하면 된다.” 그런가 하면 선생님은 원래 뛰어나니 그렇게 하시는 거고 자신은 발꿈치도 따라가지 못한다고 푸념하자, “그런 말은 모두 자신을 변호하는 말로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결함이다.” 이런 대목에서 우리는 모두 ‘빵’ 터졌다. 우리도 늘상 입에 달고 있는 말이 아닌가. 돈이 없어서, 몸이 안 좋아서, 머리가 나빠서…. 하지만 주자는 지치지 않고 말한다. 도피하지 말고 자신의 운명과 대면하라! 천리를 터득하여 성인이 되는 것, 그것이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길이요 명이다. 그것은 진정 새로운 ‘앎의 향연’이었다. 하지만 주자 사후 원나라 때부터 주자의 학문은 국가학이 되었다. 어떤 사상도 국가와 결합하면 도그마가 된다. 초기의 생동감을 잃고 뻣뻣하게 굳어버리는 것이다. 어디 주자만 그럴까. 20세기를 장식한 수많은 혁명이론의 운명도 다르지 않았다. 지금 우리가 신봉하는 표상들 또한 이 ‘무상성’의 운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고미숙 고전학자

근대성 담론으로 무장했던 20세기 한국학에서 주자는 중세봉건의 원천이자 토대였다. 그것은 기필코 넘어서야 할 둑이자 벽이었다. 그럼 지금은? 이제 그 중세를 타자화하고 온갖 ‘악의 축’으로 간주했던 근대성 담론 역시 도그마의 운명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다면 이제 마음놓고(?), 아니 아주 새로운 마음으로 주자를 만나도 좋지 아니한가. 심도 높은 역주로 독서의 즐거움을 선사한 미우라 구니오는 “50년 넘게 중국 고전과 가까이하였지만 결국 <주자어류>가 가장 재미있었다. 이 사람이 생각했던 것, 느꼈던 것은 천년 가까운 시공을 넘어 여전히 내 가슴에 울리고 있다”고 말한다. 이 정도는 아니지만, 공자와 양명, 그 사이를 잇는 또 하나의 스승을 만난 이 기쁨만은 독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다.

고미숙 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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