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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탐욕, 분노, 어리석음에서 해탈하는 구법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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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4-07-23 18:50 조회4,57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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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이억배 화백

내 서재 속 고전

<서유기 1~10>

서유기 1~10
오승은 지음
서울대 서유기 번역연구회 솔 펴냄(2004)

지난 5월 중순, ‘소수민족 의학기행’의 일환으로 중국 윈난성을 다녀왔다. 덕분에 다리의 호수, 리장의 고성, 동파문자, 장이머우의 인상여강 등 소수민족의 문화를 다방면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호도협 트레킹’이었다. ‘호도협’(호랑이가 뛰어오른 협곡)은 ‘차마고도’로 알려진 그곳이다. 윈난성의 중심 도시인 리장, 그 경계에 우뚝 솟아 있는 위룽(옥룡)설산과 하바(합파)설산, 그 사이를 연결하는 협곡이 호도협이다. 이름에 걸맞게 거칠고 역동적인 코스다. 동강 트레킹이나 제주 올레길 정도를 연상하며 참가했다가 정말, 죽는 줄 알았다. 해발 3천미터가 넘는 고산지대인데다 트레킹이라 하기엔 오르막길이 너무 많았다. 마지막 죽음의 코스가 ‘28밴드’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스물여덟번 돌아가도록 한 코스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관절염에 몸살을 앓던 중이라 컨디션이 최악이었다. 협곡 아래는 아득한 낭떠러지고, 그 밑으론 진사(금사)강의 급류가 흐른다. 맞은편엔 위룽설산 13개 봉우리(해발 5천미터)가 우뚝하다. 헐~ 그야말로 오도가도 못하는 형국!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퇴로는 없다. 또 누구도 대신해줄 수가 없다. 그때 문득 떠오른 생각. 이것이 인생이로구나. 추락도 비상도 허용하지 않는, 한걸음을 내딛는 것 말고는 달리 방도가 없는 길! 지난 몇개월 <서유기>를 ‘리라이팅’한 뒤라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중국 사대기서(四大奇書) 중의 하나인 <서유기>는 구법과 모험의 판타지다. 주인공은 삼장법사와 세 제자들(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가는 곳은 서천 영취산에 있는 뇌음사. 목적은 석가여래를 만나뵙고 불경을 구해와서 중생을 구제하는 것. 거리는? 십만 팔천리! 거리도 거리지만 도처에 ‘스펙터클하고 럭셔리한’ 요괴들이 득시글거린다.

‘서유기’는
구법과 모험의 판타지다
구법이란
삼장법사의 ‘느려터진’ 속도로
‘온갖 고난’을 겪으면서
‘한걸음씩’ 가는 것이다
걸음과 마음이 함께 가야
도달할 수 있는 곳이
서천이다

“형님, 뇌음사까지는 얼마나 멀어요?”(사오정)

“십만 팔천리야. 아직 십분의 일도 못 왔어.”(손오공)

“형님, 몇 년이나 걸어야 도착할 수 있을까요?”(저팔계)

“이 길은 두 동생들이라면 열흘 정도면 갈 수 있지. 나라면 하루에 쉰 번 가는 것도 어렵지 않아. 해 떨어지기도 전에 말이야. 사부님이라면, 아휴! 생각도 말아야지.”

“오공아, 언제쯤이면 도착할 수 있겠냐?”(삼장법사)

“사부님이 어릴 때부터 노인네가 될 때까지, 아니 늙은 다음 다시 어려지고, 그게 수천 번 된다 해도 거기 도착하긴 어려워요. 다만 사부님께서 지성으로 깨달으시고 한마음으로 돌아보신다면, 그곳이 바로 영취산일 겁니다.”

맙소사! 이런 어이없는 여행이 있나. 해서 저팔계가 다시 묻는다. “형이 사부님을 업고 고개를 끄덕끄덕 허리 한 번 굽혔다 펴서 강을 건너가면 될 거 아냐? 왜 고생고생하며 그 요괴놈과 싸우려는 거야?” 손오공의 답변. “내 근두운도 그래 봤자 똑같은 구름이야. 좀더 멀리 갈 수 있을 뿐이지. 너도 무거워서 태울 수 없는 걸 낸들 어떻게 태우겠어? 옛말에 ‘태산을 움직이기는 겨자씨처럼 가벼워도, 보통 사람을 데리고 속세를 벗어나기는 어렵다’라고 하지 않더냐. 사부님은 낯선 여러 나라를 몸소 다녀야만 고해를 초탈할 수 있지. 그래서 ‘한발자국씩’ 힘들게 가시는 거야. 너와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사부님을 보호해서 몸과 생명을 위태롭지 않게 하는 것일 뿐, 이런 고통을 대신할 수도, 경을 대신 가져다드릴 수도 없어. 설사 우리가 앞질러 가 부처님을 뵌다 해도 우리에겐 경을 내주려 하지 않으실걸?”

요컨대, 구법이란 삼장법사의 ‘느려터진’ 속도로 ‘온갖 고난’을 겪으면서 ‘한걸음씩’ 가는 것이다. 그 걸음과 더불어 마음이 움직인다. 마음이 움직이면 거리 또한 움직인다. 걸음과 마음이 함께 가야 도달할 수 있는 곳이 서천이다. 뭔 말이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가보는 수밖에.

구법이라는 원대한 주제임에도 <서유기>는 유쾌, 발랄하다. 삼장법사가 주연이긴 하나 실제로 종횡무진 활약하는 건 손오공이다. 삼장법사는 주로 납치되어 ‘눈물을 짜는’ 일이 대부분이다. 그때마다 손오공이 천지사방을 휘젓고 다니며 맹렬하게 사투를 벌인다. 다소 모자라지만, 저팔계와 사오정도 나름 술법의 고수들이다. 그래서 또 궁금하다. 그렇게 ‘잘난 놈’들이 왜 이런 ‘겁쟁이’에다 ‘늙다리 사부’인 삼장법사를 따라가지? 손오공은 분노의 화신이다. 능력이 대단한 만큼 그걸 쓰지 못해 안달한다. 요즘 말로 치면 분노조절장애, 혹은 폭력중독이다. 자신이 조절할 수 없는 능력을 가졌다는 건 치명적이다. 왜? 그 능력의 노예가 될 테니까. 한편, 저팔계는 식욕과 성욕의 화신이다. 월궁 항아를 희롱한 죄로 돼지의 태에 들어가는 바람에 외모도 좀 ‘거시기’해졌다. 여자를 보면 일단 침부터 나오는데다, 채식을 하는데도 한 끼에 서너말을 후딱 먹어치운다. 그의 행태를 볼작시면, 먹방과 야동이 범람하는 우리 시대의 초상이 그대로 겹쳐진다. 사오정도 하늘나라에서 잘나가는 장군이었는데, 한순간의 방심으로 유사하의 요괴가 되었다. 방심, 곧 정신줄 놓는 것이 그의 특징이다. <서유기>의 애니메이션 버전인 <날아라 슈퍼보드>에서 말귀를 못 알아듣고 다소 ‘쩐 듯한’ 목소리로 동문서답을 해대는 캐릭터로 변주된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말하자면, 이들 세 제자는 ‘탐진치’의 화신들이다. 저팔계가 탐심(탐욕), 손오공이 진심(분노), 사오정이 치심(어리석음) 등으로. 말하자면, 이들은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과 무지를 대변하고 있다. 하여, 구법이란 이 ‘탐진치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그래서 길을 나서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철저히 삼장법사의 속도여야 한다. 그래야 탐진치를 덜어낼 수 있으므로. 당연히 길은 험하고 요괴는 끊임없이 출몰한다. 동식물, 곤충의 정령에서 여인국의 여왕, 도력이 높은 도사들에 이르기까지, 한마디로 세상 모든 것이 다 요괴다! 이들이 원하는 건 단 하나. 삼장법사의 몸이다. 삼장법사는 열 세상을 윤회하면서 원양(元陽)을 보존한 수행자로 그의 몸을 ‘먹으면’ 불로장생이 가능하다. 불멸에의 꿈, 이것이야말로 ‘탐진치’의 절정이다. 우주는 쉼없이 운행하는데 그 운행을 멈추게 하겠다는 뜻이니까. 그럼 그걸 이룬 다음엔 어떻게 사는가? 부귀영화를 누린다. 그럴싸해 보이지만 그 내용을 따져보면, ‘식욕과 성욕을 만끽하면서 약자들 위에 군림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허접한’ 코스를 열나게 뛰다 보면 다들 요괴가 된다. 세 명의 제자들이 밟았던 전철이기도 하다. 결국 요괴와 인간, 요괴와 수행자는 한끗 차이인 셈. 그러므로 이 여정은 궁극적으로 자신과의 싸움에 다름 아니다. 중생 구제의 길 또한 거기에 달려 있다.

예전에는 손오공에 꽂혔지만 이번에는 저팔계가 남다르게 느껴졌다. 저 지독한 식욕, 성욕을 안고서 그 머나먼 길을 가다니. 꼼수를 부리다 손오공한테 맨날 깨지면서도 일행의 모든 짐을 짊어지고 끝까지! 간다. 그래서 솔직히 ‘감동먹었다’. 저팔계도 가는 길이라면 나도 갈 수 있지 않을까. 아니, 그래야 하지 않을까. 호도협 트레킹 때의 내 몸이 딱 그랬다. 오, 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이라니! 하지만 결국은 그 코스를 통과했다. 달리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6시간이 넘는 대장정이었지만, 실제로 내가 한 건 단 한걸음이었을 뿐이다.

고미숙 고전학자

<서유기>의 원천은 현장법사의 여행기인 <대당서역기>다. 물론 거기에는 요괴들과의 현란한 싸움 같은 건 없다. 현장법사의 눈에 비친 이국의 풍경들이 담백한 어조로 그려져 있다. 하지만 당시로선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상상력을 엄청나게 자극했을 것이다. 그 상상력의 ‘빅뱅’(대폭발)이 바로 <서유기>다. 현장법사에 대해 알고 싶으면 <현장 서유기>(첸원중)를 추천한다. 중국 시시티브이(CCTV)에서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현장법사가 겪었던 모험과 그의 일대기가 박진감 있게 펼쳐진다. 열세 살의 나이에 불문에 귀의하고, 스물여덟 살에 도망자 신세로 국경을 넘어 인도로 갔다. 19년 동안 구법의 순례를 했고, 당나라로 돌아와 19년 동안 불경을 번역하다 생을 마쳤다. 참으로 위대하고 단순하다. 아니, 단순하기에 위대하다. 삼장법사와 제자들, 특히 저팔계의 걸음이 그러했듯이.

고미숙 고전학자

(한겨레, 2014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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