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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숙한 고전에서 끌어낸 일상의 희로애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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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3-10-22 15:31 조회4,2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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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서재 속 고전

새로 쓴 옛날이야기(고사신편)
루쉰 지음, 유세종 옮김
그린비 펴냄(2011)

그의 시선은 예리하고 투명하다. 늘 정면을 응시한다. 카메라 앞의 쑥스러움과 수줍음 따위는 일절 없다. 들판에서 여러 벗과 찍은 경우에도 벗들의 시선은 사방으로 흩어져 있지만 그의 시선은 오롯이 정면을 향하고 있다. 가끔 옆모습이 찍힌 경우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 경우에도 각도와 실루엣 등 설정이 더할 나위 없이 치밀하다. 우연히 옆모습을 찍힌 게 아니라 그렇게 찍히게끔 포즈를 취했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카메라의 안에 있으면서 동시에 바깥에 있는 존재라고나 할까. 이 사람이 바로 중국 근대문학의 선구자 루쉰이다.

지난 9월 한가위 연휴 때 내가 함께하는 공동체(남산강학원&감이당) 후배들과 중국 베이징에 있는 루쉰박물관을 방문했다. 나로선 세 번째다. 처음 갔을 땐 그의 친필 원고와 생가를 살피는 데 몰두했는데, 두 번째부턴가 문득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그는 참으로 많은 사진을 찍었다는 것. 1902년, 스물둘 나이에 일본으로 유학을 가자마자 변발을 잘라버리고 곧장 사진관으로 직행한다. 이후 그는 일생에 걸쳐 수많은 사진을 남겼다. (때문에 변발을 한 그의 모습은 남아 있지 않다. 왠지 좀 아쉽다.) 루쉰박물관의 콘셉트도 그가 남긴 사진을 중심으로 짜여 있다. 그게 왜 놀랍냐고?

시야를 ‘줌아웃’해서 그의 생애와 시대를 조망해보자. 그의 생몰 연대는 1881~1936년. 바야흐로 서구 문명의 진군 앞에서 동양의 지축이 요동치던 시기다. 그의 개인사 또한 시대의 파고만큼이나 파란만장하다. 일본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그의 행로는 역마살로 충만하다. 베이징에서 샤먼으로, 샤먼에서 광저우로, 다시 상하이로! 그의 역마살을 추동한 건 다름 아닌 군벌들의 추격과 탄압이다. 말하자면 그는 도주하는 중이었다. 게다가 이 시대는 카메라가 막 등장한 시기 아닌가. 카메라에 사진을 박는다는 건 개인이건 단체건 아주 큰맘 먹고 치러야 하는 중대사였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이 숨가쁜 시기에, 그 기술적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많은 사진을 ‘박을’ 수 있었을까? 한데 이번 세 번째 방문에선 문득 그것이 어떤 복선처럼 느껴졌다. 그의 사상과 작품을 관통하는 복선!

루쉰의 작품들은 까칠하다. 거두절미, 단도직입! 시쳇말로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정도로 불친절하다. 독자들이 가질 법한 일말의 희망도 낭만적 기대도 산산이 부숴버린다. 민족주의, 사회주의, 모더니즘 등 시대를 풍미한 사상적 조류들에도 결코 휩쓸리는 법이 없다. 정면을 오롯이 응시한 채 그는 단지 물을 뿐이다. 그것이 진정 삶을 바꿀 수 있는가? ‘식인’으로 점철된 중국 민중의 습속을 전복할 수 있는가? 라고. 일상과 습속이 바뀌지 않는 한 모든 이념과 혁명은 ‘사이비’다. 그의 미학을 창과 비수라고 하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그는 사실 창이나 비수를 날린 적이 없다. 정면을 응시하는 그의 시선이 창과 비수가 되었을 뿐이다. 하여, 그 창과 칼의 끝에는 언제나 유머가 묻어 있다. 이 유머는 “빵 터지는” 해학이 아니라 속으로 “키득거리게 하는” 풍자다. 하여, 한바탕 웃음으로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파고들어 내장을 뒤틀거나 세척해 버린다. <고사신편>이 특히 그런 작품이다.

<고사신편>은 풀이하면 ‘새로 쓴 옛날이야기’라는 뜻이다. 중국의 오래된 신화와 역사, 민담 등을 종횡으로 엮어 현실의 생생한 호흡을 불어넣은 작품집이다. 고전 ‘다시 쓰기’의 원조 격에 해당하는 셈. 그의 세 번째 소설집으로 1922년에서 1935년 사이에 쓰였다. 무려 13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이유는 대작이어서가 아니다.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여기 실린 작품들도 아주 짧다. 작품 수도 고작 8편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긴 시간이 걸렸다는 건 이 연대기가 녹록지 않았던 때문이다. 번역자 유세종 교수의 해제를 보면, 첫 작품 <하늘을 땜질한 이야기>를 쓴 1922년은 군벌들의 발호로 5·4 신문화 운동이 퇴조기에 접어든 때이고, <달나라로 도망친 이야기>와 <검을 벼린 이야기>를 쓴 1926년은 3·18참사의 배후 주동자로 찍혀 국민당 정부가 내린 체포령을 피해 도피하던 중이었다. 앞서 언급한 샤먼과 광저우로 ‘튀던’ 때가 바로 이즈음이다.

동양의 지축이 요동치던 시절
중국 신화, 역사, 민담 8편 엮어
13년 걸려 다시 쓴 소설집

‘일상’이라는 무기로
고전의 초월적 권위와
비장한 포즈를 일망타진한다
루쉰의 창과 칼 끝에는
안으로 파고드는 유머가 있다

그의 ‘옛날 이야기’에서
당대 이슈들을 찾아내는 건
숨은그림찾기같은 재미를 준다

나머지 작품들을 쓴 1934년과 1935년은 상하이에 정착한 시기로 중일전쟁(1931년)의 발발로 중국인들에게는 전쟁이 일상화되었던 시절이다. 마오쩌둥이 이끄는 공산당이 국민당의 탄압을 피해 도시를 버리고 대장정에 나선 시기이기도 하다. 더 결정적으로 이 시기는 그의 말년이었다. 폐결핵이 그의 생의 에너지를 잠식해 들어간 탓이다.

이런 시기에 나왔으니 작품들이 얼마나 비장할까, 싶겠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뭐, 이렇게 태평무사한가 싶을 정도로 여유가 넘친다. 에피소드 몇 가지. 활쏘기의 영웅 예는 사냥이 제대로 되지 않아 허구한날 아내 항아의 잔소리에 시달린다. 한편 맨날 까마귀 자장면만 먹다 지친 항아는 남편인 예의 선약을 훔쳐 먹고 달나라로 튀어 버린다. 이런! 치수의 영웅 우임금은 발바닥이 무질러지도록 천하를 위해 일했건만 7년 만에 돌아와서도 집에 들르지도 못한다. 그러자 그의 아내는 이런 저주를 퍼붓는다. “이 천 번 만 번 죽일 놈! 무슨 장사 지낼 일 있다고 그렇게 뛰어다닌담! 제집 문 앞을 지나면서도 코빼기도 보여주질 않다니! 네 장사나 치러라! 벼슬, 벼슬이 뭐 대단한 거라고. 하는 꼬라질 보면 제 애비처럼 변방에 유배돼 못에 빠져 자라나 되라지!” 헐. 그런가 하면 백이 숙제는 동아시아 유학자들의 이상적 롤모델이다. 절의를 지키려고 수양산에 들어가서 고사리를 먹다 죽었다는 그 비장한 스토리의 주인공들이다.

하지만 루쉰이 엿본 그들의 일상은 이렇다. “그들은 날마다 고사리를 뜯었다. 처음에는 숙제 혼자 뜯고 백이는 삶았다. 나중에는 백이도 … 함께 뜯으러 나섰다. 조리법도 다양해졌다. 고사리탕, 고사리죽, 고사리장, 맑게삶은고사리, 고사리싹탕, 풋고사리말림…. 그러나 근처의 고사리는 어느새 다 바닥나 버렸다.” 맙소사! 한편, 장자의 등장은 참 많이 당황스럽다. 잡초 무성한 광야를 지나다 장자는 한 해골을 되살려낸다. 부활한 사내는 장자에게 옷과 보따리를 달라고 떼를 쓴다. 사내는 500년 전쯤 친척집에 가기 위해 이곳을 지나다 강도에게 죽음을 당했던 것이다. 장자로 인해 부활했지만 그에게 중요한 건 생사의 이치 따위가 아니다. “니에미 나발 불고 있네! 내 물건 돌려주지 않으면 내 널 때려죽일 테다!” 장자는 급기야 순경을 부른 다음 줄행랑을 친다.

이런 식으로 루쉰은 고전에 드리워진 초월적 권위와 비장한 포즈를 일망타진해 버린다. 그 무기는 보다시피 ‘일상’이다. 영웅이건 열사건 도사건 모두 일상의 산물이다. 일상은 생명의 토대이자 삶의 현장이며 진리의 출발점이다. 하여, 일상을 떠나서는 그 어떤 이념도 비전도 한낱 망상에 불과하다. 고전의 원대한 세계를 일상의 희로애락과 단도직입으로 중첩시켜 버리는 것. 그것이 루쉰의 전략이었다. 루쉰은 이 중첩된 필름들을 가차없이 관통한다. 카메라를 응시하던 그 특유의 시선으로. 고대와 현재, 위대한 것과 비루한 것, 이념과 현실 등등. 그래서 아주 역설적으로 이 ‘옛날’이야기에는 당대의 첨예한 이슈들이 촘촘히 박혀 있다. 그 ‘숨은그림찾기’의 재미 또한 쏠쏠하다. 요컨대 도주의 긴장도, 지옥 같은 전쟁도, 폐병의 잠식도 그를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그에게 삶이란 다만 ‘지금, 여기’의 순간들을 온전히 살아내는 것일 뿐이므로.

고미숙 고전학자
그는 상하이에서 임종을 맞이했다. 그곳에서 보낸 마지막 열흘에 대한 사진들도 남아 있다. 뼈만 남은 얼굴에 형형한 눈빛. 하지만 그보다 더 감동적인 건 죽기 하루 전날 청년들과 마주 앉아 한담하는 장면이다. 루쉰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며 한 청년이 환하게 웃고 있다. 루쉰박물관에 갈 때마다 난 이 사진 앞에서 오랫동안 멈춰서게 된다. 이 청년의 미소가 루쉰의 삶과 작품을 말해주는 것처럼 보여서다. 죽음을 앞에 두고도 누군가에게 이런 웃음을 야기할 수 있다면 그는 충분히 가벼웠을 것이다. 또 자유로웠을 것이다. 카메라를 응시하던 그의 시선이 그러했듯이. 하긴 그렇다. 이 ‘텅 빈’ 충만함보다 더 날카로운 창과 비수가 또 있을까?

고미숙 고전학자 

(한겨레. 13.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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