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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태산은 평지만 못하다” 우상화 거부한 양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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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4-12-27 11:43 조회4,5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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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은 평지만 못하다” 우상화 거부한 양명

등록 : 2014.12.18 19:30수정 : 2014.12.18 19:30

그림 이억배 화백

내 서재 속 고전

전습록
왕양명 지음, 한정길·정인재 옮김/청계(2007)

낭송 전습록
왕양명 지음, 문성환 엮음/북드라망(2014)

“모든 백성이 군자가 되는 나라”-올해 초 인기리에 방영된 한국방송(KBS) 드라마 <정도전>에 나온 대사다. 바닥까지 추락한 정도전은 동북면의 덕장 이성계를 찾아간다. 고려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왕조를 건설하자는 정도전의 말에 이성계는 칼을 뽑아들고 정도전의 목을 겨눈다. 자신을 반역자로 만들 셈이냐며. 그때 정도전이 말한다. 함께 손을 잡고 ‘민본정치’를 구현하자고. 사전을 혁파하여 모든 백성이 자기 땅에서 농사를 짓게 하자는 것이다. 내가 주목한 건 그 다음 대사였다. 그리하여 “모든 백성이 군자가 되어 사는 나라”를 만들어 보잔다. ‘군자의 나라’? 순간 이 말이 내 귀에 와서 콕! 박혀 버렸다. 왕조체제건 국민국가건 모든 정치의 이상은 결국 저것이 아닐까 싶어서였다.

군자란 무엇인가? 자기 땅과 노동의 주인이 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잘 먹고 잘사는 것만으론 역시 부족하다. 궁극적으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할 터. 삶의 주인이 되려면 경제적 자립뿐 아니라 윤리적 자율성을 체득해야 한다. 윤리란 외부로부터 오는 억압과 구속에 맞서 싸우는 힘이자 동시에 마음이 욕망으로 치닫지 않도록 스스로 조율하는 내적 에너지라 할 수 있다. 모든 백성이 이런 존재가 되는 것, 이것이 정도전이 꿈꾸는 ‘이상국가’였다. 그것은 단지 토지개혁과 왕조교체만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경지는 아니다. 제도와 시스템이 견고해지면 관료주의와 무력감이 판치게 되고, 물산이 풍부해지면 사치와 방탕에 빠져드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무력하거나 중독되거나! 군자가 된다는 건 이 양극단을 모두 떨치고 생명의 자율성을 고도로 발휘한다는 뜻이리라. 그러기 위해선 모든 백성이 ‘인생과 우주의 지혜’를 연마하는 길을 열어야만 한다. 이때 정도전이 염두에 둔 비전은 주자의 성리학이었다. 그런데 이 대사를 듣는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아주 역설적으로 주자가 아니라 그 주자를 넘어서고자 한 양명이었다.

주자는 분명 훌륭한 스승이다. 공맹의 유학을 형이상학적으로 체계화하였고 그것을 바탕으로 왕도정치의 이상을 구현하고자 했다. 그 역시 군자의 나라를 꿈꾼 것이다. 려말선초에 유입된 성리학은 그런 역동적 비전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주자 사후, 주자학은 주자의 염원과는 다른 길을 걷게 된다. 국가학이 되어 주류에 편입되면서 오히려 모든 이상과 실험을 억압하는 도그마가 되고 말았다. 군자가 아니라 소인이 되는 코스가 되어 버린 것.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양명이 등장한 지점도 바로 거기다. 국가장치를 등에 업고 거대담론이 되어 버린 주자학에 맞서려면 생명과 우주, 거기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왕양명(1472~1528)은 명나라 중기를 살아간 장군이다. 그냥 평범한 무장이 아니라, 중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전략가이자 수차례 큰 반란을 진압한 ‘명장’이다. 한데 놀랍게도 그는 사상가다. 그냥 평범한 사상가가 아니라 중국철학사의 흐름을 주자학에서 양명학으로 뒤바꾼 ‘거인’이다. 세계사에는 양명보다 뛰어난 철학자도 있고, 또 양명 못지않은 명장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양명처럼 장군이면서 동시에 현자인 경우는 실로 드물다. 말하자면, 그는 ‘칼을 찬 학자’, ‘붓을 든 장군’이었던 것. 그 이름에 걸맞게, 전장터를 누빌 때는 다만 적을 물리칠 뿐 아니라 백성들이 살아갈 길을 열어주었고, 다시 향리로 돌아오면 강학을 열어 사방에서 몰려온 제자들과 본체와 천리를 탐구했다. 전장터와 강학원, 양극단에 위치한 두 현장을 무심하게 넘나드는 이 유연한 도움닫기! 그 생생한 기록이 바로 <전습록>이다. <논어>나 <주자어류>가 그렇듯이, 이 책 또한 스승 양명이 제자들과 주고받은 대화록이다.

뛰어난 장군이자 전략가
좌천된 땅에서 천리 터득
남보다 높아지려는 병폐 경계
우상이 된 주자와 다른 길

왜 성인이 되지 못하는가
인욕에 가로막혔기 때문
많은 권력자들의 성범죄는
욕망 다스리는 수련 안한탓

양명의 이력 탓일까. <전습록>은 철학적 고전임에도 박진감이 넘친다. 주자학이 체계적이고 방대한 커리큘럼을 종횡한다면, 양명학은 단도직입에 쾌도난마다. 철학적 출발점도 간결하기 그지없다. ‘심즉리’(心卽理). ‘심외무물’(心外無物). 주자학의 박학다식에 맞서 존재와 세계의 ‘간극 없는 일치’를 설파한 것이다.

이런 사상을 터득하는데 어찌 고난이 없었으랴. 환관 유근의 전횡을 상소했다가 장 40대를 맞고 귀주에 있는 용장으로 좌천된 적이 있었다. 암살의 위험에 시달리며 간신히 도착한 용장은 이민족들이 웅거하던 오지 중의 오지였다. 말도 통하지 않을뿐더러 풍토병의 위협으로 생사를 넘나드는 고투를 감내해야 했다. 그야말로 벼랑 끝에 선 것이다. 하지만 그 백척간두에서 양명은 마침내 천리를 온몸으로 터득한다. 이름하여 ‘용장의 대오(大悟)’! 이제 그에게는 ‘사물(物)-앎(知)-마음(心)-몸(身)’이 하나로 융합되었다. 누구든 이 이치를 터득하면 군자를 넘어 성인이 될 수 있다.-‘거리에 가득 찬 이들이 다 성인(聖人)이다!’

그럼에도 왜 사람들은 군자도 성인도 되지 못하는가? 인욕(人慾)에 의해 가로막혔기 때문이다. 인욕이란 무엇인가? 아주 간단하다. ‘여색을 밝히는 것, 재물과 명예를 탐하는 것’. 이 욕망으로부터 벗어나면 누구든 천리를 보존할 수 있다. 천리를 보존하는 것이 곧 도다. “도는 곧 본성이고 또한 운명이다.”(문성환, <낭송 전습록>) 이것을 외면하게 되면, “지식이 넓어질수록 사사로운 욕심은 더욱 커지고, 재능과 역량이 많을수록 천리는 더욱 가려진다.” 마치 우리 시대를 겨냥한 듯한 언표다.

실천적 윤리도 명쾌하기 그지없다. ‘지행합일’과 ‘치양지’(致良知). 앎과 행은 하나라는 것, 또 ‘천지조화의 정령’이자 ‘마음의 본체’인 ‘양지’에 도달하라는 것. 양명이 보기에 주자학의 가장 큰 병폐는 앎과 행의 분리에 있었다. 아는 것 따로 행하는 것 따로. 그 분열과 간극이 곧 욕망의 배양처다. 여색에 빠지고 부귀공명에 중독되는! 그러므로 ‘욕망이 싹트는 지점을 아는 것이 생명의 근원이고, 그 즉시 그것을 없애는 것이 생명을 세우는 공부다.’

아, 이제야 알겠다. 내가 왜 ‘군자의 나라’라는 대사를 듣는 순간 양명이 떠올랐는지를. 올해는 유난히 사회지도층의 성범죄가 줄을 이었다. 정계, 법조계, 학계까지. 내용도 참 기괴하고 다채롭다. 처음엔 분개했지만 문득 궁금해졌다. 그렇게 많은 공부를 하고도, 또 그렇게 높은 곳에 오르고도 왜 성욕이 통제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보니 지극히 당연했다. 우리 시대의 앎이란 욕망의 절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지 않은가. 오히려 성공은 아주 종종 욕망의 무한 증식과 혼동되기도 한다. 공적 비리가 늘 치정사건과 얽혀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따라서 진정으로 ‘리더’가 되고자 한다면, 반드시 욕망을 다스리는 수련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앞으로도 성공의 정점에서 스스로 추락하고 마는 ‘희비극’은 끊임없이 반복될 것이다.

감시와 처벌은 결코 해법이 아니다. 윤리란 철저히 자율성에 근거한다. 외압에 의한 것은 아무리 견고하다 한들 ‘노예의 도덕’에 불과하다. 하여, 제도와 시스템이 강화될수록 불안감과 무력감은 증폭될 것이고, 또 그에 비례하여 욕망에 대한 탐닉도 한층 교묘해질 것이다. 결국은 악순환이다. 군자의 나라가 되려면 군자가 되는 길이 열려야 한다. 무엇보다 교육적 전제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교육이야말로 윤리의 척도를 가늠하고 훈련하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심즉리’와 ‘치양지’ 같은 양명의 테제가 절실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지금처럼 앎과 삶, 욕망과 윤리가 분리되는 공부법으로는 결국에는 재물과 성욕 앞에서 휘청거리는 소인배들을 양산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고미숙 고전학자
생의 마지막 국면에서 양명은 이렇게 말한다. “태산은 평지만 못하다.” 남보다 우뚝 솟아오르고자 하는 병폐를 경계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양명학은 스승보다 제자들이 더 유명하다. 명말청초를 주름잡은 ‘양명좌파’가 그들이다. 그들과 깊이 교감한 집단지성이 18세기 조선의 르네상스를 주도한 연암그룹이다. 그럼에도 양명에 대한 우상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주자는 거대한 체계를 세움으로써 결국은 도그마로 가는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면, 양명은 스스로 광야가 됨으로써 후학들로 하여금 그 위를 마음껏 질주하게 하였다. 모두가 군자가 되고 성인이 되는 길을 연 셈이다. 과연 태산은 광야만 못하다!

고미숙 고전학자
(한겨레. 2014.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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