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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들의 인문학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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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4-10-31 14:57 조회4,5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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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창간 23주년 특집 게재 일자 : 2014년 10월 30일(木)

지친 중 장년… 책 속에서 다시 찾는 ‘삶의 지표’
‘不惑’ 강민혁 - ‘知天命’ 김성태 - ‘耳順’ 최종구 페이스북트위터구글






‘젊은 노인들의 사회’. 철학자 이진경은 우리 사회를 이렇게 진단했다. 그는 늙는다는 것은 “입력장치는 고장 나고 출력장치만 작동하는 상태”라며 그런 상태라면 아무리 젊어도 이미 충분히 늙었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점수로 환산되는 공부에 시달리다 취직하고 결혼을 해 삶이 안정궤도에 들어서면 많은 이들이 30대부터 공부를 끝내고 급속히 늙어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2012년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81.44세. 인생 초반 10∼20여 년간 배워 버티기엔 삶은 길고, 세계와 삶의 존재 방식은 복잡해졌다. 이런 변화 속에 공부를 다시 시작하는 중장년이 조용히 늘고 있다. 중장년 공부 열풍이다.

실용적 공부뿐 아니라 인문공동체에 40대 직장인이 몰리고 대중강연엔 머리 희끗한 어른들이 대거 자리하기 시작했다. 중장년 공부 열기를 살피기 위해 대표적 인문 연구공동체에서 ‘열공’중인 40, 50, 60대 학인(學人)들을 만났다.

인문공동체 수유너머에서 7년째 공부 중인 강민혁(45) K은행팀장, 대안연구공동체에서 4년째 열공 중인 김성태(50)부천성모정형외과 원장, 갈무리출판사의 인문학 프로그램인 다중지성의 정원에서 2년간 카뮈 원서를 읽은 대기업 부장 출신 최종구(69) 씨. 강 팀장은 최근 자신의 공부 이력을 삶과 연결한 책 ‘자기배려의 인문학’(북드라망)을 내놔 화제가 됐다. 김 원장은 대안연구공동체로부터 “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지 우리도 궁금하다”며, 최 씨는 다중지성의 정원에서 “공부 공력이 대단한 분”이라며 추천받았다.

40, 50, 60대를 인터뷰한 것은 나이에 따라 공부 이유나 목적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실제론 그렇지 않았다. 이들은 모두 사회가 요구하는 공부가 아닌 자신을 위한 공부에서 시작했고, 지식으로서의 공부가 아니라 삶의 변화를 동반하는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 시작 = 강 팀장의 공부는 2008년 의사의 경고에서 시작됐다. 매일 야근, 술, 담배를 끼고 살던 그는 부인 손에 끌려간 병원에서 의사로부터 ‘이대로 살면 죽는다’는 경고를 받았다. 그때 무슨 이유에선지 수유너머가 떠올랐다. 눈 오는 날 찾아간 강의실, 형광등 아래 모여 공부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그날로 술, 담배를 끊고 공부를 시작했다.

김 원장이 대안연구공동체를 찾은 이유는 강 팀장처럼 드라마틱하진 않았지만 그보다 덜 절실한 것은 아니었다. “올해로 의사 생활 24년. 아버지 권유로 들어간 의대를 졸업하고, 수련의를 거쳐 개업을 해나가면서 정신없었다. 병원이 자리 잡기 시작한 마흔다섯쯤, 이것(현재 삶의 방식) 말고 다른 것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해진 트랙을 따라왔다는 생각이 깊어질 즈음 대안연구공동체 기사를 봤다. 2011년 3월 공동체가 문을 열 때, 이정우 선생의 세계 철학사 강의를 신청했다.”

반면 최 씨의 공부 이력은 훨씬 깊다. 직장인 시절 외국 출장이 많았던 그는 출장지 도착 첫날엔 어김없이 그곳 대학 도서관을 찾았다. 클래식 음악과 미술을 좋아해 음악가 화가의 흔적을 따라가보기도 했던 그는 2001년 퇴직과 함께 본격적인 자기 공부를 시작했다.

◇중년의 공부는 프리스타일 = 이들의 공부가 학생의 공부와 다른 것은 자기가 선택한 것을 자기만의 속도로 해나가는 ‘프리스타일’이라는 점이다. 김 원장은 처음 몇 년은 일주일에 4일을 진료가 끝나면 서울 서교동 대안연구공동체로 와 동서양 철학을 두루 공부했다. 지금은 주 1회 안티 오이디푸스 강의를 듣고 있다. “나의 좌표, 삶의 매뉴얼을 찾기 위해 앞서 공부한 사람들에게서 배워야 했는데 그게 철학이었다”고 말했다. 7년째 평일 하루 저녁과 주말까지 주 3일 강의를 들으며 공부 중인 강 팀장은 수유너머에서 시작해 수유너머가 분할된 뒤엔 철학자 고병권의 수유R, 고전연구가 고미숙의 감이당으로 옮아가며 동서양 철학을 공부했다. 지금은 감이당에서 스피노자, 동양의학과 동물학을 공부하고 있다. 이들보다 최 씨의 공부는 훨씬 더 ‘프리’하다. 그는 관심 분야를 정하면 우선 관련 언어를 배우고 원서와 원자료를 읽고, 필요한 강의를 듣는다. 몇 년 전에는 르네상스를 알고 싶어 이탈리아어를 배워 책을 읽었고, 2012년 2개월간 혼자 피렌체 기행을 했다. 그가 모은 관련 자료와 기록은 놀랄 정도로 방대하고 정교했다. 최근의 관심은 프랑스, 특히 화가 세잔과 르누아르. 이를 위해 프랑스어를 배워 2년간 카뮈 작품을 원서로 읽었다. 그는 이렇게 영어, 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터키어 등 6개 언어를 한다.

◇중년은 공부할 나이 = “사적인 모임에 가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들 신문 방송을 보고 누가 잘못했다고 핏대를 올리지만 정작 자기 이야기는 없다.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기 위해 공부해야 한다”고 최 씨는 말했다. 김 원장도 “물건을 살 땐 여러 가지 살피면서 정작 자기 삶에 대해서는 꼼꼼하게 조사하지 않고 흐름에 맡기며 산다 ”며 “중년일수록 공부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 팀장 역시 “중년은 스스로 전진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쥐고 있는 한 줌을 지키려 애쓴다. 공부는 이런 통념을 깨고 자신을 바꾸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40대, 50대가 사회 중추 세력이고 이들의 사고방식이 시대의 사고방식이라는 점에서 중년의 공부는 더 중요하다. 이들이 통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사회는 불행해진다”는 강 팀장의 말은 인상적이다. “자신에게서 출발하는 공부를 하라. 망설이지 말고 같이 공부할 사람을 찾아라. 그리고 돌아오지 마라.” 중장년에게 주는 이들의 충고이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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