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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민 스님의 여운이 있는 만남] 행복해지려면 순환시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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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5-08-15 06:45 조회4,45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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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민 스님(왼쪽)과 고미숙씨가 지난달 27일 본사 옥상에서 대화를 나눴다. 두 사람은 버려야만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는데 얻는 것은 못 보고 버린다는 것에만 못 견뎌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고미숙 선생님의 인문학 공부는 우리 삶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공부와 개인의 삶이 분리된 뜬구름 잡는 학문이 아닌, 동의보감을 통해 몸의 건강과 삶의 이치를 연구하고, 서양철학과 근대사를 비춰 현대인의 물질적·성적 욕망까지도 공부의 한 범주로 넣는다. 그래서인지 그의 강연은 명쾌하면서 깊이가 있고, 재미있으면서 실용적이다. 동양과 서양, 고대와 현대, 문학과 철학을 넘나드는 고미숙 선생님의 공부 내공에 매료가 되었던 차에 운 좋게도 인연이 닿았다.

혜민: 선생님,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먼저 우리나라가 과거에 비해 많이 풍요로워졌음에도 사람들은 별로 행복해 보이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이 더 늘어나고 자살률도 높아요. 더 잘살게 되었는데도 왜 우리는 행복과는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지는 걸까요?

 고미숙: 자본주의 사회에 살다 보니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행복의 정의를 돈의 끝없는 증식과 소유 쪽으로만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행복하다는 것을 주로 돈을 많이 쌓아놓고 사는 것으로 여기게 되었죠. 요즘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행복하려면 10억에서 30억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말해요. 그런데 문제는 30억이 실제로 생기면 그 돈으로 뭐 할 건데요? 라고 물어봐도 별생각이 없다는 거예요. 그러다 “먹고살려면 그 정돈 있어야 해요”라고 하죠. 그러면 제가 “당신은 지금 사는 아파트도 있고 자가용도 있잖아요?”라고 하면 “그냥 돈이 많으면 맘이 편할 것 같아요”라고 해요. “그럼 지금 그냥 맘 편하게 지내면 되잖아요?”라고 하면 답이 없어요. 즉 지금 시대는 돈을 가지고 어디에 쓰려고 돈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추상적인 부, 숫자 자체에 대한 갈망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 숫자의 기준이 비현실적으로 너무 높기 때문에 삶은 당연히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어요.

 혜민: 선생님의 책을 보니 쌓아놓기만 하고 잘 순환할 줄 모르면 그것이 바로 ‘암 덩어리’라고 표현하셨어요. 돈을 어떻게 잘 순환시킬 것인가에 대한 방향성을 세우지 않고 그냥 모으고 쌓기에만 집착하면 나중에 그 돈이 오히려 인생을 크게 고달프게 할 것이라는 말씀에 공감했습니다.

 고미숙: 암세포는 자기는 안 죽으면서 주위를 망가뜨리잖아요. 일반적인 세포들은 서로 끊임없이 주고받으며 자연스럽게 변화하는데 암세포들은 순환할 줄 몰라요. 자본의 심리 역시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보통 투자한다고 하면 돈이 계속 커지는 것만 생각하지 어떻게 순환시킬 것인가는 고민하지 않잖아요. 일생을 다 바쳐 악착같이 모은 재산을 평소에 순환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자식들에게 다 물려주는 것만 생각해요. 그런데 그것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식들에게 마음대로 쓰라고 물려준다기보다는 잘 불려서 또 다음 세대로 넘기라고 주는 거예요. 나눌 생각은 없고 증식밖에 모르는 자본의 생리를 나도 모르게 따라가는 거죠. 게다가 이제는 가족의 범위도 부모 자식, 일촌의 관계만 남고 나머지 친척들은 명절 때나 마주치는 낯선 이방인이 돼 버렸어요. 그러니 점점 외롭고 불안할 수밖에 없어요.

  혜민: 결국 부모자식 간의 관계로만 모든 것을 종속시키려는 생각에서 벗어나 우정과 의리를 나눌 수 있는 다양한 관계의 망들이 만들어져야 행복해진다는 말씀이시군요.

 고미숙: 생명은 많은 것과 연결되기를 원하기 때문에 엄마·아빠·아이, 이 삼각 구조 안에선 답답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여기서 못 벗어나는 것은 물질적으로 너무 많은 것을 주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아이가 독립할 생각을 못하고, 그 안에서 답답해하는 거죠. 아이는 부모의 무리한 기대 때문에 자기 삶을 못 살았다고 상처고, 아버지는 집안에서 왕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왕따였고, 엄마는 가족 뒷바라지로 생을 송두리째 빼앗겼는데 남는 것은 우울증뿐인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관계망을 확장시켜 가족의 범위를 사촌·오촌까지도 소중히 여기고 나아가 친구들 간의 다양한 관계의 네트워크 안에서 순환이 잘될 때 우리는 비로소 건강해집니다.

 혜민: 우리 인간에게는 몰랐던 것을 알았을 때 지성이 일깨워지면서 느낄 수 있는 배움의 기쁨이 있는데, 지금 학생들은 그런 기쁨을 잘 모르고 그저 좋은 직장, 높은 연봉을 얻기 위한 도구로서만 공부를 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고미숙: 공부해서 돈도 벌고, 사회적인 지위도 얻고자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그것과 더불어 ‘내가 왜 사는가?’ ‘나는 누구인가?’ 하는 것에 대한 질문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궁금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지금은 직업·연봉 이런 쪽으로 쏠려 버렸어요. 이렇게 되면 공부는 너무나 큰 스트레스가 됩니다. 특히 밤낮이 바뀌어서 낮에는 학교에서 자고 밤이 되면 학원이나 EBS, 과외를 통해 공부하면 몸이 아주 힘들어요. 공부가 이런 큰 스트레스를 주면 사람들은 그 대가로 그에 걸맞은 쾌락을 필요로 해요. 그러니 쇼핑이나 게임, 야동에 중독되거나 성인이 되면 과다한 술자리와 룸살롱을 찾는 것입니다. 즉 억지로 했다가 과격한 쾌락으로 보상을 받는 습관이 몸 안에 형성되는 것이지요.

 혜민: 그러면 결국 공부 때문에 생긴 ‘억압’과 그 억압을 풀기 위한 ‘쾌락’ 사이만을 왔다 갔다 한다는 말이네요.

 고미숙: 그것이 몸에 생리적 회로로 자리 잡으면 성공한 사람은 쾌락을 쫓는 것이고,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억압만 있었고 쾌락은 누리지 못하니까 억울함과 분노에 사로잡히게 되죠. 이해할 수 없는 범죄와 자살도 이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공부를 통해 지성의 힘이 일깨워져 내가 왜 사는지 알게 되면 쾌락에 쉽게 물들지 않는데, 왜 사는지 모르니까 생명의 끈도 쉽게 놓는 것이지요. 내 삶에 대한 최소한의 호기심과 ‘어떻게 살아야 하지?’ 하는 질문이 있으면 우리가 우주와 연결된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혜민: 아이들이 공부를 하지 않아 속상하다는 부모님이 많아요. 그분들께는 어떤 조언을 드리고 싶으세요?

 고미숙: 명리학에서 보면 공부를 하게 하는 인성의 기운은 엄마와 연결이 되어 있어요. 그래서 엄마가 공부를 하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아이도 공부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식은 부모에 대해 자긍심을 바라지, 결코 부모의 과잉 관심을 바라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 부모님은 책을 좋아하셨어, 우리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셨어’ 이런 자긍심을 자식들은 원해요. 하지만 부모는 자식이 원하는 것은 주지 않고 아이들에게 공부만 하라고 하죠. 부모가 먼저 공부하고 나아가 아이들이 존경할 만한 행동을 하게 되면 아이도 공부하게 되어 있습니다.

 혜민: 젊은 사람들은 사랑과 연애에 대해 또 고민이 많아요. 점점 결혼의 연령이 높아지고 더불어 출산율은 낮아지고 있어요.

 고미숙: 에로스는 생명의 자연스러운 토대이기 때문에 여성이 10대에 초경을 해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몸이 되면 아이를 낳고자 하는 욕망이 이성에 대한 사랑의 열정으로 가는 것이에요. 반대로 폐경이 되면 그 의무감에서 벗어나게 되는, 이런 주기를 타고나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자본주의는 에로스가 가지고 있는 자연적 주기를 완전히 무시하고 깨버렸어요. 아이를 낳을 수 있고 낳고 싶은 시간에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학교에 가서 공부하라는 거예요. 지금은 공부하는 시간도 점점 길어져 대학원까지 가는 상황이에요. 30대나 되어서 아이를 가지게 되니 당연히 유산도 많고 아이 낳기도 어려워지는 거죠.

 혜민: 요즘은 삼포세대라고 해서 연애 자체를 포기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졌다고 해요. 전 그래서 결혼에 대해 물어오는 분들께 결혼을 다 갖추고 하려 하지 말고 일찍 할 수 있으면 조금 어렵더라도 살면서 갖춰 가라고 조언을 해요.

 고미숙: 사람들은 사랑을 할 때 모든 것을 연애 상대의 문제로 환원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한마디로 연애 상대만 잘 고르면 만사형통이라 여기는 거지요. 연애에 실패한 건 상대를 잘못 골랐기 때문이고, 아직까지 연애를 제대로 못해본 것은 ‘이상형’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식이에요. 모든 것이 갖춰져 있는 판에 나는 몸만 쏙 들어가면 된다는 생각이죠. 그러다 실패하면 다시 몸만 쏙 빠져나와 텔레비전 연속극처럼 복수극을 펼치려고 하고요. 이렇게 지독한 이기주의가 또 있을까요? 상식적인 말이지만 사랑 따로 상대 따로 나 따로가 아니라, 나와 사랑과 상대가 하나로 어우러질 때 사랑이라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자기가 얻을 생각만 하면서 연애를 하려고 하면 사랑이 당연히 이루어지지 않지요.

 혜민: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가도 틈만 나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습관이 생기게 되었어요. 이미 내 앞에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연결을 스마트폰을 통해 끊임없이 갈구하는 것 같아요.

 고미숙: 사람은 기본적으로 연결이 안 되면 못 살아요. 무인도에 가서 살라고 하면 다 죽을 거예요. 그런데 스마트폰 관계에 의지하는 것은 연결은 되고 싶지만 상처는 받기 싫기 때문 같아요. 얼굴을 마주하는 만남 후에는 내가 그 사람을 몰랐을 때와는 조금은 다른 존재가 되어요. 연애가 그런 거잖아요. 연애를 심하게 한 뒤에는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거죠.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어요. 그런데 이런 변화에서 오는 수고스러움과 불편함은 싫으니까 SNS 뒤로 숨는 것이지요. 하지만 인간은 생성·소멸하는 존재예요. 내 것을 잃기 싫어하고 얻기만을 원하는 것은 결국 자본의 논리입니다. 이런 생활은 우리 몸에 아주 좋지 않습니다. 심장이 극도로 위축돼요. 자기 몸을 알면 절대로 그렇게 살지 않아요.

 혜민: 관계 속에서 변화하는 건 내가 가진 어떤 걸 버리고 또 다른 걸 얻는 건데, 우리는 아무것도 잃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 몸이 하고자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면 무한히 증식만을 원하는 데서 오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고미숙: 버리기 때문에 얻는 건데 우리는 얻는 것은 안 보이고 버린다는 사실만 못 견뎌 합니다. 그러니 얻는 것도 없고 공허해지는 거예요. 나의 어느 영역은 절대 건드리지 말라고 하면 그곳에 계속 상처가 고여요. 상처받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데 그 노력이 오히려 상처가 되는 거예요. 사람들과 부딪치고 무너지고 변형되고 나아가고 그렇게 인생을 배워야 어른이 되는데, 자기가 좋은 것만 하다가 상처만 커지는 거지요. 마치 자본이 끊임없이 증식되기만을 원하는 것처럼 사람들과 연결되고는 싶지만 불편해지기는 싫고, 내가 누리는 것만 누리고 싶고 줄어드는 건 싫고. 이 몸을 갖고 있는 한 그런 고립과 단절 속에서는 삶의 충만감을 느끼기 어려울 거예요.

고미숙은 …

고미숙씨는 인문학자·고전평론가·저술가다. 고려대 대학원에서 국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40대 이후 지식인 공동체 활동을 해왔고, 현재는 공부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남산강학원&감이당’에서 공부와 밥과 우정을 동시에 해결하고 있다. 저서로 『열하일기 3종세트』 『달인 3종세트』 『동의보감 3종세트』 등이 있다.

[인터뷰 후기] 행복의 비결

물질적으로 예전보다 풍요로워졌지만 현대인들의 마음은 반대로 더 소외감을 느끼고 충만감 없이 허하다고들 한다. 못살았을 때는 잘 몰랐던 우울증도 만연해지고 사람들의 마음은 원인 모를 불만으로 가득하다. 왜 이런 지경이 됐을까? 아마도 고미숙 선생님 말씀처럼 우리는 순환할 수 있는 길은 만들지 않고 무조건 돈의 증식과 소유만을 욕망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가족도 부모-자식 일촌 관계 안으로 좁혀놓고, 지성을 닦기보다는 억압과 쾌락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몸을 무시하고 우정을 놓친 것은 아닐까? 통장에 찍힌 숫자를 보면서 혼자 즐거워하는 것보다 그 돈으로 오랫동안 못 봤던 친구들에게 한 끼 따뜻한 밥을 대접하는 것이 좀 더 행복해지는 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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