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오디세이아(1)-‘여신의 동굴’에서 ‘카오스의 바다’로 [출처: 중앙일보] [로드 클래식] 오디세이아(1)-‘여신의 동굴’에서 ‘카오스의 바다’로 >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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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6-04-29 09:48 조회5,35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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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vs 트로이의 10년 전쟁이 끝났다. 결과는 아테네의 완승! 이제 약탈당했던 ‘헬레네’를 되찾고 막대한 전리품을 챙긴 다음 금의환향하면 된다. 해피엔딩인 줄 알았는데 웬걸! 귀향이 전쟁보다 더 끔찍하고 다이내믹하다. 그래서 탄생한 서사시가 『오디세이아』다. 오디세우스의 귀향이라는 뜻으로, 단연 ‘로드 클래식’의 원조에 해당한다.

아테네군의 불화가 그 단초였다. 한 팀은 당장 떠나자 했고, 다른 팀은 먼저 신에게 제물을 바치자고 했다. 견해의 차이는 순식간에 적대감으로 번졌다. 트로이라는 적이 사라지자 내적 분열이 일어난 것이다. 그렇게 어수선한 상태로 귀향길에 올랐으나 신들은 이들에게 갖가지 고난을 선사한다. 어떤 이는 암초에 부딪혀 수장되고, 또 어떤 이는 파도에 휩쓸려 아주 먼 곳으로 밀려간다. 가장 비극적인 케이스는 수장인 아가멤논이다. 그가 트로이에서 전쟁의 노고를 견디는 동안 고향에선 한 남성이 그의 아내를 끈질기게 유혹하고 있었다. 처음엔 거절했지만 결국 그녀 역시 무너졌다. 산전수전 끝에 아가멤논이 고향 땅을 밟게 되자 아내와 내연남은 대대적인 환영파티를 개최한다. 파티가 절정에 오르는 순간 아가멤논과 그의 전우들은 자객들의 손에 참혹하게 살해당한다. 이후 내연남은 스스로 아가멤논의 나라를 통치했지만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8년째 되는 해에 아가멤논의 (숨겨놓은) 아들이 등장하면서 그 또한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그럼 신들은 왜 이토록 가혹한 대가를 치르게 하는 걸까?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얻은 게 있으면 잃는 것이 있는 법. 트로이 전쟁은 약탈과 에로스적 충동으로 시작되었다. 선악 시비가 불가능하다. 그러니 이긴 자가 더 우월할 것도, 패배한 자가 더 열등할 것도 없다. 다만 시절의 운이 아테네로 기울었을 뿐이다. 승리에는 엄청난 살육이 동반된다. 그렇다면 승자들 역시 어떤 식으로든 피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만약 승자들이 귀향의 영광마저 누린다면 그건 실로 불공평하지 않은가. 고로 인생에 해피엔딩이란 없다! 하나의 문턱을 넘으면 또 다른 문턱이 기다리고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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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또 하나, 고향에서도 이 영웅들의 귀향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가멤논의 비극이 보여주듯 전사들이 전장터를 누비는 동안 고향에선 그들의 빈자리를 둘러싼 욕망의 향연이 펼쳐진다. 이것이 인생이다! 시작도 종결도 없고, 승자도 패배도 없는 카오스의 바다!

오디세우스의 여정 또한 그러했다. 그는 ‘트로이의 목마’로 아테네의 승리를 이끌어낸 장본인이다. 그래서인가. 귀향길에 오르자마자 ‘제우스의 번쩍이는 번개가 그의 배를 쪼개버리는 바람에’ 전우들을 잃고 바다 위를 표류하게 된다. 다행히 죽을 운은 아니어서 여신 칼립소에 의해 구출된다. 그녀의 동굴은 환상적인 낙원이었다. “화로에는 불이 활활 타고 있고 잘게 쪼갠 삼나무와/ 향나무 장작이 타는 향기로운 냄새가 섬 전체에 진동했다./ 그녀는 안에서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고/ 베틀 앞을 오락가락하며 황금 북으로 베를 짜고 있었다.” “속이 빈 동굴 둘레에는 포도나무 덩굴이 무성하게 뻗어 있고” “맑은 물의 샘 네 개가 나란히 흐르고 있었으며, 제비꽃과 셀러리가 만발한/ 부드러운 풀밭으로 둘러싸여 있어”(천병희 옮김, 『오뒷세이아』) 불사신이라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뿐인가. 그녀의 얼굴과 몸매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으며, 그녀는 오디세우스에게 영원히 늙지도 죽지도 않는 불사를 약속했다. 부(富)와 미(美)와 수(壽), 인간이 누리고 싶은 모든 욕망이 충족되는 신들의 거처! 누구나 도달하고 싶은 복락의 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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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황금의 땅에서 오디세우스는 눈물과 신음의 나날을 보낸다. 귀향에 대한 열망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여신 칼립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쉽게 말해 권태에 빠진 것이다. 그렇다! 낙원은 권태롭다. 괴로움도 없지만 성취감도 없다. 오디세우스는 그 안락한 무력감에서 탈출하고 싶은 것이다. 동굴에서 바다로! 동굴에는 복과 낙이 넘치지만 바다에는 파도와 고난뿐이다. 게다가 그가 돌아가고자 하는 고향도 난장판이다. 아내인 페넬로페의 구혼자들이 떼거리로 몰려들어 날마다 자신의 재물을 약탈하고 있고 ‘온화한 아버지’처럼 그렇게 통치했건만 그의 백성 중에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들 텔레마코스는 자신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길 위를 떠돌고 있다. 그럼에도 오디세우스는 귀향길에 오르고자 한다. 왜? 그것이 인생이니까. 인생이란 유토피아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유토피아로부터 탈주하는 것이고, 해피엔딩이 아닌 네버엔딩의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것이므로. 그 바다 위에서 숱한 괴물을 만나고 생고생을 겪게 되리라. 허나, 누군가 말했듯이 길 위에서 ‘사건을 기다리는 일’보다 더 매혹적인 것은 없으므로.

고미숙 고전평론가

[출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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