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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오디세이아(2)-나그네는 신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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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6-06-03 15:13 조회5,93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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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서로에게 나그네이자 길손이 되는 세상이다
연 10억 명이 이동하는 시대에 나그네들을 환대해야

 

  지난 5월 약 2주간 감이당 동료들과 뉴욕에 머물렀다. ‘공부와 우정’을 모토로 한 새로운 네트워크를 실험하기 위해서였다. 걱정 반 설렘 반으로 잔뜩 긴장하고 갔는데, 정작 우리가 부닥친 장벽은 날씨였다. 초여름인데도 8도 안팎을 오가는 한기가 엄습한 탓이다. 거리에는 털조끼를 걸치거나 심지어 가죽 파카를 입은 이들까지 있었다. 한데 그 와중에도 버스 안에선 에어컨이 돌아갔다. 떨다 못해 에어컨을 좀 줄여달라고 하자, ‘버스회사 방침’이라는 괴상망측한 답이 돌아왔다. 헐~ 이게 ‘뉴욕스타일’인가? 어이없게도 인터넷을 보니 그 시간 한국은 때 이른 폭염에 시달리고 있었다. 맙소사! 넘치거나 모자라거나!

오디세우스의 여정도 그러했으리라. 제우스는 애당초 그에게 “참혹한 귀향”을 선사하기로 작정했다. 반면 그의 딸이자 전쟁의 신인 아테네는 오디세우스를 물심양면으로 돕는다. 비참한 시련을 주는가 하면 한량없는 은혜를 베풀고, 자비와 무자비 사이를 정신없이 오간다. 더 황당한 건 도무지 기준이 없다는 것. 즉 신들은 선하건 악하건 “모든 인간에게 마음 내키시는 대로” 행운과 불행을 선사한다. 인간의 리액션 또한 만만치 않다. 입으로는 늘상 신을 떠받들면서도 여차하면 오만과 탐욕을 드러내기 바쁘다. 신과 인간 사이의 끊임없는 밀당! 이것이 이 서사시의 기본 콘셉트다. 그런 점에서 오디세우스가 겪는 시련들(퀴클롭스의 폭력, 키르케의 마법, 세이렌 자매의 유혹, 하데스의 지옥 등)은 일종의 ‘자업자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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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물론 그럼에도 그는 귀향의 여정을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마침내 돌아온다. 이 ‘미션 임파서블’을 가능케 한 것은 다름 아닌 “환대의 윤리”다. 여신 칼립소의 낙원을 벗어나 사방을 표류하다 그가 도달한 곳은 파이아케스족의 나라. 일본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그 ‘나우시카’가 바로 이 나라의 공주다. 그녀는 오디세우스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욕을 시켜주고 올리브유를 발라준다. 그녀의 아버지이자 이 나라의 왕인 알키노스는 열렬한 환영파티를 열어준 다음 귀향에 필요한 모든 것을 마련해준다.- “이 나그네가 비록 머나먼 곳에서 왔다 하더라도/우리의 호송으로 아무런 노고도 고통도 없이/즐겁게 빨리 고향 땅에 닿을 수 있도록 말이오.” 그에 부응하여 신하들은 옷과 청동·황금 등 최상의 보물들을 ‘바리바리’ 싸준다. 트로이전쟁의 승리로 챙긴 전리품보다 더 많은 양이란다. 오, 이 지극한 환대라니! 주인공에 대한 편애가 심한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놀랍게도 이런 환대는 모든 나그네에게 적용되는 윤리다. 왜? “나그네와 걸인들은/제우스께서 보내신 것이니까.” 요컨대 ‘나그네는 신의 선물’이라는 것. 그러니 신을 영접하듯 온갖 정성을 다해야 마땅하다. 

그러고 보니 ‘환대의 윤리’는 이 서사시 전체를 관통하는 기저음이었다. 여신 칼립소와 요정 키르케가 오디세우스에게 베푼 ‘대책 없는’ 사랑도 그렇거니와 그의 아들 텔레마코스가 바다를 떠돌 때 가는 곳마다 극진한 대접을 받은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반대의 사례도 있다. 거인족 퀴클롭스의 나라에 갔을 때 오디세우스는 당당하게 주장한다. ‘우리는 제우스와 동행하는 손님들’이라고. 그러니 잘 대접해야 한다는 뜻이다. 거인족은 그의 제안에 코웃음을 친다. 자신들이 ‘제우스보다 더 강력하기’ 때문이라나. 요컨대 신을 섬기지 않는 이들에게 나그네란 그저 ‘먹잇감’에 불과하다. 한편 고향 이타케에서 페넬로페의 구혼자들이 저지르는 가장 큰 죄악도 나그네로 돌아온 오디세우스를 경멸하고 모독했다는 점이다. 그렇다! 나그네를 섬기지 않는다면 그건 둘 중 하나다. 야만인이거나 악인이거나. 그래서 또 헷갈린다. ‘신의 책략’으로 이국땅을 떠돌며 갖은 고생을 다 했는데, 그 신으로 인해 낯선 곳에서도 지극한 환대를 받으니 말이다. 하긴 이거야말로 신과 인간 사이의 고도의 밀당이 아닐지. ‘시련과 행운은 늘 함께 온다’는 믿음의 발로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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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론적 차원에서도 의미심장하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삶은 기본적으로 전쟁과 약탈에 근거한다. 이 과격하고도 폭력적인 리듬을 제어하기 위해선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희생제의, 다른 하나는 나그네를 환대하는 증여의 경제학.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약탈과 증식의 ‘미친 소용돌이’에 휩싸여 결국 문명 전체를 파괴하고 말테니까.

바야흐로 연 10억 명 이상이 이동하는 시대다. 모두가 서로에게 나그네이자 길손이 된 셈이다.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소유와 증식’이라는 자본의 블랙홀에서 탈주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아닐까. “나그네는 신의 선물”이라는 ‘오래된 지혜’에 시선이 꽂힌 이유다. 덧붙이면, 이번 여행으로 뉴욕에 작지만 소박한 ‘공부모임’이 만들어졌다. 길 위에서 ‘환대의 윤리’를 생생하게 확인한 셈이다. 그 감동과 경이는 “오뉴월 한파”로 인한 ‘생고생’을 한 방에 날려버렸다.

고미숙 고전평론가


[출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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