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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8세기 조선의 르네상스 연 '백수 지성 4인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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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6-01-31 11:59 조회3,53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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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18세기 조선의 르네상스 연 백수 지성 4인방



18세기 조선의 백수 지성 탐사.jpg


18세기 조선의 백수 지성 탐사

길진숙 지음 |북드라망 | 336| 17000

 


옛날에는 벼슬을 하지 않은 선비를 포의(布衣), 은사(隱士), 처사(處士) 같은 고상한 말로 일컬었다. 베옷을 입었다거나, 숨어 있는 선비라거나, 초야에 묻혀 있다는 등의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한데 이 말에는 혼탁한 현실과 대결하는, 다시 말해 고결한 정신주의라는 속뜻이 숨어 있다. 따라서 요즘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백수와는 엄밀한 의미에서 같지 않다.


그렇지만 이 책은 조선시대에도 진짜 백수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모두 네 명을 거론한다. 농암 김창협, 성호 이익, 혜환 이용휴, 담헌 홍대용이다.

 

일단 네 사람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렇다. 김창협은 서인의 영수 김수항의 아들이며 송시열의 제자다. 기사환국으로 아버지와 스승이 모두 사사된 이후, 그는 관직에 일절 나아가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과거 공부가 얼마나 쓸데없는 짓인가를 강론하고 실천했다.

 

이익도 역시 당쟁의 여파로 형 이잠을 잃었다. 이후 그도 백수의 길을 걸었는데, 독서만 하는 선비의 생활을 스스로 부끄럽게 여겼다. 그래서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농민의 고충을 체감했고 민생을 위한 개혁안을 끊임없이 제시했다. 정치력을 행사할 공적 기회는 없었지만 민생에 관한 것이라면 천문, 지리, 역사, 경제, 행정, 역법 등을 죄다 기록해 <성호사설>을 남겼다.

 

성호의 조카이자 제자였던 이용휴도 숙부와 마찬가지로 벼슬길에 대한 생각을 일찌감치 접고 글쓰기에 매진했다. 그의 글쓰기는 누구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도 아니요, 오직 나만의 충만한 생명 의지를 따르는 것이었다고 이 책은 설명한다. 그래서 붓 한 자루를 쥐고 신선처럼 살았던이용휴는 당대의 누구도 흉내내지 못하는 독특한 문장의 세계를 구축했다는 것이다.

 

또 노론 명문가의 후예였던 홍대용은 일찌감치 과거에 대한 뜻을 접은 채 자신이 진짜로 흥미를 느끼던 천문학, 수학, 음악 등에 몰두했다. 그래서 당대의 지식인들과는 완전히 다른 분야에서 이름을 남겼으니, 이 책은 홍대용에 대해 “18세기 조선에서 자연철학자로 명명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존재라고 설명한다.

 

책의 저자는 이들 네 명을 백수 지성 4인방이라고 지칭한다. 농암은 중년 백수, 담헌은 청년 백수, 성호와 혜환은 평생 백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노는 남자들이 있었기에 18세기 조선 지성사의 르네상스가 가능했다는 것이 저자의 관점이다.

 

그들은 각각 후세에 독창성을 강조한 문장비평가로, 경세치용과 이용후생의 실학자로, 소품문(일상어, 속된 어휘 등을 구사하는 자유로운 문체)의 선구자로, 또 우주를 사유한 천체과학자로 이름을 남겼다. 그 지성사적 업적이 가능했던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백수의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라는 것이 책의 해석이다. “그들은 백수의 시간을 불행하게 보내지 않았고 킬링 타임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백수의 시간을 알차게 향유했다는 것이다.

 

그 네 명의 삶과 글쓰기를 반추하고 있는 책이다. 비주류에 서기를 자처했던 네 사람의 삶은 옴니버스 드라마처럼 흥미진진하다. 그들이 남긴 명문장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읽어나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하지만 백수는 오히려 축복이라는 저자의 관점에는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다. 그들은 200여년 전의 양반이었다. 게다가 작금의 사회·경제적 토대는 무엇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지 않기 때문이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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