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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명절에 읽을 만한 책] ‘내 질문의 크기가 내 존재의 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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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6-02-05 19:51 조회4,5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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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특집 <명절에 읽을 만한 책> 내 질문의 크기가 내 존재의 크기다
 
 
 

생로병사·희로애락 넘으려는
유한한 인간이 택한 생존전략
21세기엔 동양고전이 더 적합

공자‘주유천하’부처‘탁발’…
길에서 삶의 지혜 찾았듯이
스마트폰 시대의 소통 수단


고전(古典)은 ‘시대를 뛰어넘어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모범이 되는 작품’을 일컫는다. 책이 수백, 수천 년의 세월을 버텨낸 데는 이유가 있을 터다. 인문학 열풍과 함께 다시 고전을 꺼내 든 사람들이 늘고 있다. 공자와 노자, 우리 선조로는 정약용과 박지원이 자주 호명된다. 우리는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가. 우리 시대에 고전이 지닌 의미는 무엇일까. 丙申년, 책 읽는 한 해를 기원하며 고전평론가 고미숙(56) 씨를 지난 1월 27일 만나 관련 얘기를 들어 봤다.

고 씨는 고전을 “인생과 자연의 지혜가 담긴 책”이라며 “생로병사와 희로애락, 자연의 물리적 법칙 안에 사는 인간이 그 유한성을 넘어서기 위해 마련한 생존전략”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전을 읽지 않아도 삶은 살아지지만 그렇게 되면 타인과의 소통, 죽음을 대하는 태도, 관계의 불편함을 풀어갈 노하우가 없어 시야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며 “나를 밖에서 보는 통찰이 있어야 제대로 사는 것”이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고전은 수십억의 인간과 접속하는 사회적·심리적·정신적인 소통의 장이다. 과학과 이성으로 돌파되지 않는 감정을 다스리는 기제이기도 하다. 가장 좋아하는 고전 구절로 연암 박지원의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책을 읽는다면 천하가 태평할 것이다’와 담헌 홍대용의 ‘내 질문의 크기가 내 존재의 크기다’를 꼽은 그는 “책과 질문으로 대표되는 지혜에 대한 열정이 약해지면 세상은 평화로울 수 없다”고 했다.

현재 한국 사회는 정치, 경제를 불문하고 양극화와 갈등, 대립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경험이 많은 노인 세대도 삶의 지혜를 알려 주지 못하고, 오히려 양 극단에서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다. 고 씨는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노인상”이라며 “생산력이 좋은 청년 에너지에 초점을 맞추면서 노인은 사회적 약자가 돼 버렸다”고 말했다. “자본주의 이전까지만 해도 모든 지혜가 노인에게서 나온다는 전통이 있었어요. 노인이 되면 가족, 혈연, 욕망 따위에서 자유로워서 보편적 인간이 된다고 봤죠. 하지만 이제 나이가 들면 그저 밀리는 존재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고집스러워지고, 경제력이라도 붙잡으려 돈에 대한 집착도 강해지는 거죠.”

고 씨는 “노인 세대의 모습은 현 청년들의 미래이기도 하다”며 “모든 것이 경제적 문제로 환원되고 있는 상황에서 더 무자비한 노인이 탄생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물질과 부가 풍요로워지면 우리가 인간답게 잘살 것이라는 신화가 깨진 만큼 생로병사를 가로지르는 정신적 가치를, 삶의 유한성을 넘어서는 탐구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고전 중에서도 서양보다 동양의 고전이 21세기에 더 유효하다고 말했다. 코란, 성경 등을 기반으로 한 서양 문명은 충돌과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다. 그는 “서양은 세계관과 신체가 분리가 안 되고 대결하는 패턴을 보여 왔다”며 “그에 비해 동양의 유교, 불교, 도교는 대립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공자는 사회적 인간의 윤리, 노자는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길, 석가는 인간이 자기라는 집착으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하는 문제를 각각 다룹니다. 동양의 모든 고전은 유교, 불교, 도교의 주석으로, 이들은 인생과 우주의 지혜를 서로 다른 측면에서 보며 맞물려 돌아갑니다.”

고 씨는 고전을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연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통신수단이 발달한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의 연결이고, 사람은 연결된 만큼이 자기 복이고 운”이라고 했다. 그는 “모든 기술을 연결한
스마트폰으로 인해 오히려 개인은 더 고립되고 있다”며 “스마트폰을 소비자가 아니라 삶을 창조하는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길 이야기를 꺼냈다. “고전을 남긴 인물들은 모두 길 위에 있었습니다. 공자는 주유천하, 석가는 탁발을 했죠. 길 위에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인생과 우주를 연결함으로써 고전이 나온 것입니다. 기술이 세계를 연결해 놓은 이유도 다르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고립을 경계해야 합니다.”
 
 
 
열하일기·장자·서유기… 나를 찾아가는 ‘구도의 길’
 
 
고미숙 추천 동양고전 3選

◇열하일기(熱河日記) = “조선 정조 때 연암 박지원이 청나라를 다녀온 뒤 쓴 여행기. 여행기의 진수이자 조선에서
 
 
나온 문장 중 최고의 문장이다. 또한 중국과 조선, 동양과 서양의 문명적 마주침을 ‘리얼’하게 경험할 수 있다. 문명 얘기를 하면 기술적인 부분만 드러나고, 인생 얘기를 하면 문명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이 보통인데, 열하일기는 청나라문명, 동양문명에 대한 비전(vision)이 나오면서도 인생의 지혜가 녹아 있다. 본래 여행이란 건 길 위에서 새로운 길을 찾는 것이다. 낯선 곳에 가서 문명에 대해 사유하고, 인생을 통찰하는 것이 여행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다. 열하일기는 여행이란 바로 이런 것이란 사실을 알려 준다.”

◇장자(莊子) = “장자를 은둔과 도피의 철학이라고 많이 오해하지만, 실제로는 삶의 한복판에서 자기 운명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끌어갈 수 있는 기예(技藝)를 담고 있다. 장자는 신체적 기형인 자도 자기 본성을 완전히 구현해 결핍을 못 느끼는 존재가 되는 길을 제시한다. 인간의 본성, 잠재력이 이런 식의 해방을 가능케 하는구나 감동을 얻을 수 있다. 장자 이후 인간은 이런 윤리를 제시하지 못했고, 돈 같은 외부적인 것으로 채우려 하고 있다. 청춘들은 이 책에서 외물에 의존하지 않고 나 자체만으로도 충만하다는 것을 깨닫고, 삶의 능동성에 대해 배우게 될 것이다. 또 장자는 디지털 시대에 가장 잘 어울리는 책이기도 하다. 디지털은 파동이고, 카오스다. 이는 장자가 보는 세계관과 같다. 파동의 시대에 운명과 더불어 리듬을 탈 수 있는 책이다.”

◇서유기(西遊記) = “중국 4대 기서 중 삼국지를 가장 많이 읽지만, 서유기가 훨씬 재미있다. 삼국지가 국가를 세우는 문제를 다뤘다면, 서유기는 인간의 근원적인 해방에 대한 것이다. 너무도 통속적인 캐릭터인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은 분노, 탐욕, 어리석음 등 인간의 탐진치(貪瞋癡)를 대변한다. 이 세 주인공이 삼장법사를 따라서 10만8000리를 가면서 탐진치로부터 해방된다. 구원의 길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표현한 책은 서유기밖에 없다. 또한 서유기는 모든 인간이 원초적으로 구도자라는 사실을 말해 준다. 현대사회로 올수록 인간은 마음, 탐진치 때문에 아프다. 치유의 길은 적당히 ‘힐링’해선 안 되고, 스스로 구도자가 돼야 한다. 세상은 점차 기술적이면서도 영성인 세계가 될 것이다. 모든 인간이 자기를 구도하는 길로 나서는 게 바로 영성이 아니겠는가.”
 

유민환 기자 yoogiza@munhwa.com
 
 
출처: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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