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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궁금하다!] 내 눈이 보았던 것은 동시적인 것이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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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2-01-26 16:13 조회8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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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눈이 보았던 것은 동시적인 것이었다 (2)      

이윤하(남산강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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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늘 움직이는 세계

근대인의 진보에 대한 열망은 아주 뿌리가 깊다. 몇 년째 연구실에서 공부하고 또 공부할 뿐인 나에게도 ‘진보’에 대한 욕망, ‘더 나아진 나’에 대한 욕망은 마음의 근저에 똬리를 틀고 앉아있다. 나는 내가 겨우 이 정도 생각을 하고, 이 정도 말을 하고, 이 정도 마음밖에 못 쓴다는 게 답답해 죽겠다! 이 답답함은 더 많은 것을 알고,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어지고, 더 많은 것에 마음을 쓸 수 있는 ‘내’가 되고 싶은, 정확히는 어떤 ‘결여’도 ‘결핍’도 없이 완전한 전체가 되고 싶은 추상적인 자아의 욕망으로 치닫는다. 그렇지만 ‘야생의 사고’에서 제일 먼 것이 바로 이러한 ‘추상적’이고 ‘개인적’인 욕망이 아닐까? 이 욕망은 야생의 사고가 갖는 ‘광대한 포부’와는 또 어떻게 다를까?

야생의 사고의 특성은 그 비시간성에 있다그것은 세계를 공시적이면서 통시적인 전체로 동시에 파악하려고 한다야생의 사고의 세계인식은 마주보는 벽면에 고정되어 엄밀하게 평행하지는 않으나 서로가 서로를 비추는(그리고 사이에 있는 공간에 놓인 물체도 비춘다몇 장의 거울 달린 방이 제공하는 인식과 흡사하다거기에서는 다수의 상이 동시에 형성되지만 그 상은 어느 하나와도 확실하게 같지는 않다그러므로 상 하나하나는 장식 아닌 가구의 부분적 인식에 지나지 않으나 그것이 모인 전체는 몇 개의 불변의 속성을 갖게 되며 진리를 표현한다야생의 사고는 세계도를 써서 자기의 지식을 깊게 한다이와 같은 사고가 정신적 구조물을 만들고 그것이 세계를 닮으면 닮을수록 세계에 대한 이해는 쉬워진다이러한 의미에서 야생의 사고를 유추적 사고라 정의할 수 있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야생의 사고한길사, p374)

야생의 사고에게 세상은 동시에 구성되는 기호들이다. ‘자연, 사회, 정신’…모든 현실의 면면들은 인과가 아니라 동시적으로 서로를 발생시킨다. 기호 하나하나는 세상의 부분이지만, 야생의 사고-인간은 쉬지 않고 실을 이어 현실의 여러 가지 면즉 자연사회정신을 모두 종합”(p379)하여 세계 ‘전체’를 기호화해간다.

세계 전체를 기호화 (2)기호 하나하나는 세상의 부분이지만, 야생의 사고-인간은 “쉬지 않고 실을 이어 현실의 여러 가지 면, 즉 자연, 사회, 정신을 모두 종합”(p379)하여 세계 ‘전체’를 기호화해간다.

야생의 사고-인간은 세상에 대한 앎을 자기-개인에게 축적되는 무엇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 ‘앎’은 세상을 집단적으로 구조화하는 앎이다. 세상은 달라지지만, 그 달라지는 동시의 평면을 구조에 삽입할 수 있도록, 구조는 데이터처럼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 ‘진행’되어야 한다. 그 구조를 만드는 것은 역시 지금 감각되는 기호들이다. 기호들은 실로 엮여 하나의 보물이 되고, 어떻게 꿰느냐에 따라 매번 다른 우주의 메시지가 되어 쏟아진다. 앞서 이 세계는 ‘질적 변화’가 불가능하다고 했는데, 정확히는 이 우주의 메시지들이 매번 다를 뿐, 중요성의 강도에는 차이가 없다는 말이다.

이 세계에서 ‘나’는 어떤 고유명사 하나로 표현되는 개별적인 존재가 아니라 ‘논리적 종합의 보고’다. 세상에 대한 종합적 인식, 이를테면 무지개와 뱀과 새들의 다양한 울음소리, 소음과 성단과 배고픈 아이들, 별과 여인과 농작물…등등을 연결하는 사고에 접속해 있는, 그럼으로써 사고의 부분을 이루는 존재다. 이 ‘사고’는 길 위에 돌 하나만 놓여있어도, 메뚜기 한 마리만 뛰어가도, 세계 전체의 움직임을 읽고자 한다. 세상은 온갖 기호의 격발이며 메시지로 가득한 곳! 세상 전체는 부분과 함께 움직이고, 부분은 전체와 함께 매번 다른 무엇으로 해석된다.

3. 매번의 우주에서 

변증법적 인간이 과거부터 현재를 그저 하나의 계열로 사고할 수밖에 없다면, 또 그렇기에 자기 자신을 과거의 산물로 고정시킬 수밖에 없다면 그 우주는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를,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를 만드는 원인이라는 출구 없는 세계. 우주를 ‘나’라는 하나의 계열로 흡수시켜버릴 때의 답답함. 아, 좀 더 시끄럽고 다채로운 우주 속에서 살고 싶다!

우주는 매번 비교 불가능한 차이를 만들며 생성된다(고 야생의 사고가 생각한다). 절대적 진보의 방향은 없으며, 축적되는 앎은 없다. 매번의 다른 우주에서, 매번 0에서 시작하자. 0의 자리에서 눈앞의 구체적인 것들에 감각을 열고, 함께 우주를 생성하자. 그리고 매번 다른 우주 위에서 매번, 어떻게 살아갈지를 생각하자.

 

# 야생의 사고

earth-g5af9f40b0_640그리고 매번 다른 우주 위에서 매번, 어떻게 살아갈지를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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