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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궁금하다!] 종적 피진pidgin, 경계를 지키면서 가로지르기(1) – 자기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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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2-07-06 16:22 조회53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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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하 (남산강학원)

나를 나로 내버려 둬! 라던가, 갈 길 가세요 전 제 갈 길 갈게요, 같은 정서는 이미 낡았다고 할 정도로 익숙하다. 그런데도 이런 류의 언어들이 계속 되풀이되는 것은 누구도 제 갈 길 혼자 가기 어렵고, 자기를 자기로 지키며 살기 어렵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실 조금은 부질없는 시도를 우리는 애써 계속 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이 애씀을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돌려보면 어떨까?

에두아르도 콘의 논의를 따라 숲으로 들어가면, 숲에서의 간섭 강도는(이를 간섭으로 생각해본다면 말이다) 도시(주로 호모사피엔스끼리만 보고 사는 거주공간을 도시라고 부르겠다)에서의 간섭 강도와 차원이 다르다. 숲은 북적대는 자기self들(+a)이 뒤섞여 살아가는 곳으로, 종을 넘나들며 제 갈 길 가는 녀석들을 잡아채고, 고립된 녀석들은 잡아먹어버리기도 한다. 느낌이 오는가? 숲에서 ‘자기’로 살려면, 즉 자기 관점perspective을 가지고, 행위 주체성을 가지고, 사물이 아닌 기호작용으로 살기 위해서는 이 간섭작용에 적극적으로 올라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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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빌라의 루나족은 우리 도시인들이 가장 개인적이고 ‘나’의 심층, 무의식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꿈조차도 숲과 간섭시키고(정확히는 숲이 꾸는 꿈을 꾼다), 개와 재규어의 제 갈 길에 간섭하면서 숲과 이야기하고자 한다. 루나족은 누구보다 숲처럼 생각하기를 원한다. 부분으로 존재하는 인간에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들은 더 큰 전체를 품고가기를 원한다. 그것이 가장 자기로 영속할 수 있는 길이기에! 그럼 이번엔 루나족의 뛰어난 간섭 기술을 배워보자.

1. 관점을 경유하는 자

‘자기’로 영속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를 나로 내버려 둬’라고 할 때 우리는 ‘나’를 뭐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자기란 생명이 가질 수 있는 하나의 존재방식을 말한다. 격발하는 숲의 소란스러운 기호작용들 속에서 불쑥 출현하는 기호해석자, 동시에 기호작용의 산물(=기호). 자기는 기호작용의 경유지며 개별적인 퍼스펙티브 자체다. 그래서 매번 다른 기호 앞에서 다른 자기로 출현할 수밖에 없지만, ‘자기성’은 상실하지 않아야 사물로 전락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자기는 자기로 생존하기 위해 분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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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는 생물학적 신체와 떨어져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신체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우리의 신체도 수많은 ‘자기’들이(세포 하나하나, 장기 하나하나는 각각의 자기이기 때문에) 모여 하나의 자기로 창발하고 있는 과정이다. 자기는 신체와 함께 자기를 잃어버릴 수 있지만, 또 신체를 넘어 확장되어 존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콘이 아빌라에서 만난 벤투라의 아버지는 죽었지만, 재규어의 신체와 관점으로 살고 있다(고 여겨진다). 어느 날 재규어가 키우던 닭을 잡아가자 벤투라는 집 근처 숲으로 가서 “나는 당신의 아들이야, 당신은 내 닭들을 보살펴야 해”라고 소리쳤고, 사흘 뒤 재규어는 아구티를 잡아다 선물해주었다.

아빌라 사람들처럼 퍼스는 혼을 자기들 간의 의사소통과 교감의 표지로 보았다퍼스는 혼이 다른 기호적인 자기들과의 구성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살아있는 기호적인 자기에 고유한 어떤 일반적인 속성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따라서 퍼스는 혼의 자리가 항상 신체와 관련된다 하더라도 그것을 반드시 신체에 위치 짓지 않았고 오히려 상호주관적인 기호적 해석interpretance의 효과로 위치 지었다. (에두아르도 콘숲은 생각한다사월의 책, 188)

자기성을 특징짓는 것을 찰스 퍼스와 아빌라 사람들은 ‘혼soul’이라고 불렀다. 혼은 “기호적인 자기가 다른 기호적인 자기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공동 구성되는 방식”(186쪽)이다. 다시 말해 다른 자기를 “의식”할 수 있어야 혼을 가지고, 혼은 다른 자기와의 사이에서 창발한다. 자기성의 핵심은 다른 자기를 알아채는 것, 자기와 다른 퍼스펙티브를 의식할 수 있는 것에 있다. ‘나를 나로’ 만드는 것이 나를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자기를 의식하는 데에 있다는, 자기에게는 이런 묘한 자격이 요해진다.

moon-g50f656985_640‘나를 나로’ 만드는 것이 나를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자기를 의식하는 데에 있다는, 자기에게는 이런 묘한 자격이 요해진다.

 왜 자기는 다른 자기를 알아챌 때 자기인가? 왜 ‘혼’이라는 것은 상호작용 속에서 구성되는가? 자기와 자기 사이의 관계는 나와 너의 관계다. 너는 대상이 아니고 ‘그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먹음이나 공격이 아니라 ‘상호작용’이 있다. 아빌라 루나족은 숲에서 잠을 잘 때 엎드려 자지 않고 똑바로 누워 잔다. 재규어가 다가오면 두 눈을 똑바로 뜨고 그를 마주보기 위해서다. 시선을 돌려주지 않으면 재규어는 그것을 한 덩이 고기로 보기 때문이다. 재규어의 눈을 마주보고 버틴다면 재규어는 나를 한 마리 재규어로, 하나의 자기로 인식하고 잡아먹지 않는다. 한편 ‘재규어에게 시선을 되돌려주면 재규어는 나를 다른 재규어로 생각한다’라는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나 역시 재규어를 하나의 퍼스펙티브를 지닌 자기로 인정해야 한다. 이렇게 자기와 자기는 동시적으로 서로를 발생시키며 자기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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