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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카ㅣ새로운 신을 만나다] 미움은 인간의 결함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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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2-07-20 13:30 조회522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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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은 인간의 결함이 아니다

이 경 아(감이당)

내 안의 미움

오랫동안 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언니는 주식으로 가족과 친척들 돈까지 날렸다. 나는 전화를 붙잡고 가족들에게 더 이상 해를 끼치지 말라고 언니와 자주 싸웠다. 언니는 울면서 늘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매달렸다. 가족들은 언니에게 화를 내면서도 매번 언니에게 돈을 주었다. 나는 그런 언니가 너무 미웠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쪽에는 언니를 미워하면 안 된다, 가족이니 도와줘야 하고, 용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를 미워하면서도 괴로웠고 늘 마음이 불편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성당에 갈 때마다 언니를 미워하지 않도록, 언니를 용서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했다. 종교적 가르침에서도 누군가를 미워해선 안 되고 원수라도 사랑해야 했다. 특히 서로 사랑해야 할 가족을 미워하는 것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내 안에 미움을 없애 달라고 열심히 기도했지만, 그때마다 좌절했다. 그러면서 내 자신을 이런 감정도 조절 못 하는 결점투성이라고 여겼다. 언니를 용서하지 못하는 내가 싫었고, 그런 마음은 나를 더 위축시켰다. 가족을 사랑해야 하는데 미워하고 분노함으로써 신의 마음을 아프게 한 죄인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느낀 감정에 대해 신께 용서를 청해야 했고, 고해성사를 통해 용기를 내어 나의 미움과 잘못을 고백했다. 신부님은 언니로 인해서 가족들의 생계가 어려워졌냐고 물으셨다. 나는 그렇지는 않다고 했다. 그러자 신부님은 벌은 하느님이 주시는 것이니 언니를 용서하라고 하셨고, 미움으로 가득 찬 나에게 잘못에 대한 보속으로 몇 가지 기도를 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나를 용서해 주셨다. 나는 이것으로 내가 언니를 미워한 죄를 용서받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마음속으로 혼자 끙끙 앓아오던 것을 고백한 것도 시원했고, 신부님의 말씀이 위로가 되었다. 며칠은 위로로 인해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나는 달라진 게 없었다. 여전히 언니가 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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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때 당시 나는 신부님이 하신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다. 벌은 하느님이 주는 거라면 내가 미워하지 않아도 언니는 자신의 죗값을 알아서 받을 거라는 것인지? 또한 하느님이 내 죄를 용서해 주셨으니 앞으로 나는 언니를 계속 미워해도 된다는 것인지? 계속 미워하는 것도 용서해 주는 것인지? 아님, 언니를 무조건 용서해야 하고 언니를 미워하면 안 된다는 것인지? 계속 미운데 어떻게 용서할 수 있는지? 가 궁금했다. 하지만 나는 이런 것에 대해 아무런 질문 없이 그냥 받아들이기만 했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누군가를 미워하는 게 죄인지 신부님께 여쭤보았다. 신부님께서는 감정 자체는 죄가 아니고, 감정에 끌려가는 게 문제라고, 누군가를 미워할 수도 있는데, 그 미움의 원인을 사유하지 않은 채 그 미움을 키워가는 게 문제고 죄라고 하셨다. 나는 그동안 어릴 적 들었던 설교를 토대로 그저 누굴 미워하는 건 죄라고, 이것을 당위로만 받아들인 채 살아왔기에 이 말씀을 듣고 놀랐다. 

그리고 원래 고해성사를 제대로 하려면 내 미움의 원인에 대해 충분히 성찰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런 후에 신에게 용서를 청해야 했다. 충분히 성찰한다면 그 과정에서 많은 부분들이 해결될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고해성사를 제대로 준비하지도 않았다. 내 미움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분석하지도 않았고, 사태가 어떻게 이 상황까지 온 것인지에 대해서 짚어보지도 않았다. 그냥 언니의 행동에 화부터 났고 미워하기 시작했다. 그저 감정만 있었다. 신을 전지전능한 능력을 갖춘 절대적 주체라고 생각했기에 내가 고해를 하고 기도를 하면 내 미움을 없애줄 거라 여겼다. 사유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고, 신에게 매달리는 건 편했기에 내가 가지고 있던 감정에 대한 편견만 강화했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미움이나 분노, 질투와 같은 감정은 인간의 결함이 아니라 자연의 필연성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더위나 추위, 천둥이나 번개 같은 것들이 자연의 본성에 속하는 것처럼 이런 감정은 죄가 아니고 인간의 본성이다. 미움이 인간의 결함이 아니라면 감정이란 어디서 어떻게 생기는 것이고 감정에 끌려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hello-i-m-nik-zYdYz7JlevE-unsplash미움이 인간의 결함이 아니라면 감정이란 어디서 어떻게 생기는 것이고 감정에 끌려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감정, 카오스의 산물

관념은 외부대상과 신체의 접촉을 통해 나에게 생긴다. 우리의 신체 조건상 관념을 형성할 때 대상보다 내 신체를 더 많이 반영하기 때문에 관념은 대상보다는 나에 대해 알려주는 게 훨씬 더 많다. 이 관념이 혼란스럽게 등장하는 것이 감정이다. 정신의 수동이라 불리는 감정은 어떤 혼란된 관념(3부, 230p)을 말하는데 내가 외부 대상과 마주쳐 관념을 형성하게 되면 거기서 좋다, 싫다 등등의 감정이 발생한다. 감정은 정념이다. 여기서 정이란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을 말한다. 이런 정념은 수동적인 것이다. 수동이란 어떤 대상과 마주칠 때 외부 대상도 원인이 되고, 그 대상을 둘러싼 배치와 나 자신도 원인이 되는데 전체가 아닌 부분적인 원인으로만 인식하는 것이 수동이다. A가 날 괴롭게 했어~, B가 날 기쁘게 했어~등 A와 B라는 대상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고 대상 자체를 그렇게 보는 것이 수동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발생하는 사건들의 원인을 다 알지 못하고 부분적으로만 파악할 수 있기에 수동적일 수밖에 없고, 이런 수동성에 의해 변화를 겪을 때 즉각적인 감정이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감정은 카오스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나는 이 문제가 터졌을 때 내가 그 안에 원인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생각은 못 했다. 그저 나와 가족은 피해자라고만 여겼다. 사실 높은 이자를 받을 때는 언니가 능력이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사건이 이렇게 되니 내 욕심은 보지 못하고 언니 탓만 했다. 사건이 터지고 나자 우리는 사태를 다양한 관점에서 보지 못했고 그저 감정에 끌려갔다. 이 사건을 해결하려면 통장 내역을 오픈하고, 누군가에게 돈을 얼마를 빌렸고, 사채는 얼마이며…모든 것을 투명하게 밝혀야 했다. 우리는 생계에는 지장이 없었기에 이 사건을 해결하고, 언니는 그에 맞는 대가를 치르면 되는 거였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언니에게 통장을 내놓으라고 말을 하지 못했다. 언니가 울면서, 한 번만 도와주면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이제 곧 해결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언니의 눈물은 모든 것을 다 삼켜버렸다. 우리는 오죽하면 저러겠냐는 연민과, 아무리 그래도 주위 사람들을 속여가며 돈을 그렇게 다 날려버릴 수 있냐는 분노 사이를 왔다 갔다 했을 뿐이다. 우린 사건을 해결하는 게 아닌 감정의 늪에 빠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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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제어하고 억제함에 있어서의 인간의 무능력을 나는 예속이라고 한다.(4부, 서론) 스피노자에게 무능력이란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 다른 방식으로 전환할 능력이 없이 그 감정에 휘둘리는 상태다. 오로지 자신의 경험적인 결론 속에서 형성된 즉각적 감정에 매여있으면 우리는 이 예속을 벗어날 수 없다. 예속은 사건을 해결하는 게 아니라 또 예속을 낳기에 감정은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 나는 이 사건으로 오랫동안 언니와 연락을 끊었다. 여기에는 언니에 대한 질투도 작용했다. 가족들은 상황이 이런데도 자식이니, 형제니 어쩌겠냐며 나 모르게 언니의 뒤를 봐주고 있었다. 나는 이런 가족들에게 더 화가 났다. 나만 못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가족들이 나를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으로 보고, 오히려 말썽부리는 언니에게 잘해주는 것에 대해 나는 질투가 났다. 또한 이 질투에는 자라면서 가졌던 자매간에 경쟁의식도 깔려있었다. 나는 이런 미움과 질투심에 휘둘리고 있었고 절연을 했어도 언니를 미워하는 마음에 힘이 들었다. 대체 이런 미움과 질투는 왜 생기는 건가? 이것들은 과연 내 인간성의 결함인가?

미움과 질투는 어디서 오는가?

정신은 신체의 활동능력을 감소시키거나 억제하는 사물을 표상할 때, 그러한 것의 존재를 배제하는 사물을, 가능한 한, 마음에 떠올리려고 노력한다.(제 3부, 정리 13) 

모든 존재는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고자 하는 근원적 욕망이 있기에 자신의 활동 능력을 촉진하는 ‘기쁨’을 원하지, 자신의 활동 능력의 감소인 ‘슬픔’을 원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우리의 정신은 활동능력을 감소시키는 것을 부정하거나, 피하고 싶어 한다. 이렇게 자신의 활동능력을 떨어뜨리는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상대가 눈앞에서 사라지길 바라고 미워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내가 언니를 미워하면 그런 미움은 슬픔이기에 내 역량을 떨어뜨린다. 그러니 내가 슬픔에서 벗어나 내 존재를 유지하고 싶은, 즉 살고 싶은 욕망이 언니에 대한 미움으로 표출된 것이다. 

 

질투란 타인의 행복을 슬퍼하며, 반대로 타인의 불행을 기뻐하도록 인간을 자극하여 변화시키는 한에 있어서의 미움이다.(제3부, 222p) 

질투는 어떤가? 우리는 누구나 본성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고 싶어하기에 타인보다 잘나 보이고 싶어 한다. 그래서 타인이 나보다 못하면 기쁘고, 나보다 나아 보이면 슬프다. 이 때문에 타인을 미워하게 되는데 그게 질투의 메커니즘이다. 이런 본성적인 질투심으로 인해 타인의 행복을 슬퍼하고 타인의 불행을 기뻐하게 된다. 나는 더 이상 언니에게 돈을 줘선 안 되고, 언니가 마땅한 법적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가족들을 설득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오히려 언니를 감쌀 뿐이었다. 내 행동이 가족들을 설득하지 못하자 기분이 나빴고, 언니가 그런 가족들의 배려를 받고 있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다. 이것으로 인해 질투가 났고 언니를 더 미워하게 되었다. 

언니를 미워하고 질투하게 된 것은 내 인간성의 결함이 아니라 본성의 필연성에서 생겨났다. 이 미움과 질투가 인간의 본성이라면 마음대로 이런 것을 하라는 것인가? 물론 아니다. 스피노자는 선과 악의 인식은 우리에게 의식된 한에 있어서의 기쁨 또는 슬픔의 감정일 뿐이라고 말한다.(제 4부, 정리8) 이렇게 보면 미움이나 질투 등의 감정은 신이 이것을 싫어해서, 이것이 죄여서 피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를 슬프게 하기 때문에 악이자 죄인 것이다. 이러한 슬픔에 빠지면 내 신체와 정신의 활동능력을 떨어뜨리고 계속 슬픔 속에 잠겨 있게 된다. 이런 예속은 다른 것들과 다양하게 접속하고자 하는 내 본성에 해를 끼치기 때문에 피해야 하는 것이다. 

『에티카』를 공부하고 이 문제로 고민을 하면서 언니와 연락을 했다. 거의 10년만 이었다. 과거의 사건이 언니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가족 모두의 문제였고, 그 안에 있는 미움과 질투 등 복합적인 감정들을 보고 나니 내 마음속에 있던 오래된 매듭이 풀렸다. 언니를 완전히 이해하게 된 것은 아니지만 내 미움에서 힘이 빠졌다. 그 덕분에 내가 먼저 언니에게 연락을 했고, 의외로 어색하지 않았다. 언니는 나를 보자마자 자신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 언니도 고생을 많이 했고, 인생의 바닥도 경험했다. 이런 것이 신부님이 말씀하셨던 하늘이 준 벌이었을까? 언니는 지금 스스로 노력해서 살아가고 있고, 주식은 안 하지만 그래도 씀씀이는 소득에 비해 크다. 가족들도 여전히 언니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을 준다. 나는 언니를 더 이상 미워하지도 않고 연락도 하며 잘 지내지만, 경제적으로 돕지는 않는다. 그것이 언니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ben-white-W8Qqn1PmQH0-unsplash이렇게 글을 쓰고 다양한 관점에서 보는 능동적인 과정이 나에겐 고해성사다.

미움은 인간의 결함도 아니고 당위로 없앨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신에게 은총을 구하며 기도를 했을 때 나는 이런 식의 사유는 하지 않았다. 계속 내 감정을 부정하고 억압하는 기도를 했고 같은 패턴으로 생각하다 보니 오히려 집착과 미움이 강해질 뿐이었다. 하지만 공부를 통해 스스로 미움의 원인을 알아가고 감정의 메커니즘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는 과정은 내 결함을 탓하게 만드는 죄의식이 아닌 성찰의 기쁨을 주었다. 이렇게 글을 쓰고 다양한 관점에서 보는 능동적인 과정이 나에겐 고해성사다.

댓글목록

정태남님의 댓글

정태남 작성일

글 너무 좋습니다 공감하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