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 어느 해 여름, 갑자기 몸이 신호를 보내왔다. 빨리 서울을 벗어나라고. 머리에 떠오른 곳은 어딘지 모르지만 조용하고 인적이 없고 깜깜한 밤이 있는 곳이었다. 불현듯 고향집이 떠올랐다. 거리가 멀었지만 그런 걸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일정을 살펴보니 일박이일은 가능했다. 몸이 보내는 절박한 신호가 바쁜 일정을 쪼개 그 먼 고향집으로 바로 날아가게 했다. 그날, 삼면이 산으로 에워싸인, 가로등 불빛도 자동차 불빛도 인기척도 없는 깜깜한 그 밤, 두터운 무언가로 채워진 듯한 그 밤이 너무도 푸근했다. 창호지에 부딪치는 날벌레의 날갯짓소리와 산에서 들리는 수많은 벌레 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묵직한 무언가가 전신을 채워주는 것 같았다. 든든하고 편안한 어떤 힘 같은 게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바쁜 일정으로 지쳐있었던 것 같다. 그때 밤낮없이 조명탄을 쏘아 올리는 서울에 이대로 있다가는 얼마 안 되는 물마저 다 말라버린다고, 내가 나에게 SOS를 친 거였다. 그날 묵직한 무언가는 정이 차오르는 느낌이었던 것 같다.
그 이후에도 정 부족, 물 부족을 알리는 생리적인 신호가 자주 울렸다. 2010년(?) 여름 갑상선기능항진증으로 체력이 바닥을 찍고 기진맥진했을 때, 무얼 먹어도 쉬어도 좀처럼 기운이 돌아오지 않았다. 정이 바닥이 난 듯했다. 다시 고향 생각이 났지만 워낙 먼 거리라 자주 오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때 우연히 서울 근교의 휴양림을 알게 됐다. 거의 매달 2박3일의 일정으로 그곳을 찾았다. 그 휴양림은 산 속에 있었고, 종일 계곡의 물소리가 쉼 없이 들리는 곳이었다. 그러면서 점차 체력을 회복했고 일상을 이어갈 힘을 얻었다.
그런가 하면 나도 모르게 피하는 것들이 있다. 인공조명을 싫어한다. 특히 휘황찬란한 네온사인과 전광판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온몸의 정이 다 말라버리는 듯. 내가 가 본 곳 중 그 끝장판이 뉴욕 맨해튼의 타임스 스퀘어였다. 2016년과 2017년 연거푸 뉴욕에서 한 달 가량씩 머문 적이 있었다. 워낙 관광명소로 이름난 곳이라 호기심으로 한 번 들렀었다. 인산인해에다 전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집채만한 대형 광고판을 설치해 놓았다. 낮이었음에도 마치 내 몸의 모든 물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빨아먹겠다고 달려드는 듯했다. 밤에는 물론이고 낮에도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았다. 집에서도 될 수 있으면 조명을 켜지 않는다. 해가 져서 어둑해서 글자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최대한 버틴다. 불을 켜면 피로도가 훨씬 증가한다. 연구소에서도 골방(?)에서 전등을 안 켜고 지내는 걸 좋아했다. 그러면 꼭 불을 켜주고 가는 친절한^^ 분들이 있다. 내가 귀찮아서 그러는 줄 알고….
이 밖에도 진한 쇳소리가 나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싫어한다’는 감정을 알차채기 전에 몸이 먼저 피한다. 어느 날 국립극장 앞마당으로 산책을 갔다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꽹과리 소리에 무서운 뱀이라도 만난 듯 반대방향으로 마구 걸었다. 내가 좋아하는 장이 섰고 저만치 보이는 곳에서 떡볶이를 팔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소리를 피해 냅다 도망을 쳤다. 함께 가신 선생님은 아마도 내가 평소 떡볶이를 좋아하니 당연히 그리로 갈 줄 아셨던 모양이다. 아마도 그게 다 정을 보존하려는 본능적인 행동이 아니었을까 싶다. 떡볶이를 먹어서 생길 정보다도 그 시끄러운 소리에 빼앗길 소중한 정을 보존하려는 생존 본능이라고나 할까.
몸이 건네는 소리를 우리가 잘 알아듣지 못할 뿐, 몸은 알고 있다. 어떻게 해야 소중한 정을 아낄 수 있는지. 그 소리를 들으려면 우리에게 밤과 휴식이 필요하다. 그때라야 비로소 몸속 저 깊은 데서 올라오는 몸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