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집에 돌아가도 아내를 볼 수 없다’[入于其宮, 不見其妻]. 그리고 ‘흉하다’[凶]. 집에 돌아간다고 했으니, 어찌어찌 이 곤궁한 상황을 겨우 헤쳐 나아간다는 말일 것 같은데, 상황이 끝까지 고약하다. 아니 이건 마치 고약함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게 아닐까. 보통은 아무리 엄청난 고생을 하더라도 결국에는 어찌어찌 돌아와 행복해졌다더라…라고 말하게 되지 않나? 하지만 웬걸, 곤괘(삼효)는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그러니까 이 장면의 결론은, ‘헤쳐나가기 힘들고 어렵다, 설혹 겨우 헤쳐나간다면… 그래도 또 안 좋다, 흉!’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다시 처음으로! 곤괘의 흉칙함은 이제 어느 정도 알 것도 같다. 끝판왕은 끝판왕인데 끝이 없다고 말하는 끝판왕인 셈. 안 갈 수는 없는데, 가도 가도 나쁘다고만 말하는. 그렇다면 실제로 인생에서 이런 때를 만났을 때 어쩌라는 것일까. 그냥 이번 생은 접는다이(die)? 이 문제와 관련하여, 여기 곤괘 삼효와 관련된 유명한 이야기와 곤괘 삼효로 이야기해보고 싶은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 하나. 기원전 6세기, 춘추시대의 중국. 제(齊)나라의 대부 최저(崔杼)는 죽은 당공(棠公)을 조문하러 갔다가 그의 아내 동곽녀(당강棠姜)의 미모에 첫눈에 반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심한 반대에 부딪치게 되자 최저는 최후 수단으로 주역점을 치기에 이른다. 그런데 그때 나온 점괘가 곤괘 삼효였다. 하필곤삼(何必困三)!
술사(진문자)는 이렇게 말했다. “돌덩이에 막혀 곤궁하다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도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가시덤불에 의지에 지킨다는 것은 의지하는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입는다는 것입니다. 집에 돌아가도 아내를 보지 못하니 흉하다고 한 것은 돌아가 쉴 곳이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feat. <춘춘좌전>, 노양공25년). 누가 봐도 이 결혼은 안 된다는 점괘였고, 끝내 흉하다는 소리였는데, 최저는 신박한 해석으로 이 점괘를 뒤집어서(정확히 말하면 우기고 우겨서!) 기어이 동곽녀를 아내로 삼는다.(‘집에 돌아가도 아내를 볼 수 없다’는 말은 이미 죽은 동곽녀의 남편 얘기여서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