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常道에 맞는 삶을 찾아가고, 상도를 얻었으면 소박하게 노래하듯 즐겁게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상도에 맞는 삶은 공부하며 찾아가면 된다고 하였으니, 공부를 통하여 삶의 이치를 깨닫고 그것을 누리는 소박한 기쁨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이해를 했다. 주역 점을 보고 나서부터 계속 머릿속에서 “常道를 얻은 소박한 기쁨”은 어떤 것일까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나에게는 “鼓缶而歌”의 해석이 절실하지만 나의 일상과 연결하여 해법의 실마리를 찾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마침 지지난 주 저녁밥 당번을 하면서 주방 매니저 윤하쌤이 자신이 참여하는 세미나에서 필요하다며 3가지 기쁨에 대해 인터뷰를 요청했다. 순간 답변을 위해 머리를 쥐어짰다. 내가 생각하는 기쁨 3가지! 공감과 연대감에서 오는 기쁨, 인식 확장의 기쁨, 그리고 행위의 몰입에서 오는 기쁨! 이라고 답변했다. 즉흥적인 답변이었지만 다분히 지난해부터 이어져 왔던 지금의 내 고민이 담겨져 있는 대답이었던 것 같다.
지난해 9월, 나는 처음으로 감이당에서 6080 고전학교의 “노년, 우정과 지성의 향연” 강좌를 수강하였다. 총 16주 동안 소크라테스, 장자, 붓다, 왕양명, 붓다, 아인슈타인 등의 생애와 사상, 특히 죽음에 관한 그분들의 태도를 감동적으로 만났다. 어려서 위인전을 읽었을 때 존경심을 느꼈지만 그분들의 위대한 행동과 불굴의 의지에 압도되어 철없던 나는 위인이 되지 않고 평범하게 살기로 다짐했던 기억이 났다. 60이 넘어 다시 만난 지금 비로소 그분들의 삶의 태도가 큰 따뜻함과 깊은 위로, 격려로 다가왔다. 그분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모습을 인간적으로 다시 조명하며 공감과 연대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주역, 동의보감, 양자역학에 대하여는 그야말로 생애 처음 강의를 들으며 접속하게 되었다. 참으로 신선한 경험이었고 지금까지 살아온 세계와는 또 다른 사유체계의 세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어렴풋이나마 불교의 법문, 동양고전에 대해서는 역사적인 사실 수준 이상으로 관심과 지식이 있었지만 주역과 동의보감, 양자역학 등은 강의를 통하지 않고 접할 수 없는 분야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오랜 시간 항상 공존하고 있었지만 접근할 수 없었던 또 다른 지성의 세계에 들어서면서 아득하면서도 가슴 설레게 하는 인식 확장의 가능성도 느끼게 되었다. 또한 낭송 동의보감과 낭송 장자를 수업 시작 전 몇 쪽씩 낭송하면서 자신의 목소리와 책의 내용에 오롯이 집중하면서 낭송의 오묘한 즐거움도 맛보게 되었다. 16주 동안의 강의를 듣고 점점 더 감이당에서의 공부에 의미를 새기며 올해 토요주역스쿨에서 계속 이어가고 싶었던 것 같다.
만일, 앞으로 고전 공부를 통하여 인류의 지성과 공감하고 지적 감수성을 확장시키며, 배우는 과정에서의 집중과 몰입은 일상의 고질적인 잡념에서 벗어나는 자유로움을 느끼게 된다면? 문득 내가 생각하고 있는 기쁨과 앞으로 살아갈 시간의 소박한 기쁨을 접목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를 통해 상도를 얻고 나서야 만이 소박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일까?(鼓缶而歌) 常道를 얻지 못하였어도 상도를 찾아가는 공부의 과정에서 소박한 기쁨을 누릴 수 있다면 어떨까 하고. 이런 방향성이라면 공부를 하면서 찾아가는 상도를 얻는 기쁨과 공부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기쁨이 함께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문득 40대 언젠가 나이가 들면, 제목만 듣고 읽지 못했던 고전들을 읽으면서 무지와 오해에서 비롯된 인식의 오류를 수정할 수 있는 공부를 하며 노년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 했던 기억이 났다. 내 노년의 시간을 보낼 방법에 대해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었던 것일까. 이것이 나의 “鼓缶而歌”하는 방법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