賁如(비여)는 수식이 성대한 모습이다. 濡如(유여)는 자체에 내재하는 아름다움 때문에 윤기가 흐르는 모습이다. 구삼은 수식/장식의 성대함 속에 있다. 그러나 수식/장식은 존재의 본질이 아니다. 수식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아름다움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역의 하느님은 구삼에게 말한다. “영원히 보편적인 주제를 향해 점을 쳐라.(永貞)” 그래야 吉한 결과를 얻으리라. (김용옥,『도올주역강해』, 335쪽, 통나무)
‘비여유여’는 꾸밈이 본질을 넘칠락 말락하는 상태라는 뜻도 된다. 본질에 비해 회사라는 형식이 과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형식을 갖추는데 쓰는 에너지는 가급적 간소화해야겠구나 싶었다. 회사 설립이라는 사건보다는 본연의 일를 잘하는 데에 집중하라는 의미 같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 나와 우리에게 붙어 있는 ‘천만, 칸느, 오스카’라는 수식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제작자(사)로서 가질 수 있는 거의 끝판왕 급의 장식이다. 하지만 과거를 빛낸 장식일 뿐, 본질은 감독과 아티스트들을 만나고 서포트하여 좋은 작품을 만들어 관객과 소통을 이루는 일이며 그럴 수 있는 실력이다.
매 작품마다 원점에서 시작해 예측불허의 조건과 난관을 돌파해야 하는 일의 특성상 항상 천지의 도움이 필요하다 느끼기에 구삼효 끝에 吉이라는 글자가 있어서 솔직히 무척 반가웠다. 자, 그런데 조건이 있다.
그 조건인 永貞을 정이천은 ‘오래도록 유지하고 올바름을 지키’는 것이라 했고, 도올은 ‘영원히 보편적인 주제를 향해 점을 치는’ 것이라고 했다. 어떻게 해석하건, 변하지 않을 본질적인 것을 오래도록 올바르게 추구하는 것이다. ‘永’에 집중해 구체적으로 적용해보면, 현재의 트랜드나 단기 이익을 좇기보다 작품의 가치와 완성도 같은 본질적인 것을 중심에 둬라. 세월이 지나도 그 가치를 잃지 않을 작품을 만드는 회사를 추구하라. 회사를 장기 비전으로 설립하고 경영하라 등의 해석이 가능할 것 같았다. ‘貞’과 관련해서는 우리의 작품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데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작품적 지향의 올바름이 떠올랐다. 또한, 일의 방식에 있어 누군가를 착취하거나 상처 주지 않는, 공정하고 투명한 시스템을 마련하는 등의 올바름을 단단히 갖추자. 그러면 길할 수 있다.
이러한 방향성은 내가 진정 바라는 것이기도 해서, 그러면 길할 것이라는 말이 까다로운 단서라기보다 든든한 격려처럼 느껴졌다. 우리 회사는 영화계가 처한 어려움을 통과해야 하고 해보지 않았던 드라마 제작도 해야 하는 상황에 있다. 특히 최근에 드라마 제작을 위한 업계 탐색 과정에서 永貞하지 않은 문화를 꽤나 접했다. 술이나 골프 접대, 뒷돈 로비가 필요하다거나 작품에 자극적인 설정을 극대화시키라는 조언을 듣기도 했다. 그럴 재주도 의사도 없는데 그래야만 일이 돌아가는 건가 싶어 마음이 괴롭기도 했었다. 반면, 본질에 집중하여 지속적으로 올바른 태도로 해나가는 것은 힘들지언정 괴롭지는 않은 길이다. 기꺼이 그럴 수 있다. 그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