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 스님은 우리 삶의 근본이 유식성(唯識性)의 부드러움과 따뜻함이라고 한다. 유식이란 이 세계엔 오직 앎(識)이 변화하는, 그 흐름만 있다는 것이다. 그 앎의 흐름을 지켜보고 알아차리면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일까. 아집(我執)으로 인해 거칠고 차갑게, 이기적으로 살아온 나는 유식을 공부하면서 내내 이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이 부드럽고 따뜻하다는 유식성, 이것을 어떻게 해야 찾을 수 있을까.
9남매의 장녀였지만 희생과 봉사라는 말을 가장 싫어했던 나다. 이런 나는 가난한 환경을 벗어나고자 결혼을 택했지만, 그 결혼 생활은 나의 어떤 욕구도 채워주지 못했다. 불만스러운 그 환경으로부터 또 다시 도망을 쳤다. 딸 아이가 15살 때 집을 나와 이혼한 것이다. 딸을 두고 나오면서 잠시 자유를 느끼는 것과 동시에 나의 죄책감은 예고된 것이었다. 내가 그동안 금전적으로 딸을 도와준 것은 그 죄책감을 없애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나만 생각한 행동이었다. 늘 신경 쓰이는 그 죄책감을 없애고자 딸 아이의 인생은 생각하지 않고 나만을 위한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러니까 그 “신경증적이고 이기적인 죄책감”(카렌 암스트롱, 『축의 시대』, 정영목 옮김, 교양인, 472쪽)으로 인해 결국 딸을 망치게 된 것은 아닐까. 내가 그 집을 나온 이후 딸도 곧 집을 나와 방황을 거듭하며 살았다. 그리고 힘들 때마다 나에게 손을 벌렸다. 도대체 이런 딸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