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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가슴을 타인의 노래로 채우지 마라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16-01-31 00:32
조회 : 3,765  


“자신의 가슴을 타인의 노래로 채우지 마라”

심상인(감이당 대중지성 1학년)

감이당 이전,  “그만 두면 뭐 할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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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노래만 불렀던 과거를 돌아보다

나에겐 고치기 못하는 고질병이 하나 있다. 몇 년을 주기로, 멀쩡한 직장을 그만 두겠다며 발광하는 병인데, 이번엔 10년을 넘게 잠잠했으니 꽤 오래 버틴 셈이다. 남들은 나에게 역마(驛馬)가 끼어 그렇다고 한다. 몇 년 전부터 다시 그 병이 도져, 다시 학교 밖으로의 ‘월담’을 시도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이번엔 월담이라기보다는, 영원히 학교를 떠나는 자퇴가 될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모두를 비웃겠지만, 나는 평생 한 번도 학교 담장 밖을 나가보지 못한 불쌍한 사람이다. 대학 졸업 후, 짧은 군 생활을 마치고 잠깐 백수 노릇을 즐기던 중, 실종된 선배 대신 면피용 면접을 보러 갔다가 다시 학교 안으로 붙잡혀 들어와 올해로 30년. 나도 이렇게 오래 학교 선생님 노릇을 하게 될 줄을 몰랐다. 남들은 졸업한 후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는 학교를, 학생으로, 교사로, 이 학교 저 학교를 전전하며,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까지 끊임없이 월담을 시도하긴 했지만, 모두 미수에 그쳤다. 결국 지금까지 나는 한 번도 학교 밖의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한 사람으로 살고 있다. 그럼에도 다른 선생님들처럼 선생님이 되기 위한 제대로 된 준비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 직업에 대한 절실함이나 사명 의식이 있을 리 만무했다. 더구나 어린 나이(23살?)에 시작한 터라, 남들이 ‘선생님’이라 부를 때마다 몸에 소름이 돋았고, 나 역시 ‘선생님’ 소리를 들을 만큼 그렇게 모범적인 교사도 아니었다. 

한때 나 나름,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다.’고, 잘못 으스댄 적이 있었다. 생각할수록 창피해서 몸에 소름이 돋는데, 올해 이반 일리치의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내 잘못에 대한 미안함과 부끄러움 때문에 얼굴이 더욱더 화끈거려 혼났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가르치는 일에 대한 회의와 함께, 더 이상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될 이유가 점점 많아지고, 이곳을 하루라도 빨리 떠나야겠다는 조급증이 갈수록 심해졌다. 더 이상 추한 꼴을 보지 않으려고, 말 그대로의 명예로운 은퇴를 꿈꾸며, ‘명퇴’를 대내외적으로 공식 선언을 해버렸다. 생각 없이 저지르는 것이 시작할 때나 끝낼 때나 똑같았다. 그런데 그것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주위의 반응도 한결 같이 싸늘했다. 표현은 가지각색이었으나 반응은 한 마디로 철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나에게 물었다. “그만 두면 뭐 할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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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란 물음의 통속적 버전이었던 셈인데, 그때 나는 그들이 납득할 만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그들을 납득시킬 정답은,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를 가지고 굳이 그들을 납득시킬 필요도 없었다. 그냥 ‘소이부답심자한(笑而不答心自閑)’이라, 말없이 웃어 넘기던지, 굳이 친절을 베푼다면 감이당 식으로 ‘백수’주의를 내세우거나,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자유’라고 말하면 되는 것이었다. 내 삶이고, 나를 구원할 이는 오직 나뿐이며. 그 누구도 나의 삶을 대신해 줄 수는 없기에. 그런데 그땐 그렇게 대답하기가 힘들었다. 나 자신도 내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 모든 것이 불안하기만 했다. 할 일이 없으면 경제적이든 뭐든 당장 큰 일이 날 것 같은 근거 없는 손익계산,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무대에서 쫓겨나는 것만 같은 패배감과 나 혼자만 떨어져나갔다는 열등감 등등. 그 알 수 없는 불안들을 나를 내 몸 밖으로 내몰았고, 내 삶에 대한 자기 논리를 갖지 못한 채, ‘서글픈’ 노년을 예감하며 이리저리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진리란 무엇인가? 아주 간단하다. 진리는 항상 새로운 것이고 항상 변화한다. 즉 진리는 유동한다. “진리는 반복이 아니다. 반복은 거짓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삶을 언제나 낡은 기억, 낡은 습관, 낡은 전통으로 채우려 한다. 이미 지나간 것들을 붙들고 그 기억에 의존하여 삶을 지탱하려 한다. 그래서 점점 무거워진다. 과거와 기억이라는 짐을 잔뜩 짊어지고 나아가야 하는 탓이다. 그러다 보면 문득 아득해진다. 내가 누구지? 어디로 가야 하지? 
 그 혼란과 산만을 해결하기 위해 누군가를 찾아 헤매는 것이다. 자신을 위로하고 달래 주면서 물질적, 심리적 충족을 제공해 줄 누군가를. 하지만 그건 도피이거나 중독에 불과하다. 자신의 삶과 대면하기를 포기했다는 점에서. (고미숙, 『호모큐라스』, 201쪽)

그렇다. 내가 그랬다. 이 대목에서 꼼짝 없이 자백할 수밖에 없다. 내 삶의 문제를 내가 해결하지 못하고 누군가를 찾아 의지하려 했던 내 나약함을. 내 삶과 대면하기를 자포자기했던 내 비겁함을. 그 자체로 자유인 내 삶을 당당하게 누리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노래만 불렀던 내 무지(無知)함을.


내 나이, 쉰 그리고 다섯, 여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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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렇게 끌려 다니면서 1세기의 절반, 반(半) 100년을 넘어 살고 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어떻게 살아야 하기 보다는 어떻게 죽어야 하나를 걱정해야만 하는 나이. 

열다섯 살 이전에 세속적 공부에 뜻을 둔 듯도 했으나, 이 나이 되도록  나이 값도 못하고 아직까지도 여전히 불혹(不惑)하지 못한 채, 이리저리  떠밀려서 쉰 살을 훌쩍 넘겨버리고 말았다. 공자님의 인간 승리 선언에 나오는 ‘지천명(知天命)’을 훨씬 지나, ‘이순(耳順)’을 가까이 바라보는 나이. 천명(天命)을 깨닫지 못해서인가, ‘이순(耳順)’이 내일 모레, 코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세상 소리에 순(順)해지기는커녕 생각과 아량은 더욱 편협해져 사람을 너그러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저 스스로도 제어하기 힘든 알 수 없는 분노를 어쩌지 못하면서, 제 주제도 모른 채, ‘서로 너그러이[相仁] 살라’고 선친께서 지어주신 이름값도 못하는, 별볼일 없는 사람이 되고야 말았다. ‘후생가외(後生可畏)이나, 40이 넘어서도 별 볼 일이 없으면 두려워할 것이 못 된다’(『논어』, 자한편) 했다. 옛 말은 하나도 그른 것이 없다.


감이당에서 보낸 1년

이처럼 내 안팎의 겨울 풍경이 하 수상했던 지난 1월 중순, 무척이나 낯설고 긴 남산 언덕을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며 어렵게 감이당을 찾아 왔다. 우연히 충무로역 근처를 지나다가 20년 넘게 얼굴 보지 못했던 선배님들이 갑자기 보고 싶어졌다는 것이 첫 방문 동기가 된다. 그리고 장금 선생님을 만났다. 그날 저녁부터 바로 감이당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사실, 내 인생에 읽을 책은 이미 다 읽었다고 허세를 떨며, 앞으로는, 머리를 쥐어짜면서 인성(?)을 쓰기보다는 식상(?)을 쓰면서 편하게 살겠노라며 이제 더 이상 가르치거나 배우는 일 따위는 하지 않겠노라 공언했다. 더구나 내게는 아무래도 공망(?)인 것 같은 글쓰기, 내 일방적인 짝사랑이었던 글쓰기는 늙으면서 절대로 노(no)! 이렇게  생각을 굳히고 있던 참이다. 그런데 나는 귀가 엷다. 그래서 남의 말을 잘 듣고 다른 사람 부탁을 잘 거절 못하는 편이다. 비견이 많아 그렇다는데, 그런 내가 기운 쎈 천하 장사, 장금 선생님을 만났으니... 게임 오버! 꼼짝 못하고 감이당 물 속으로 퐁당 빠져들어가, 을미년 한해,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봄-여름-가을-겨울, 네 계절을 보내면서 감이당 공부를 마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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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센 도반들 덕분에 공부의 고비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이 1학년 4학기 마지막 에세이를 쓰기 위해 감이당에서 1년 동안 읽은 책들을 정리하고, 강의노트와 필사노트 등을 훑어보니, 그동안 읽은 책이  지난 10년 동안 읽은 책보다 많은 듯싶다. 읽은 책의 양도 엄청났지만 그 독서의 질적 밀도는 내가 한 번에 소화하기엔 버거운 내용들이었다. 동서양을 횡단하고, 고금을 종횡할 뿐만 아니라 인문과 예술, 종교와 철학, 자연을 정신없이 넘나들고, 19살 이후로는 접해 보지 못한 자연과학 분야의 책들, 그것도 첨단 물리학, 천문학, 생리학 책들은 절망과 공포, 그 자체였다. 그냥 읽는 것도 버거운데 읽은 것을 필사하고, 암기, 아니 암송하란다. ‘몇 달 하다가 힘들면 그만 두면 되지 뭐...’ 하며, 구렁이 담 넘듯 대충 넘어가려는데, 이번엔 우리 용재 선생님이 등장한다. ‘대충이라니, 대충은 없어!’ 경금(庚金)의 단단한 카리스마가 번뜩, 추호의 용서가 없었다. 처음에는 한 문장, 한 단락도 외우기도 어려웠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것도 내성이 생긴다는 것이다. 귀찮긴 하지만 조금 시간과 집중력을 발휘하면, 오가는 지하철 안에서 그럭저럭 해결되었다. 가끔 컨디션이 좋을 땐 1쪽을 훌쩍 넘겨 외우게 되었다. 오, 놀라운 자기 계발! 물론 지금은 빛의 속도로 사라져 망각의 바다 저편에 잠수한 지 오래지만... 뭘 읽었는지는 몰라도, 외운 기억의 흔적은 어슴프레 남아 있다. 몇 달이 지났고 힘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글을 쓰란다. 첩첩산중, 점입가경이었다. 혼자서도 쓰고, 여럿이도 쓰고, 안 쓰기도 하고. 할 수 있는 온갖 글쓰기는 다 해본 셈이다.

꽃 필 때 외웠던 ‘주역 64괘’가 끝나기 무섭게, 꽃 질 때는 ‘독맥과 임맥’, ‘12경맥’ 혈자리들을 외워야 했고, 나뭇잎 떨어질 때 외워야 했던 ‘8강 변증’ 쯤 와서는 거의 실신했던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내가 계절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주저하며 여기적기서 미적거리고 있을 때마다, 신금(辛金) 임수(壬水) 초미녀 도반님들과 갑(甲), 을목(乙木), 기토(己土) 남자 도반님들이 고비마다 차례로 등장해서, 강력한 수렴의 힘으로 각종 테스트에 통과할 수 있도록 확실하게 정리해주었고, 계절의 마디, 마디를 아슬하게나마 넘을 수 있도록 나를 강력하게 끌어 당겨 주었다. 뭘 해도 용두사미 격으로, 시작만 요란할 뿐 끝은 언제나 흐지부지, 3개월을 넘지 못했던 내가 1년 4계를 모두 버텨낸 것이다. 지내놓고 보니까 사실 내 평생, 올해처럼 다이나믹하고, 밀도 있게 한 해를 보낸 적이 없다. 내 스스로 대견한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물론 이런 나조차도 예상치 못했던 결과를 낳게 된 것은 옛날보다 훨씬 강력해진 우응순 선생님의 판옵티콘이 결정적이었다. 내가 뛰어봤자 벼룩,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이지 뭐. 아마 우 선생님도 늙은 후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실 것이다.)


갑목(甲木)이 갑목(甲木)을 만나다.

감이당에서 새로 배운 언어로 나를 정의하면 나는 갑인(甲寅) 일간을 갖고 태어난 갑목(甲木) 남자다.(나의 네 기둥 여덟 글자[四柱八字]는 庚子, 乙酉, 甲寅, 丙寅, 이렇다.) 그래서인지 나는 새로운 것들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대신, 금방 싫증을 잘 낸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일이든. 내지르기는 잘 하나 작심삼일(作心三日)이 대부분이다. 나이 들어 조금 나아지기는 했다고 하나, 그래도 한 계절을 넘겨본 적이 드물다. 일에 관한 한 속전속결과 멀티플레이가 특기이다. 모임을 가져도 여러 다른 모임들을 한데 섞어 물타기, 폭탄주 만들기, 차수 옮겨 여러 군데 돌아다니기, 뒷감당은 내 몰라라 자폭하기 등이 내 전매특허이다. 이런 나의 성향은, 감이당에서 만난 어떤 학인의 명리 분석에 따르면, 내게는 재성(財星)에 해당하는 흙기운[土]이 없어서 그렇다고 한다. 갑목(甲木)이기 때문에 시작은 잘 하나, 자기의 뿌리를 내릴 토(土)가 없어 무슨 일을 매듭짓지 못하고, 재성(財星)이 없어 자기 몫을 챙기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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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갑이올시다~ 

감이당에서 보낸 일 년, 짧고 길었던 네 계절 동안, 공부하면서 여러 학인들을 귀인(貴人)으로 만났다. 그들을 통해 사람이 그 어떤 것보다 배울 것이 많은 훌륭한 교과서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아마도 그들이 없었다면, 내가 계절의 마디를 넘어 일 년 동안 이 어려운 공부를 지속할 수 없었으리라. 특히 그들과의 새로운 우정을 통해, 앞으로 펼쳐나갈 내 삶의 지형도를 다시 그리게 되었고, 새로운 기대를 갖게 해주었다. 

만남, 하나하나가 소중한 인연들이었지만, 특히 감이당 1학년 과정 처음과 끝을 함께 장식해준 갑목 귀인과의 만남과 우정에 대해 말하고 싶다. 처음 자신은 소개하는 자리에서 보여주었던 자기 삶에 대한 성찰의 깊이에 놀라, 나는 그를 ‘**옹(翁)’이라 불렀다. 키케로의 말처럼, “청년의 기질을 지닌 노인은 건강하고, 노인의 깊이를 지닌 청년은 믿음직스럽다.” 그리고 그는 단지 일간(日干)이 같다는 이유 때문에, 감이당 1학년에서 가장 나이 어린 사람이, 별볼일없이 나이만 쳐먹은, 가장 늙은 꼰대를 짝으로 만나야 했다. 슬픈 운명의 주인공. 그리고 두 번, 낭송 오디션 발표, 낭송 페스티발을 함께 준비했다. 무대에 서서 지켜 본 그의 기획 능력과 연출 능력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놀라운 것이었다. 

창조적 삶을 어떻게 기획하고 마무리지어야 하는지, 그리고 삶이란, 결코 나이라는 숫자로 셀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몸으로 가르쳐 주었다. 늙은 파트너는 나이 들어 남 앞에 선다는 긴장 때문에 대사를 자꾸만 까먹었고, 평생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라 모든 것이 서툴기만 했다. 그럼에도 그는 그 힘들고 귀찮은 일을 마다 않고 두 번이나 나를 점지해서, 내 잠든 잠재 능력(?)을 일깨워주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함께하는 낭송이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지를, 책 속에 타자로 남아있었을 것들이 내 몸 안으로 녹아 들어와 빙의되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함께 하는 우정이란 것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의 실체를 실감을 느끼도록 선물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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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갑목이 갑목을 만났다. 그러나 나무도 나무 나름. 그는 나와 같은 갑목(甲木)이지만, ‘명령(冥靈)’, ‘대춘(大椿)’이란 나무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며, 내가 그 나무들 앞에서 ‘팽조(彭祖)’처럼 오래 살려고 애를 썼던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사람이다. 지금까지 내가 ‘밤과 새벽을 모르는 아침벌레[朝菌]’이며, ‘봄과 가을을 모르는 씽씽매미[惠蛄]’이고, ‘대붕(大鵬)의 비상을 알지 못하는 메추라기[斥鴳]’임을 알게 해주었다.

불모의 북몈 땅에 명해(溟海)라는 바다가 있다. 그것은 천지(天池)이다. 거기 물고기가 있는데 몸의 넓이는 수천리이고 그 길이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 이름을 곤(鯤)이라 한다. 거기 또 새가 있는데 이름을 붕(鵬)이라 한다. 등은 태산 같고 날개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 같다. 회오리바람을 타고 날개 쳐서 빙글빙글 돌며 9만리를 올라가 구름 위에 솟구치면 푸른 하늘을 이고 비로소 남(南)으로 향해 남명(南冥)으로 간다. 메추라기가 비웃으며 “저 놈이 도데체 어딜 가겠다는 건가? 난 힘껏 날아 올라도 불과 몇 길을 못 올라가고 내려와 쑥풀 사이를 날아다니거든. 이것도 대단히 난 것인데 저놈은 어딜 가려고 하는 걸까?[터무니 없는 공연한 짓이다]”라고 한다. 이것이 작은 것과 큰 것의 차이이다.   (안동림 역, 『장자(莊子)』,  내편(內篇), 소요유(逍遙遊), 39-40 쪽)

내게 작은 것과 큰 것의 차이를 가르쳐 준 사람. 그리하여 그를, 내 기억 속의 『장자(莊子)』에는 다음과 같이 변주시켜 기록한다. “남산 북쪽에는 진정한 의미로의 ‘대학(大學)’이라고 부를 수 있는 배움터가 있다. 그것은 감이당이다. 거기 한 젊은이가 있는데 그 사람됨의 넓이는 수천리이고 그 잠재력의 길이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우리의 주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정말 잘 모르겠다. 잘못된 내 습(習)과 벽(癖)은 옛날처럼 여전히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성찰의 시간을 거부하고, 그때그때의 쾌락을 따라 하루살이처럼 살려고만 한다. 그 쾌락 뒤에 오는 허무와 결핍은 더 센 강도의 쾌락을 쫓아가려 하고. 그 악순환의 고리를 아직도 끊지 못한 채 살고 있으니, 모를 수밖에. 그래도 감이당에서 1년 동안 공부하면서 뭔가 조금 달라진 느낌이다. 적어도 기분만은 편안하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여전히 미궁이지만, 앞으로 이렇게 살지는 말아야겠다는 것, 몇 가지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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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이미 지나온 과거의 것들에 집착하지 않겠다. 기억이든, 일이든, 물건이든. 강을 건너고 나면 타고 온 배는 버리는 법. 아깝다고 배를 지고 길을 가려고 하면, 앞에 놓인 산을 넘을 수 없다. 최대한 몸을 가볍게 길을 떠나는 연습을 하자, 갈 때도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내가 떠난 자리에 내가 버린 쓰레기들이 남아 있지 않도록. 내가 남긴 것들은 내가 치우고, 떠나자. 최대한 빨리, 그리고 되도록 깔끔하게! 내가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내가 버린 쓰레기들을 최대한 치우고 떠날 것. 어디로 갈 지는 그 다음 좀더 생각하기로 하자. 아마도 또다른 시절 인연이 나를 끌고 가지 않을까? 

둘째,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미리 걱정하지 않겠다. 특히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지금-여기 내게 허락된 소중한 시간들을 희생시키는 따위의 어리석은 짓거리는 더이상 하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내가 지금까지 불법 복제해 썼던 남의 말들도 모두 내려놓을 생각이다. 예를 들어 국민학교 2학년 때, 청소 당번을 면제해준다고 해서 외웠던,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 따위는 이제 통째로 내던져버리기로 한다. 그리고 내 직업의 생명 연장을 위해서 남의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 유통 기간이 만료된 이념들을 되풀이하는 나팔수 노릇은 하면서 더 이상 아이들을 괴롭히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 오늘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좀더 집중할 것이다. 조금 덜 먹고, 덜 쓰면서, 욕심 부리지 말고. 

셋째, ... 이렇게 내가 하지 않아야 할 것들의 목록을 뽑다 보니, 앞으로 “이렇게 살아야겠다”는 것, 하나가 확실하게 떠오른다. 바로 우정(友情)이다. 이건 분명 올해 감이당에서 공부하면서 확실하게 몸으로 깨달은 것이다. 사람의 성격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망에 따라 바뀐 것처럼 보일 뿐이다. 나역시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망을 어떻게 만들어 나가야 할지는 내가 앞으로 도전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우정을 쌓아나가면서 함께 가야 할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 그래서 삶의 마디를 만들어주었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들 그래서  내 삶의 마디를 만들어 줄 사람들이다. 사람의 숫자가 아니라 삶의 생생함을 함께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특히나 토(土) 재성(財星)이 없는 내가 제때 삶의 마디를 만들어 하나씩 정리해나가기 위해서는 내 몸 밖에 있는 타자들과의 연대가 필수적이란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감이당에서 내 희망의 씨앗을 찾을 수 있었다. 거듭 고마울 따름이다.

일단 우정은 OK, 그렇다면 감이당 공부는 하기 싫어도 해야 할 듯하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그런데 글쓰기가 문제다. 억지로 쓰는 글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내 안에서 우러나오는 글, 물 흐르듯이 흘러나오는 글, 쓰고 싶어 쓰는 글, 그것이 내게도 가능할까? 나도 그런 글쓰기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왠지 자신이 없다. 글쓰기 앞에만 서면 왜 나는 작아지는가....?  지난 번 전과가 있고 해서, 이번 글쓰기는 제대로 써 볼까 했는데, 이 역시 지난번에 막힌 고비를 넘지 못하고 도로아미타불이 되어 버렸다. 뻔뻔스럽게 제출하긴 했지만, ‘영~ 아니올씨다’다. 쥐구멍에 들어가 숨고 싶은 심정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도 글은 쓰지 않은 것 같은데, 그럼에도 ‘나는 자유’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조르바가 부럽기만 하다. 그러면서 자꾸 글쓰기는 왠지 내 영역이 아닌 것 같은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속아보는 셈 치고 한 10년쯤 필사하고 암송하다 보면 ‘글로벌’한 글쓰기가 가능할까? 그보다 먼저, 그런 시간의 축복이 과연 내게 허락될까? 모르겠다. 이 역시 아직 오지 않은 미래. 나는 지금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좀더 집중하면 된다. 우정과 지혜가 함께 하는 ‘다른 노년’을 생각한다면, ‘낭랑하게 낭송하고, 필사적으로 필사’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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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파랑소   2016-02-14 12:00:28
 
선생님ㅎㅎ 낭송 페스티벌 때 사기열전 낭송 당근 기억합니다. 귀여운 소품 사용과 쌍갑!(甲甲)의 케미가 엄청났더랬죠 ;-) 이래서 대중지성, 전 세대가 함께 공부하나봐요~ 응원합니다!
애독자   2016-02-12 08:36:31
 
해병대보다 빡쎄다는 감이당 공부 1년을 버티시다니 장하십니다! ‘조르바도 글은 쓰지 않은 것 같은데’ 왜 자꾸 글쓰기를 시키는지 ‘혼자서도 쓰고, 여럿이도 쓰고, 안 쓰기도 하고. 할 수 있는 온갖 글쓰기를 다’ 해 보셨으니 이제 세상에 겁날 것이 없으시겠습니다. 어디로 갈지 알 수 없지만 이전의 나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미지의 출발. 기왕 공부의 바다에 몸을 던지셨으니 장엄한 노을처럼 삶의 찌꺼기 활활 불태우고 새 해[日]로 거듭나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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