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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공부해야 하는 이유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16-02-11 15:54
조회 : 3,805  


내가 공부해야 하는 이유
 

추경미(감이당 대중지성 1학년) 


또다시 맞닥뜨린 질문 

감이당 대중지성에서 3년을 공부했다. 내년에 난 또다시 공부할 것인가? 지금껏 3년은 해봐야 하니까 하면서 어영부영 여기까지 왔다. 마지막 고미숙샘의 로드클래식 강의에서 뒤통수를 치는 말이 있었다. 공부하기 싫으니까 공부를 그만 두어야 할 이유들을 그러모은다고. 내 마음은 ‘그래도 계속 해야 하지 않을까’ 와 이젠 좀 ‘쉬어야 하지 않을까’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공부를 좀 쉬어야 할 이유들이 이것저것 떠올랐다. 이사를 준비해야 하고, 남편과의 관계를 개선해야 하고, 아이들을 더 챙겨줘야 하고, 체력도 달리고 등등. 그렇게 가정에 더 충실하면 가정이 안정이 되고 그러면 마음이 안정이 되고 그러면 공부할 여유가 생기고 그러면 그때 또 공부하면 되지, 하는 생각들. 하지만 곰샘은 말한다. 그렇게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면 소유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그때 퍼뜩 정신이 들었다. 내가 감이당에 올 때 어떤 상태였는지가 떠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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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좀 심한 우울증 상태였다. 남편과 더 많은 소통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이 충족되지 않아서 아주 우울했었다. 우울증은 오랜 흡연을 중단하게 만들었다. 별로 담배를 피우고 싶지 않았다. 직장에서는 담배를 필수 없어서 저녁에만 두 세 대 정도 피우는 거였지만. 어느 날 보니 내가 담배를 피우고 있지 않았다. 몹시 우울해 하는 나를 보고 언니가 감이당에서 한번 공부해 보라고 했고, 그때 왕초보의역학 강의를 신청 받고 있길래 신청했다. 그렇게 어영부영 오늘이다. 다시는 남편만 바라보는 우울한 날들을 살고 싶지 않다. 나는 관성과다다.
  
얼마 전 운전 중에 ‘지성의 힘으로 뚫고 나가야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작년에 함께 공부했던 학인과 통화하면서 또다시 알게 된 나의 ‘건조’함! 나는 늘 몸이 건조한데 올해 들어 온 몸에 가벼운 가려움증이 생겼다. 나의 사주에는 물(水)이 없다. 그러나 지금 수대운을 지나고 있는데도 건조함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니, 왜? 대운으로 들어온 수는 천간에만 있고 지지에는 없다. 천간은 정신적 에너지를 지지는 물질적 에너지를 의미한다. 하여 사유는 유연해지고 있지만 몸은 여전히 건조하고 뻑뻑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조금 유연해진 사유의 힘을 빌어, 지성의 힘을 빌어 몸의 건조함을 뚫고 나가야 한다. 그렇게 ‘지성의 힘’이라는 단어를 떠올린 것이다. 그런데 이 단어가 강의 시간에 듣던 말, 책에서 읽던 문장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강의나 책 속에서 내 안으로 들어와 무언가 나와 한 몸이 되어 울리는 느낌이랄까. 내 안에서 그런 생각이 떠오르다니 신기한 일이었다. 감이당에서 3년 동안 세뇌 당하면 이렇게 되는구나 싶었다. 기뻤다.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날수 있다는 것이. 
  
그렇다! 나는 공부하고 싶다. 계속 공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공부를 그만 두려면 그만두어야 할 이유를 모으면 된다. 그럼 공부를 계속하려면 계속해야할 이유를 모으면 된다. 공부를 계속 해야 할 이유라, 최근에 나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현실적인 질문들을 어떻게 건너갈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떠오르지 않을까? 아니 공부를 통해 이 질문들을 잘 건너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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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와 새롭게 관계 맺기

둘째가 태어나고 섬에 혼자 계시던 시어머니가 서울로 오셨다. 맞벌이로 일해야 하는 우리 부부를 도와 아이들을 돌봐 주시러 오신 거였다. 나는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것이 몹시도 불편했다. 어머니가 살림을 다 해주시는 것이 고마웠지만 나는 점점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급기야 나는 혼자 욕을 하기 시작했고, 집을 나가야겠다고 남편에게 말했다. 그때 남편은 결단을 내렸다. 혼자 살고 있는 시동생 집으로 어머니를 옮겨 가시게 한 것이다. 그렇게 8년 만에 시어머니와의 동거는 끝이 났다. 시동생이 결혼하면서 어머니는 다시 섬으로 내려 가셨고 지금은 혼자 생활하고 계신다.
  
3년 전 보금자리 아파트에 입주했다. 은행 빚으로 그 비싼 집에 들어가면서 고민이 많던 차에 마침 이사를 고민 중이던 친정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에 대해 의논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남편은 흔쾌히 동의해 주었다. 7년 전의 교통사고와 수술 후유증으로 거의 침대에서만 생활하는 아버지와 아버지를 24시간 간병하는 엄마와 함께 생활하게 된 것이다. 남편은 아버지를 자연스럽게 대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뱃사람이었다. 사고 전 술자리에선 섬사람인 남편과 가장 잘 통했었다. 그런 아버지가 초점 흔들리는 눈빛으로 사람을 잘 알아보지도 못하는 상태인 것이 낯설고 불편하다고 남편은 말했다. 불편함은 대책 없이 지속되어 남편은 3년째 아버지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얼마 전 아파트 전매제한이 풀렸다. 우리부부는 집을 팔자고 동의했다. 집을 팔고 은행 빚을 갚고 남은 돈으로 어떻게 이사를 할까를 의논하던 중 의견대립이 생겨 남편과 크게 싸웠다. 나는 남편이 아버지 방에 3년 동안 한 번도 들어가지 않은 것에 대해 공격적으로 퍼부었다. 남편도 시어머니가 집을 떠날 때 큰 상처를 받았다고 소리쳤다. 처음엔 화가 났다. 그러나 다음 순간 이렇게 서로에게 커다란 상처를 준 우리부부는 함께 살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나간 다양한 상처들에 생각이 미치자 나는 커다란 절망감에 사로 잡혔다.

잘못된 인연, 잘못된 행동, 잘못된 환경과 같은 그 모든 것들이 시인에게는 도구랍니다. 시인은 그 모든 것을 자신에게 주어진 것으로 생각해야 해요. 불행조차도 말이에요. 불행, 패배, 굴욕, 실패, 이런 게 다 우리의 도구인 것이죠. 행복 할 때는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행복은 그 자체가 목표이니까요. 그러나 우리에겐 실수가 주어지고 악몽이 주어지죠. 거의 밤마다 말이에요. 우리의 과제는 그것들을 시로 녹여내는 겁니다. 만약 내가 진정한 시인이라면 나는 내 인생의 모든 순간이 시적이라고 느낄 것이며, 주무르고 빚어서 형상을 만들어내야 하는 일종의 점토라고 느낄 거예요.

(보르헤스·반스톤,『보르헤스의 말』, 서창렬 옮김, 마음산책, 2015, 23쪽)

보르헤스는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이, 특히 불행과 실패가 시와 글의 재료라고 말한다. 그 경험들은 내가 빚어내야 하는 하나의 점토인 것이다. 그것들로 빚어진 것이 시이고 글이고 삶인 것이다. 그런 불행과 실패들이 없다면 무엇으로 삶을 살아갈 것인가. 상처가 상처로 기억되는 것은 그 점토를 가지고 상처를 빚어냈기 때문인 것이다. 그 점토로 내가 무엇을 빚어낼지는 정해진 것이 아니다. 그래서 많은 과거의 상처들을 ‘기억과 망각의 상상력’으로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그 무엇으로 만들고 싶다. 그 점토가 상처로 빚어지는 여행밖에 할 수 없다는 건 너무 답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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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의 삶 순간의 죽음

  내후년이면 구순이 되는 아버지는 여전히 까만 머리에 이제 흰머리가 하나씩 돋아나고 있지만, 침대에 누워 혼자 힘으로는 돌아눕지도 못하고 잘 삼키지 못해서 죽과 경관식용 캔으로 식사를 하신다. 24시간 간병하는 엄마는 내년이면 팔순이다. 엄마의 고생도 고생이지만, 아버지의 생활을 보면 이렇게 사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하루 종일 잠을 잔다. 침대에 기대 앉아 밥을 먹는 일도 힘에 겨워 밥을 먹으면 금방 졸기 시작한다. 전에는 가끔씩 내 이름을 잊으셨지만, 이제는 아예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딸이라는 사실만 기억하신다. 절대로 잊지 않던 엄마 이름도 이제는 잘 기억하지 못하신다. 이렇게 과거의 기억과 일상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천천히 죽음의 터널을 통과하는 사람을 지켜보는 일은 힘이 든다. 아버지가 좀더 삶을 잘 정리할 수 있도록 무언가 도와드려야 한다는 생각과 아침저녁으로 얼굴 보는 일 외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나의 무력함은 복잡한 감정으로 나를 이끈다.
  
나는 어떻게 죽고 싶은가? 아버지처럼 저렇게 힘든 상태로 오래 살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어디 삶이 나의 바람대로 되겠는가.

난 사람이 늘 죽는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단순히 뭔가를 기계적으로 반복하고 있을 때 우리는 뭔가를 느끼지 않고 뭔가를 발견하지 않아요. 그 순간 우리는 죽은 것이에요. 물론 삶은 어느 순간에나 돌아올 수 있어요. 어느 하루를 살펴본다면 우리는 거기에서 많은 죽음을, 또한 많은 탄생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그러나 나는 죽어 있지 않으려고 노력한답니다. 나는 호기심을 가지려고 노력하며 늘 경험을 받아들이고 있어요. 그 경험들이 시로, 단편소설로, 우화로 바뀌는 것입니다. 나는 늘 경험을 받아들이고 있어요. 비록 나의 행위와 말 가운데 많은 것들이 기계적이라는 것을, 다시 말해 그것들은 삶이라기보다 죽음에 속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말이에요.

(보르헤스·반스톤,『보르헤스의 말』, 서창렬 옮김, 마음산책, 2015, 38쪽)


보르헤스는 우리가 늘 죽는다고 말한다. 침대에 누워 있는 아버지를 보면서 죽음을 떠올렸지만 나도 매일 죽고 있었던 것이다. 매일 똑같은 하루를, 죽어 있는 시간을 살아가는 것이다. 매일 힘들다고 하지만 매일 똑같은 일로 힘들다. 역시 죽어 있는 힘든 시간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보르헤스는 어느 순간에나 삶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말한다. 나의 경험들을 살아있는 것으로 만들면서 말이다. 산다는 건 목숨이 붙어 있다는 것과는 다른 의미일 것이다. 내 눈에는 죽어가는 아버지도 어느 짧은 순간에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무언가를 바라보고 자기만의 시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읊조릴지 모를 일이다. 한동안 내가 아버지의 가래를 빼는 썩션을 했었다. 어느 날 내가 누구냐고 묻는 말에 아버지는 나를 ‘가래담당’이라고 말했다. 엄마와 나는 오랜만에 큰소리로 웃을 수 있었다. 내 이름을 기억할 수 없었던 아버지는 가장 강렬한 기억을 통해 나를 호명했던 것이다. 썩션을 하고 나면 아버지는 늘 ‘죽다가 살았다’고 말하곤 했다. 강렬한 경험을 받아들여 딸의 이름을 지어주는 아버지. 그 순간 아버지는 죽음으로 가는 긴 터널에서 잠깐 삶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렇게 삶과 죽음을 오가면서 살아가다가 그날이 오면 다른 인연을 위해 흩어지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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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순간순간의 삶일 것이다. 죽음이 순간순간의 죽음이듯이. 호기심을 가지고 매순간의 죽음과 삶의 경험을 받아들이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다른 인연을 위한 흩어짐을 만날 때까지 우리는 순간순간의 삶과 죽음을 살아갈 것이다.


공부란 삶의 과정일 뿐

지금 내 코앞에서 나를 힘들게 하는 질문들에 보르헤스가 보여주는 길을 따라 이런저런  답을 생각해 보았다. 이 글을 쓰기 전에는 할 수 없었던 생각들을 할 수 있었고 그 생각들은 정답이 아닌 정해지지 않은 새로운 길로 나를 이끈다. 앞으로 계속 글을 쓴다면 또 다른 글에서 또 다른 생각들과 만나게 되리라. 여전히 미숙한 반걸음을 내디디면서 말이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 공부가 지지부진하다는 자괴감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나 자신을 설득하면서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어려운 길에는 친구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큰 힘을 주는 이가 있다. 그런 길을 먼저 간 저팔계라는 친구가 있지 않은가? 

온갖 추태를 저지르고 갖은 망신을 다 겪으면서도 꿋꿋이 나아가는 모습을 보라. 탐욕이 인간의 운명이라면 구도 또한 ‘원초적 본능’이다! 그런 점에서 저팔계야말로 ‘민중의 영웅’이 아닐지.

(고미숙,『로드클래식』, 북드라망, 2015, 104쪽)

망신을 겪고도 또 한발을 내디디는 데에는 커다란 용기가 필요하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구도라면 본능인 것이 맞다. 본능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런 용기를 낼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탐욕으로 인한 추태와 망신 속에서도 꿋꿋이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공부란 본능이자 삶의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나에게 오는 온갖 장애들을 만나고 싸우면서 앞으로 한 걸음을 떼는 것. 싸우면서 배우고 그래서 한걸음을 나아가고. 그것이 공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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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들이 없었다면 과연 이 길을 갈 수 있었을까? 만약 가는 길마다 태평하고 도처에서 환대를 받았다면? 단언컨대, 길을 갈 수 없었으리라. 아니, 그건 길이라는 개념에 부합하지 않는다. 길이란 장애와 번뇌를 마주하는 것이고, 그로부터 힘을 길어 올려 다시 한걸음을 내딛는 것을 의미한다.

(고미숙,『로드클래식』, 북드라망, 2015, 116쪽)

그동안 나에게 와준 요괴들에게 감사한다. 나를 감이당으로 이끌어준 깊은 우울증, 에세이를 쓸 수 있도록 동력이 되어준 상처에 대한 깊은 절망감과 죽음에 대한 깊은 무력감. 그리고 살면서 매일매일 질문을 안겨주는 어렵고 힘든 관계들. 그 모든 요괴들 덕분에 여기까지 왔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 공부는 계속되어야 한다! 그것이 사는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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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애독자   2016-02-12 08:37:02
 
가래 담당! 아버지께서 참 좋은 공부의 길을 열어 주셨네요. 세상과 내가 새롭게 관계 맺는 방식이 공부가 아닐까요. 이전의 아버지와 딸이라는 규범적인 관계가 아니라. 낯선 타자(죽어가는 아버지)를 내 삶으로 받아들이는 새로운 활동으로서 '가래 담당'은 참으로 훌륭한 공부의 방법인 것 같습니다. 아버지 덕분에 ‘공부를 계속할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질문은 ‘어떻게 내 몸에 맞는 공부를 찾을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문턱을 넘어가게 되었네요. 그곳이 어디든 지극한 마음을 다하는 곳이 바로 내 존재를 변모시키는 뜨거운 공부의 장-용장[龍場]이겠지요. 정진!
김민경   2016-02-11 19:21:02
 
글 잘 읽었습니다^^
계속해서 지성을 쌓으시는 걸 응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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